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부처님[E.2 불타오름과 우로보로스(2)]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보드가야 편

by 노루

이 지역의 발굴과 복원에 관한 얘기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발췌했다. 인도에서 불교가 잊혀진 뒤 마하보디대탑은 힌두교인 마한트에게 있었다고 한다. 1906년에 아나가리까 다르마빨라 사이에 있었던 재판에서도 마힌트의 승리로 끝났지만, 1949년 법령에 의해 힌두교인 4명과 불교인 4명에 의해 관리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완전히 불교인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결과가 있기까지 다르마빨라의 대외적 활동이 있었다고 한다.


타고르, 간디 그리고 보드가야


노벨상을 받은 시성 타고르는 솔직하게 다르마빨라에게 지지를 표명했다. ‘붓다의 깨달음의 자리에 세워진 대탑을 불교 교리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고, 불교에 호의적이지도 않고, 예불도 하지 않는 이교도의 관리에 두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이라는 것을 모든 힌두인들은 인정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념이 진실하다고 믿는 힌두인이라면 말이다. 자유를 믿는 것은 개인의 고귀한 의무이며, 이 역사적 장소를 신심으로 이 특별한 역사적 흐름을 존경스럽게 이행해온 단체에 돌려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정통 힌두인, 마하뜨마 간디조차도 대탑은 불교도들의 소유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대탑의 소유를 불교도들에게 줘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법적 어려움이 있겠지만 극복해야 한다. 대탑에서 동물을 죽여 희생제를 지내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모독이다. 불교도들의 감성에 상처를 주기 위한 방법으로 고의적으로 뿌자를 하는 것 또한 모독이다.’

인도 불교 성지순례 가이드, 무념 엮음



16. 마하보디대탑 : 착한 척


두 번째 추격전을 버린 뒤, 마하보디대탑으로 향했다. 보드가야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그리고 마하보디대탑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던 자리에 탑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탑에는 금강좌라가 불리는 곳 위에 불상이 놓여져 있었다.


시성 타고르도 이 앞에서 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던 불상을 봤지만 막 멋있는 불상은 아니었다. 4~5분 정도가 불상 앞에서 참선을 하고 계셨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나도 입구에서 산 꽃만 불상 앞에 놓고, 멀찍이서 불상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이곳에서 읽었던 타고르와 간디의 이야기가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힌두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저 두 분의 이 대탑에 대한 의견이 힌두교인 자세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저 자세는 힌두교인 만의 자세는 아니다. 자신들의 종교가 말하고 있는 것과 지금 내가, 우리가, 국가가 하고 있는 행동을 점검하고 그것과 일치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 그것은 모든 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의 자세일 것이다.


뜬금없지만, 고등학교 때 멀어진 친구 하나가 생각이 났다. 자신은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 그 친구의 행동은 교회에서 하지 말란 것만 골라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걸 따지고 들다 결국엔 멀어졌다. 그 친구가 착한 척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내로남불이라고, 내 착한 척은 보지 못하고, 남의 착한 척은 견디지 못했었나보다.


IMGP2125.JPG 마하보디대탑의 전경이다. 엄청 높고 뾰족하다. 이곳에서도 맨발로 다녀야 한다.


IMGP2098.JPG 낯이되면 무척 뜨겁기 때문에, 잔디를 깔아 놓으셨다. 하지만 잔디도 너무 뜨거웠다.
IMGP2095.JPG 문의 양 옆에 불상이 세워져 있었다.
IMGP2096.JPG 마하보디대탑의 불상이다. 이 것을 보러 가는 길에 온간 꽃들이 걸려 있었다

17. 부탄 할아버지


*응시탑에 가니, 한 부탄 할아버지가 그늘에 앉아 게셨다. 응시탑을 구경하고 바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나를 부른 신다. 한 인도 청년도 부르신다. 그러더니 갑자기 축복을 내려주신다. 그리고 기부금을 요구하셨다. 나는 50루피를 기분 좋게 드리고 탑을 내려왔다. 할아버지는 80살이 넘으셨고, 부탄에서 오셨다는 책도 잘 읽으시고 정정하셨다. 자리도 좋은 곳에 자리 잡으셨다.


*응시탑 : 이곳에서 보리수를 7일간 바라보셨다고 한다.


IMGP2127.JPG 부탄 할아버지시다. 응시탑 그늘 쪽에 앉아 계셨다.
IMGP2140.JPG 유적 한 켠에서 꽃들을 엮고 계셨다.



IMGP2137.JPG 보드가야의 아쇼카 석주이다.

IMGP2139.JPG 나가(Naga)라는 용이 부처님을 비와 곤충으로부터 보호하는 모습이다.
IMGP2134.JPG 주위에도 탑이 무척 많았다. 이것도 탑이라고 봐야하나?

18. 보드가야 박물관


보드가야 박물관은 내가 방문했던 박물관 중 가장 작고 허름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관련 책자라도 구할 수 있을까 싶어 가봤지만 책은 없었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전시실이 있으니 5루피를 주고 들어가볼만했다.




19. 수자타마을


수자타마을까지는 마하보디사원에서 걸어서 약 30분이 걸렸다. 말라버린 나이란자란 강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너면 곧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주 시골인 이곳에 탑이 우뚝하니 서 있는데, 이곳이 수자타집의 터 위에 세웠던 탑이 있던 자리라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그냥 우유를 가져다 준 아이의 탑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생각이 들지만, 수자타가 부처님께 올린 우유 공양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한다.





IMGP2159.JPG 네란자라강을 건너면 수자타마을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네란자라강이 말라 있는 시기라고 하였다.



IMGP2162.JPG 그냥 운동장이다. 얘들도 모여서 놀고 있었다.


IMGP2163.JPG 부처님의 깨닫기 직전 우유죽을 가져다 드린 수자타의 집 터이다.


IMGP2168.JPG

20. 디샤


수자타 탑 출구로 나가보니, 릭샤가 하나 있었다. 다시 30분을 걸어가긴 힘들어서 릭샤를 타려고 하니 한 가족이 다가왔다. 아삼지방에서 온 14살 아샤와 가족이었다. 디샤의 아버지께 릭샤에 동행을 해도 괜찮겠냐고 물으니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한 곳을 더 방문을 하다고 하기에 같이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디샤는 프로 배드민턴 선수를 준비하고 있는 아이였다. 3일 뒤에 있는 배드민턴 경기를 하기 위해 이곳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8살 때부터 배드민턴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보다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들을 더 잘 알고 있었다. 한눈에 보깅도 똑 부러지는 여자아이였다. 왠지 곧 티비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디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줬다. “나 이름 아샤입니다.” “메라 남 아샤 헤”. 어순이 같아, 단어를 맞춰서 하나씩 알려주니 금방 외워 나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똑똑한 아이였다.





IMGP2181.JPG 디샤의 가족과 먼저 간 곳은 수자타 마을의 한 사원이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뭔가 만든 티가 났다.
IMGP2174.JPG 수자타가 석가모니 부처님엑 우유죽을 공양하는 장면인 것 같다.
IMGP2179.JPG 분위기가 약간 무서웠다. 기분탓인가.




21. 카샤파 형제의 사원


기사님이 관광을 시켜준다며 데려와 주신 곳이었다. 들어가 보니, 가이드분이 나오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셨다. 여기에 불의 용이 머물던 우물이 있는데, 이곳에서 부처님이 주무셨다고 한다.


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6년간을 이곳에서 수행을 하신 곳이라며 아주 중요한 장소라고 강조하셨다. 그 선생님의 요지는 이곳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 우물에는 용도 없어 보였고, 더군다나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우물도 아니었다.


다짜고짜 나에게 나무 앞에서 절을 시키셨다. 하래서 하고 보니 또 기부금을 내야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 10루피를 살포시 나무 아래 던졌다.





IMGP2189.JPG 저 우물에서 불의 용과 싸웠다고 이곳에 계신 분꼐서 설명해 주셨다.
IMGP2191.JPG 왜 이 앞에다 절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시키셔서 해야했다.

22. 붉은 실


카샤파 형제의 사원을 나와 옆에 있는 힌두 사원에 갔다. 디샤 아빠 말로는 사원에도 최근에 지어진 사원과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사원이 있는데, 이곳은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사원이라고 하셨다. 실제로 힌두 사원 내부로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는데,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 점집에 가서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색채감이 강했고, 향이 아주 진했다. 사제님은 웃통을 벗고 있었는데, 배가 산처럼 나와 있었다. 사제 앞에서 디샤 가족이 축복을 받았다. 나에게도 오라고 해서 나도 받았다. 붉은 실을 내 오른쪽 손목에 감아 주었다. 남자와 여자가 감는 위치가 달랐다. 샤워를 할 때 손목에서 붉은 물이 녹아 나왔다. 하지만 이 축복을 받은 직후, 설사가 시작되었다.


23. 에스코트


디샤의 가족과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있던 식당에서 밥을 해결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다시 겁이 났다. 그 개놈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됐다. 200미터 전부터 동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100m 전에 밖에 나와 계신 사모님을 만났다. 내가 6시쯤에 돌아온다고 얘기한 걸 기억하시고 나와 주셨던 것이다. 사모님의 에스코트를 받으면 집에 들어갔다. 어제 생각을 하니 다시 무서웠다.




24. 25루피 아침밥


일곱 시쯤 나와서 길을 걷다가 노점 탈리를 만났다. 25루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 그릇이나 먹을 수 있었다. 상당히 맛있었다. 내가 오른손으로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으니, 주위에서 먹고 있던 현지인 분들이 허허 웃으셨다.




KakaoTalk_20181214_001859970.jpg 무한 리필! 손으로 비벼 먹어야 더 맛있진... 않다.

25. 유해피? 미해피 프라이스


*브라흐마요니를 간다고 하니 400~500루피를 부르신다. 개인 이동은 보통 돈이 많이 든다. 인도의 기름 값이 비싼 것도 사실이다. 예상 가격은 300루피였다. 시세를 모르는 외국인에게는 유해피 미해피 프라이스면 되지만, 시세를 알고 나면 속여 넘기려고만 하는 그들을 보며 전혀 해피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꼭 오토바이를 타고 갈 필요도 없고 대절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브라흐마요니까지 이동수단을 대여하면 편하긴 했다. 가야로 가는 골목에 있기 때문에 쉐어를 해서 브라흐마 요니까지 쉽게 왔다 갔다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격은 50루피 이하로 움직일 수 있다.


*브라흐마요니 : 불의 경이 설해졌다는 곳으로, 불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이라고 한다.


26. 브라흐마요니


브라흐마요니는 그러게 높지는 않은 산처럼 보였다. 민둥산이고, 코끼리를 닮은 돌산이었다. 높이는 560m 정도였고, 계단의 경사는 60도 정도를 유지했다. 이곳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불을 숭배했던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줬다고 한다.


계단을 꽤 많이 올라가야 했다. 나는 올라가다 3번 정도를 쉬어야 했다. 중간에 지친 분들은 그늘에서 뻗어 계셨다. 중간 중간 음료수와 물을 파시는 분들이 있었다.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지만, 되도록 물은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정상 바로 전에 큰 돌이 하나 있는데, 그 큰 돌 아래에는 공간이 있어서 눕거나 기어서 통과를 할 수 있었다. 거기서 계시는 한 아저씨가 계속 한번 미끄러져 보라고 권유하셨는데, 여기를 통과하면 죽어서 좋은 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


별로 태어날 생각은 없었지만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한 번 미끄럼틀을 탔다. 돌이 무척 커서, 내가 통과할 때 무너진다면 즉사였다. 재미있게 통과해서 내려오니, 기부금을 요구하셨다. 10루피를 드렸다. 10루피에 좋은 곳이라니 개이득이다.




KakaoTalk_20190213_093634101.jpg 브라흐마요니이다. 얼핏 보면 코끼리 같기도 하고...
KakaoTalk_Moim_7L88sM6EDdZPkD8qVu1MROfuIiTF17.jpg 꽤나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정상에 도달 할 수 있다.
KakaoTalk_20190213_093633193.jpg 저 돌 아래를 통과하면, 죽어서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붉은색이 무당개구리를 연상시켰다.
KakaoTalk_20190213_093632876.jpg 10루피를 드리고 통과해서 내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는지, 바닥은 반들반들 했다.

27. 정상에서


정상에 올라가 보니, 가야가 훤히 보였다. 주변에 여기보다 높은 곳은 없었다. 정상의 사원에 들어가 보니, 거기 계시던 사제 분이 다짜고짜 또 절을 시키셨다. 이상한 발자국 앞이었는데, 딱 봐도 부처님 발자국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체험한다 생각하고 절하는 척을 하니, 이마에 점을 하나 찍어 주시고, 또 돈은 내라고 하신다. 주기 싫어서 10루피 짜리 하나를 내려고 하는데, 여기서는 100루피 단위로만 돈을 받는다고 하신다. 그래서 무시하고 내려왔다.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서 한 칸씩 걸어 내려왔다. 이 곳에서는 “불의 경”이 설해졌다. 내려갈 땐 훨씬 편했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PkD8qVu1MROfuIjipu9.jpg 왜 이 발바닥에 절을 또 시키시는지...
KakaoTalk_Moim_7L88sM6EDdZPkD8qVu1MROfuIjnDqh.jpg 이 사원에는 비둘기도 같이 살았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PkD8qVu1MROfuIjlr1L.jpg 분위기는 디샤 가족과 같던 힌두교 사원과 비슷했다.

내가 갔을 때도, 가이야사 주변에 많은 사원들이 있었다. 그 시대에도, 이 주변에는 불을 섬기는 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경은 정상 근처에서 불을 섬기는 수행자들에게 주었던 가르침이다. 그 내용을 발췌해왔다.


모든 것이 불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눈이 불타고 있다. 눈에 비치는 형상이 불타고 있다. 눈에 의한 인식도 불타고 있다. 눈과 그 대상과의 접촉도 불타고 있다. 눈이 접촉하는 데서 생기는 감수, 즉 즐겁고 괴롭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들도 또한 불타고 있다. 왜 불타고 있는 것일까. 탐욕의 불, 노여움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타오르고 있다. 태어나고 늘고 병들고 죽고 걱정하고 슬퍼하는 불로 타오르고 있다.

귀도, 귀로 듣는 소리도, 코도, 코로 맡는 냄새도, 혀도, 혀로 맛보는 맛도, 몸도, 몸으로 느끼는 감각도, 마음도, 마음의 대상도 모두가 한결같이 타오르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관찰할 수 있는 현명한 제자들은 눈에 대해서도, 형상에 대해서도, 그 접촉이나 감수에 대해서도, 또한 귀나 코, 혀, 몸이나 마음에 대해서도 모두 하잘 것 없다고 생각한다. 하잘것없다고 생각하면 집착해서 떠난다. 집착해서 떠나면 해탈한다. 해탈하면 ‘나는 이미 해탈했다.’는 인식이 생긴다. 그리고 ‘생존의 밑바닥은 이미 다 없어지고, 청정한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윤회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불타 석가모니. 와타나베 쇼코, 법정 옮김


28. 가치관으로 꽉 차있다.


나의 하늘은 가치관들로 꽉 차있다. 그리고 그 하늘엔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들도 꽉 차있다.


가치관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경계에 대한 믿음이다. 이 선들이 나를 그려 놓으면, 그리지 않은 부분에는 남들이 서 있다. 그리고 그 경계가 부딪히는 지점에서 불꽃이 일어난다.


작은 불꽃은 쏘시개가 되어 큰 불을 만든다. 노을이 지는 것도 아닌데 하늘은 금세 붉어진다.


한번 생겨난 불꽃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8톤 트럭처럼 관성을 가지고 계속 타오른다. 서로의 믿음을 연료로 꺼질 틈 없이 타오른다.


제 꼬리를 먹으며 계속 태어나는 우로보로스처럼, 내가 허공에 그어 놓은 선들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의 개성을 증명해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불타오른다.


파란 하늘이 그립다.


-E3. 믿을 만한 사람?[라즈기르]에서 계속-


부처님을 꺠달으시고, 저기 꽃으로 장식된 길을 일주일 간 왔다갔다 하셨다고 한다.
나가기 전에, 경비원 아저씨 옆에서 전경을 찍었다.
보리수나무의 울타리 외각에도 사람들이 앉아서 명상을 하고 계시거나 책을 읽고 계셨다.


keyword
이전 06화안녕, 부처님[E.2 불타오름과 우로보로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