안녕, 부처님[E.1 나의 길, 새로운 길(2)]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사르나트 편

by 노루

IMGP2006.JPG 다시 유적지로 돌아가는 길, 오토바이보다 자전거를 타신 분들이 많았다.


IMGP2029.JPG 분명히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맞지??
IMGP1991.JPG 사르나트 유적지의 매표소이다. 이곳에서 박물관과 유적지 표를 다 살 수 있었다.

9. 근본여래향실


유적지의 입장료는 300루피였고 같은 곳에서 박물관 입장권을 5루피에 구매할 수 있었다.


매표소 우측의 있는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정원처럼 꾸며진 유적을 바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걸으면 만나게 되는 것이 근본여래향실이라는 곳이었다. 향실은 향이 나는 방이라는 뜻이다.


그곳에 들어가기 다섯 발자국 전에, 왜 향실이라고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방 앞의 단상 위에는 꽃과, 향초들이 가득했다. 이미 지붕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향과 향초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타고 있었다.


오래 전의 마을 사람들도 부처님을 찾아올 때, 지금처럼 꽃과 향을 앞에 놓았다고 한다. “그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꽃을 꺾어오고, 향기로운 초를 올리셨을까? 어쩌면 주위에 가득한 향의 분자들도 떠나기 싫어 이곳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타고 있던 초에 불을 빌려 향 하나를 사렸다. 이곳에서 좋은 향이 배어 가기를 기도했다.




IMGP2037.JPG 사르나트 유적의 전경이다. 멀리서도 다메크 탑이 잘 보였다.
IMGP2039.JPG 사르나트의 아쇼카 석주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유리창이 처져있었다.
IMGP2043.JPG 이곳이 여래근본향실이라는 곳이다.
IMGP2045.JPG 이 앞에서 자 향긋한 내음이 퍼져 나왔다.
IMGP2049.JPG 이곳에 찾아오신 분들이 하나하나 놓고 가신 것들이 모여져 있었다.

그렇다면, 보드가야에서 굳이 이곳 사르나트까지 오신 부처님의 첫 번째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오비구를 상대로 주었던 가르침의 내용을 발췌했다. 고행만을 고수하는 오비구들에게 고행이 깨달음을 위한 바른 길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 중도를 먼저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삶 자체가 괴로움임을 바라보라는 네 가지 진리를 말하셨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에 원인과 결과가 있음을 이야기하신 후, 괴로움이라는 결과의 원인 대해서 가르치셨다고 한다.


초전법륜, 처음 가르침을 주시다


부처님은 큰 자비스런 마음으로

그들을 가엾이 여겨 말씀하셨지마는

그들은 어리석은 마음 그대로

“바르고 참 깨친 이” 믿지 않았네.

“이전부터 고행을 닦는다 말했지만

그래도 아직 얻은 것 없었는데

지금에 몸과 입의 즐거움을 누리거니

무슨 인연으로 부처될 수 있으랴!“

붓다차리타, 마명, 전달진 역




중도

수행하는 사람이 피해야 할 극단적인 두 가지 삶이 있다. 그 하나는 자기 몸을 탐욕에 빠뜨린 비천한 삶이며, 또 하나는 부질없이 자기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고행의 삶이다.

나무토막 하나가 큰 강을 떠다닌다고 하자. 그 나무가 양쪽 강 언덕에 닿지도 않고 강 한가운데에 가라앉거나 뭍으로 오지도 않고 그렇다고 안에서부터 썩지도 않는다면 언젠가는 바다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이 나무토막의 비유처럼 자신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자학하지 않고, 미혹을 경멸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깨달음에 얽매이지도 않는다면 그러한 사람은 중도를 따르는 것이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인간 세계는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태어남도 괴로움이요. 늙고 병들고 죽는 것도 다 괴로움이다. 원한이 있는 사람이 결국은 만나는 것도,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도,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도 모두가 괴로움이다. 그야말로 집착을 떠나지 못한 인생은 전부가 괴로움이다. 이것을 괴로움의 진리라고 한다.

인생의 괴로움은 어째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인간의 마음에 붙어 있는 *번뇌로부터 생긴다. 그 번뇌를 파고 들어가 보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격한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욕망은 생에 대한 격렬한 집착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을 탐하게 된다. 나아가 그 욕망을 위해서라면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진리이다.

이 번뇌의 근본을 남김없이 멸해버리고 모든 집착을 여의면 인간의 괴로움도 없어진다. 이것이 괴로움의 사라짐이라고 하는 진리이다.

이 괴로움을 없애는 경지에 들려면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닦아야만 한다. 여덟 가지 바른 길이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말, 바른 행동, 바른생활, 바른 노력, 바른 마음가짐, 바른 마음의 통일이다. 이 여덟 가지가 욕망을 없애기 위한 바른 길이라는 진리이다.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진리를 완전하게 제 것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누구든지 번뇌를 끊어버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경지는 깨달음에 의지해야 도달할 수 있고, 깨달음은 여덟 가지 바른 길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다

*번뇌 : 잡생각


인연


사람들의 괴로움에는 원인이 있고 사람들의 깨달음에는 길이 있듯이, 모든 것은 연에 따라 생겨나고 연에 따라 멸한다.

세상의 이 모든 현상은 연으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것에 의해 생겨나고 그러한 연이 변하면 멸한다.

이 몸은 부모의 연으로 하여 태어났으며 음식물로 이어져 오고 있고, 이 마음도 경험과 지식에 의하여 길러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과 마음은 둘 다 연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연에 의하여 변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물의 눈이 서로 이어져서 그물을 이루듯이 모든 것은 서로 이어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물눈 하나만 가지고서 그것들을 따로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이다.

그물의 눈은 다른 그물의 눈과 서로 이어져 있으며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그물이라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그물눈은 다른 그물이 이루어지는 데에 필요한 것이다.



연기


그러면 사람들의 걱정과 슬픔, 괴로움과 번뇌는 어째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사람에게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부에 집착하고 명예와 이익, 욕망에 집착하고, 쾌락에 집착하고 제 자신에게 집착한다. 사람들은 이 집착에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초부터 이 세계에는 여러 가지 재앙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늙음과 병과 죽음을 피할 수가 없으므로 슬픔과 괴로움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도 따지고 보면 집착이 있기 때문에 슬프고 괴로운 것일 뿐 집착만 떠나게 되면 모든 고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또 이 집착을 파고 들어가 보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연속하는 사물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명과 탐애를 발견하게 된다.

무명과 탐애는 얻을 수 없는 것을 무턱대고 부단히 탐내서 집착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무명 :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 상태



본래 사물에는 차별이 없는데 차별을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 무명과 탐애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본래 사물에는 좋고 나쁨이 없는데 좋다, 나쁘다고 보는 차별은 바로 이 무명과 탐애의 작용이다.

모든 사람들은 항상 비뚤어진 생각을 일으켜 어리석음 때문에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이고, 자아에 얽매여 잘못된 행동을 하고, 그 결과 미혹의 몸을 낳게 된다.

업이라는 밭에 마음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무명의 흙으로 덮은 뒤에 탐애의 비가 고루 적시며 자아라는 물을 주고 그릇된 견해를 더하여 이 미혹을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걱정과 슬픔과 괴로움과 번민이 있는 미혹의 세계를 낳는 것은 이 마음인 것이다.

미혹의 이 세상은 오직 이 마음에서 나타난 마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고, 깨달음의 세계 또한 이 마음에서 나타난다.

한영대역 불교성전, 석능가 감수, 조일제 영역


10. 급식비와 학원비


어렸을 때는, 돈이 없어서 괴로웠다. 정확히는 돈이 없는 집에 태어난 것이 괴로웠다. 돈이 있었으면 울지 않았을 일들이 많았다.


중학교 2학년, 우리 반 종례시간은 짧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어떤 날은 평소보다 조금 길었는데, 그건 급식비를 내지 않은 아이를 부를 때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항상 급식비를 재 때 내지 못했던 나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오묘한 촉이 발달됐다. 선생님이 그 이름들을 부르는 날의 공기를 감지할 수 있는 일종의 육감이었다. 어쩌면 담임 선생님들의 난처하고 미안한 마음이 공기 중에 뿌려지고, 어린 나는 그걸 맡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던 나는, 친구들을 따라 학원을 다니고 싶었다. 역시나 학원비는 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학원비를 독촉하려는 선생님의 냄새 역시 맡을 수 있었다. 그런 낌새를 눈치챈 날엔 카운터가 있는 2층을 재빠르게 지나갔다. 어느 날, 대머리 부원장 선생님이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나를 향해 학원비를 내라며 소리쳤다.


당시엔 그것이 무척 싸늘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학원에서 배운 내용은 더 이상 얻어 가면 안 될 지식이었다.

빠르게 집으로 달려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좁은 거실에서 학원비를 내달라며 대자로 뻗고 울었다. 천장에는 길다란 형광등의 빛이 번졌다. 눈물은 볼을 타고 거실 바닥 위로 떨어졌다.


아마 눈물은 뾰족하게 가시처럼 변해 엄마를 찔렀을 것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당시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11. 내가 할 수 있는 건


돈 때문이었다. 부모님이 싸우는 이유, 할아버지와 엄마가 싸우는 이유, 내가 선생님께 불려 가는 이유는 모두 돈 때문이었다. 그래서 돈을 빨리 벌고 싶었다. 그냥 돈만 있으면,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꿈을 가지는 것이었다. 사회는 꿈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하고 지원해주니까 말이다. 그 편이 돈을 벌기에도 도움도 된다고 생각했다. 꿈을 좇는 학생이란 이미지와 남들이 많이 하지 않는 *필드 분야의 연구라는 두 요소가 나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며 세상이 나를 좋게 봐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어떤 방면에서 영리한 아이였다. 딱히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을 필요는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나는 꽃과 나무를 좋아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저 믿은 것뿐이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믿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특별한**생태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마 이 거짓말을 치는 동안 일기장 속에 적어왔던 “너 정말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좋아하고 싶은 거야?”라는 질문의 답은 때려치우고서야 나온 것 같다.


만약 정말 돈이 문제였고, 내가 꿈을 가져야 하는 것이 맞는다면


나는 그냥 패배자일까? 돈이 많이 없고, 꿈을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것을 가지려 노력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필드 분야 : 주로 야외에서 연구가 진행되는 분야

**생태적 지위 : 생물 집단 속에서의 위치. 먹이 사슬 속의 위치.


12. 다르마자카탑 : 처음엔


향실 뒤에는 아쇼카 석주가 있었고, 우측에는 다르마자카탑이 있었다. 둥근 원형의 단상 위에서, 부처님의 첫 번째 가르침이 설해졌다고 한다. 근처의 벤치에 앉아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처음으로 종교와 만났던 것은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다, 동네 교회에서 운영하는 아동센터에 나가게 되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에게는 하나의 놀이터였다. 밥도 주고, 과자도 주고, 선물도 주는 곳이었다.


그다음은 군대에서였다. 교회는 인기가 아주 좋았다. 세례도 세 번이나 받았다. 받을 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주었기 때문에, 훈련소, 보충대, 자대에서 모두 받았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교회에도 갔다. 정말 웃기지만, 일주일의 한 번 잠깐의 외출은 편히 잘 수 있었던 시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여전히 믿지는 못했다. 신이 있다면, 오히려 미웠다. 왜 이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신의 사랑이 조건적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주는 카카오 파이는 맛있었지만, 목사님은 말씀은 갈증을 씻겨주시진 못했다.


물론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서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저 그럴 듯 해 보이는 말이었고, 이해하고 싶은 대상이었다. 잘 정리되어 있는 글들을 보고서도, 내가 힘든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안다고 뭔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아는 걸로는 부족했다.





IMGP2063.JPG 처음 가르침을 주신 자리를 기린 탑이 있던 자리다.
IMGP2067.JPG 다르마자카탑에 대한 설명이 있는 표지판이다.
IMGP2064.JPG 이곳이 다르마 자카 탑이다. 기단부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앉아 계셨을까?
IMGP2060.JPG 사르나트의 전경이다. 뭔가 없어 보이는 건 부셔져서 그런 것일까?
IMGP2068.JPG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보였다.


13. 다메크 탑


다르마자카탑에서도 크게 보이는 다메크 탑은, 가까이 가니 더 크게 느껴졌다. 또 의자에 앉아서 다메크 탑을 보고 있었는데, 중국과 한국의 순례단이 그 앞에서 예불을 드리고 탑을 돌고 있었다.


한국 순례단이 돌 때 나도 그 사이에서 잠깐 들어갔다. 아주머니들이 얘는 누군가 하는 눈빛으로 처다 보았다. 가볍게 목례를 드린 뒤 같이 *탑을 돌았다.


*탑돌이 : 인도는 예로부터 존경하는 사람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3번 돌아 예를 표했다고 한다.



IMGP2069.JPG 다메크 탑으로 가는 길
IMGP2092.JPG 다메크탑이다. 상부에서 약 90cm 지점에 "모든 것은 원인으로 인해 생겨난다."라는 문구가 적혀져 있다고 한다.
IMGP2091.JPG 여기서 처음 한국 불교 신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가워 그 사이에 끼었다.
IMGP2070.JPG 중국? 대만? 쪽에서 오신 재가신자분들도 이곳에서 예불을 드렸다.


14. 모호와 선명


고고학 박물관을 들어가자 봤던 아쇼카 석주와 왼쪽 방 끝의 초전법륜상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매끄럽고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네 마리의 사자는 사방으로 소리 없이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초전법륜상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미묘함이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했다. 미세하고 부드럽게 다듬어진 마감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매끈하게 남겨진 석상의 경계들을 보면서, 결국 석상의 완성은 시간이 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석공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음부터, 햇빛과 바람을 오랫동안 맞아오면서 생기는 풍화에 의해서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인생도 이 석상과 비슷할까. 부모님에 의해 태어난 후, 세월이라는 풍파를 통해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니 말이다. 다만 사람의 몸은 부드러워 지기보단 거칠어지고 못생겨지기만 하는 것 같다.

석상은 모호해지면서, 사람의 주름은 선명해지면서 이야기의 마침표로 다가간다.


IMGP2093.JPG 사르나트 박물관이다. ㄷ자 모양으로, 상당히 넓게 느껴졌다.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초전법륜을 마치시고, 이곳 근처에서 정진을 하시던 석가모니 부처님은 한 청년을 만났다. 그 청년이 아샤다. 바라나시에 살던 재벌 2세 야샤가 부처님께 출가하면서 야샤를 따라 재벌 친구들 넷이 출가하게 되었다. 그 이후, 50명의 젊은이 이들이 집단으로 출가를 했다고 한다. 이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선언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나는 신과 인간들의 온갖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대들도 신과 인간들의 온갖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

수행승들이여, 이제는 편력의 길로 떠나라. 많은 사람들과 신들의 이익을 위해, 안락을 위해, 세상에 자비를 베풀기 위해 길을 떠나라. 길을 떠날 때는 같은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라.

수행승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 내용과 이론이 갖추어진 진리를 설하라. 안전하고 깨끗한 수행 생활을 보여주어라. 세상에는 때가 덜 묻은 사람이 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으면 퇴보하지만, 들으면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법정 옮김



15. 발자국


불교는 인도에서 탄생되어 동쪽으로 이동해왔다.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와 있다. 신기한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분명 저 선언에 의해 시작된 보물이 내게로 왔다.


많은 분들이 가르침을 기억하며 이곳을 걸어가실 때, 그 발자국들과 기억해보았다. 그리고 괜히 미안해졌다. 우리나라에서 출발해 이 장소를 밟고 있지만, 여기까지의 내 발자국들은 너무 가벼웠다. 너무 쉽게 찍은 이곳저곳의 발자국이 부끄러웠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의 길, 이 겹쳐지지 않은 수많은 발자국을 기억하며, 코끼리처럼 나도 그 사이로 발자국을 찍어야겠다.


이렇게 다짐해보지만, 벌써부터 지치기 시작한다. 아직 여행이 끝이 나려면 멀었는데. 힘이 든다. 엄마가 보고 싶다


-E2. 불타오름과 우로보로스[보드가야]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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