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부처님[E.3 믿을 만한 사람?(1)]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라즈기르 편

by 노루
믿을 만한 사람?

믿을 만하다는 형용사가 사람이라는 명사 앞에 올 수가 있나?


웹툰, 덴마 중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라즈기르 편


2018.10.17~2018.10.18

여행을 시작한지 약 40일이 지났다. 몸이 지치니, 마음도 지쳤다. 차로도 움직이기 힘든 길을, 굳이 내가 왜 가야할까 생각해보지만, 이미 떠난 길에 생각을 보태봤자 소용없었다.


지난 날 마가다국의 수도로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을 거리들도 지금은 관목만이 무성한 야생동물의 보금자리가 되어 있다.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즈기르(왕사성)은 부처님 시대 당시에 많은 사상가와 수행자들이 모여들었다.


불타의 세계, 나까무라 하지메




보드가야 근처에서, 불의 경을 설함으로써 불을 섬기던 카샤파 3형제의 교단 1000명을 제도하고 부처님은 라즈기르로 오셨다. 왜 라즈기르로 오시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수행자 시절 만났던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빔비사라왕과의 만남 부분을 발췌했다.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와의 첫 만남


“태자여, 방해가 되어서 미안하오. 나는 왕사성의 빈비사라왕이오.”

보살은 왕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하였다.

“아닙니다. 대왕이시여,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태자가 출가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놀랐오.

무엇 때문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였습니까?

그대와 같이 신분이 높고 훌륭한 청년이 중이 되는 것은 아까운 일이오.

태자가 원한다면 이 곳에 머물러 나와 함께 있어주시오.

무엇이든 그대가 원하는 것은 다 줄 것이니,

이곳에서 인생을 즐기지 아니하겠오?”

보살은 웃으면서, 그러나 근엄하게 말하였다.

“나는 세속적인 욕망이 없습니다. 이승에 희망이 없어 출가하였으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세속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이 있습니까?”

“대왕이시여,..오직 생과 늙음과 병과 죽음의 고통을 초월하여 최상의 *보리를 얻고자 출가하였습니다.”

“태자는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오?”

“그것을 얻기 까지는 죽어도 물러서지 않을 결심입니다.”

...

“구도자여, 당신은 부처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 부처가 되면 우리 나라에 먼저 와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에게 생노병사를 끊는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보살은 약속을 하였다.

신팔상록, 동국대학교

*보리 : 깨달음




1. 얄미워



사장님의 마지막 에스코트를 받으며, 라즈기르로 향하는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라즈기르에 가기 위해서는 가야역 근처의 버스 터미널로 가야했다. 사르나트 시장 근처에서 릭샤를 쉐어하여 50루피에 역까지 갈 수 있었다.

라즈기르로 가는 기차가 있었지만,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출발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버스 정류장을 찾으려 여기저기 묻고 있는데, 손으로 패달을 굴리는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께서 자신을 따라 오라면 손짓하셨다. 괜찮다면 사양했지만, 이저씨는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셨다.

그 버스정류장에서 20분 정도를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라즈기르가 아닌 빠트나를 향하는 버스였다.

슈퍼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라즈기르로 갈 수 있는 버스는 역에서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릭샤꾼들은 기가 막히게 냄새를 맡고 나에게 슬쩍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도 모른 체, 라즈기르로 가는 버스 타는 곳에 가고 싶다고 하니, 가격은 코끼리처럼 날뛰었다. 이곳까지 온 것보다 제대로 가격이 맞는 릭샤를 찾는 것이 더 힘들었다.

내 주위에 몰렸던 릭샤꾼들은 가격을 일정 이하로 내리지 않았다. 결국에 타협점은 150루피였다. 1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날 내려주고 돈을 받아가며 씩 웃는 릭샤꾼이 얄미웠다.

버스는 다행히 바로 잡을 수 있었다. 표 가격은 60루피였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6ahc.jpg 가야 역이다. 아쉽게도 라즈기로로 가는 기차는 탈 수 없었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a0Ya.jpg 가야 역 근처에 슈퍼다. 이 앞에서 빠트나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2. 미니게임 : 릭샤 협상



인도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릭샤협상이었다. 결과는 항상 패배였지만, 어떻게 나를 요리하시는지 관찰 할 수 있었다.

협상도 게임이었다. 게임의 종류에 따라 중요도는 다르지만, 이 게임에서는 정보가 무기이다. 이 정보가 실제로 많거나, 많은 척하거나, 상대방이 말하는 정보를 판단할 수 있다면 흔들리지 않는 게임을 할 수 있다.

첫째는 정보의 양이다. 이게 확실해야 흔들리지 않을 근간이 생긴다. 릭샤의 가격은 지역마다 다르다. 보통 1km당 10루피를 잡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의 수, 대기시간, 동행자, 현지 릭샤 량에 따라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현지 물가 확인을 위해서는 숙소나 식당의 매니저에게 값을 먼저 물어보면 편하다.

두 번째는 허세이다. 일단 내가 관광객이며, 릭샤에 대해 잘 알지 않는 이상 정보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허세를 부릴 필요가 있다. 정보를 많이 가진 척, 여행을 많이 다닌 척하며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뒤로 돌기다. 노는 릭샤가 많을수록 가격은 떨어진다.

세 번째는 판단력이다. 대부분의 릭샤꾼들이 내가 말한 세 가지 요소에 상당한 내공이 있다. 비싸다고 하면, 기름값, 릭샤 유지비 등의 수치등을 말하며 자신이 제시하는 가격이 타당함을 설득한다. 내가 알 필요도 없는 내용을 말하면, 높은 확률로 내 판단을 흐리기 위한 잔기술들이다. 판단이 흐려지면 게임의 주도권은 넘어간다.

솔직히 릭샤 협상이 제일 짜증났었다. 그래도 미니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원하는 가격에 릭샤를 구하면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dRF8.jpg 내가 버스에서 나오는 걸 보고, 릭샤 아저씨들이 냄새 맡고 나에게 오셨다.

3. 미얀마(버마) 절



라즈기르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12시 이었다. 볶음밥을 한 그릇을 먹고 근처의 게스트 하우스를 검색하여 찾아 갔다. 웃통을 까고 이제 막 잠에서 깬 것 같은 사장님은 방을 주지 않고 일단 앉아서 차나 한잔 하자고만 하셨다.

뭔가 이상했다. 줄 거면 얼른 주지 왜 자꾸 얘기를 하자고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얼른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간혹 아예 외국인을 받아주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런 곳인 듯싶었다. 시골로 들어갈수록 그런 곳이 많았다.

관리하시는 아저씨가 옆에 있는 절로 가보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버마템플이라고 불렸는데, 저녁때가 되어서, 버마가 미얀마를 뜻하는 것인 줄 알 수 있었다. 미얀마 사원에 들어가려고 하니 멀리서 개들이 또 짖어댔다.

관리하시는 분이 현관으로 나오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싱글 룸을 배정 받았고,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곳은 기부금 없이, 숙박비와 음식비를 따로 내야 했다. 숙박비는 350루피였고, 저녁은 150루피였다. 또 최대 2박 3일간 머무를 수 있었다.




4. 퉁가



라즈기르는 죽림정사를 포함하여 여러 유적지들이 펼쳐져 있었다. 시간이 많다면 걷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하루 만에 걸어서 보기에는 꽤 넓은 지역이었다.

미얀마 절의 매니저에게 부탁해 통가를 불렀다. 통가는 말이 끄는 마차인데, 이곳은 릭샤보다 통가가 더 많았다. 통가는 릭샤 보다는 느리지만, 안전하고 재미있고, 색달랐다.

차들이 이용하는 도로 위에, 차와 릭샤를 합친 것보다 퉁가가 더 많았다. 탑승인원이 최대 5인인 릭샤 위에 2배가 넘는 인원이 타는 것처럼, 내 옆을 지나가는 통가 위에는, 언뜻 보기에도 15명은 넘는 사람들이 올라타 있었다. 말은 자신이 몇 명이나 태운 지 모르겠지만, 말의 표정은 무척 힘들어보였다.

약 4시간의 일정으로 대부분의 유적지를 돌아보는 것에 400루피에 합의했다. 아저씨 옆에 올라타, 여느 때처럼 인사를 건내며 여행을 시작했다.

“나마스떼! 메라 남 주노 해!, 메 싸우스 코리아쎄 아라아 홍!, 메 힌디 토라토라! 짤로 짤로!(안녕하세요 준호에요! 한국에서 왔어요!, 힌디 조금 조금! 출발!)

대부분의 아저씨들이 그렇듯, 나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이 웃으신다. 나도 아저씨를 보고 웃었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lQ66.jpg 통가 아저씨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KAyC.jpg 영축산으로 가는 길 이 도로에는 차보다 말이 더 많았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whYm.jpg 날씨가 좋으면 오히려 버스 위가 더 좋으려나? 좀 더 긴 버스 위에 20명이 탄 것도 본 적이 있다.

약속을 지키러 라즈기르에 오신 부처님은 빔비사라왕과 마가다국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신다. 그리고 빔비사라왕은 도시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조용한 대나무 숲에 죽림정사를 지어 기증했다. 빔비사라왕의 전폭적인 지지로 스라바스티의 기원정사와 함께 교단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즈기르를 중심을 펼쳐지는 이야기에서, 빔비사라왕과 그 가족을 빠트릴 수 없다. 이 부분은 그 비극의 시작이다.


아들을 죽이려하는 아버지


왕사성의 빈비사라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아들이 없어 항상 근심에 싸여 있었다.

어느 날, 왕을 찾아 온 어느 관상쟁이가 “지금 살아 있는 한 선인이 죽으면,

반드시 왕의 태자로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선인이 죽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왕은 사람을 시켜서 남모르게 선인을 죽였다.

과연, 선인이 죽은지 오래지 않아서 왕비는 아이를 잉태하였으며 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왕은 곧 관상쟁이를 불러와 아이의 상을 보고 점을 치도록 하였다.

관상쟁이는 아이의 상을 보고서

“이 아이는 태어나기 전에 전 날의 일을 원한으로 품었기 때문에,

자란 뒤에는 반듯이 아버지를 해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아이가 두려워 높은 누각에서 떨어뜨려 죽이려 하였다.

높은 누각에서 떨어뜨렸으나, 아이는 손가락 하나가 부러졌을 뿐이었다.

태어나기 전에 원한을 품었다고 해서 이름을 아쟈타사투르라고 하였다.

아쟈세왕자를 죽이려 했던 빈비사라왕은

왕자를 양육하는 사이에 정이들어 사랑하게 되었다.


빔비사라왕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자세왕자은 자신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알고 있는 소문을 듣게 된다. “빔비사라왕이 아쟈세왕자을 죽이려 했다”는 소문을 듣게 된 후, 아쟈세왕자은 빔비사라왕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이때, 부처님의 사촌이자 교단의 일원 이었던 데바닷타는 부처님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부처님의 교단을 무너트리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지자였던 빔비사라왕을 처리해야했다. 데바닷타는 아쟈세왕자에게 접근해, 빔비사라왕을 없애라고 유혹한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


아쟈세왕자는 왕위를 찬탈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유폐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야쟈세왕은 빈비사라왕이 있는 곳에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고 일체의 음식을 주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어머니 위제희 부인은 울면서 아들에게 아버지의 구명을 간청하였으나 정권에 눈이 어두워진 아쟈세왕은 듣지를 않았다. 아버지를 굶겨 죽일 작정이었다.

위제희부인은 생각 끝에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꿀과 밀가루를 섞어 몸에 발랐다. 그리고 빈비사라왕이 갇혀 있는 곳으로 갔다. 몸에 바른 꿀과 밀가루로 빈비사라왕은 연명을 하였다.

빈비사라왕은 열린 감옥의 창으로 멀리 영축산을 바라보며, 부처님께 예배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야쟈세왕은 부왕이 죽지 않으므로 그 까닭을 부왕에게 물었다.

빔비사라왕은 “저 열린 창문으로 부처님을 예배하기 때문에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하였다. 아쟈세왕은 그 말을 듣고 빈비사라왕이 일어서지 못하도록 두 발목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창문을 막아 버렸다.
그 무렵 아쟈세왕의 아들 가비가 병을 앓고 있었다.

병든 아들을 근심하는 아쟈세왕에게 위제희부인은, 아버지 빈비사라왕도 아쟈세왕이 병을 앓을 때, 몹시 근심하며 간호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아버지 빈비사라왕의 자애로운 부정을 이야기 들은 아쟈세왕은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다.

아쟈세왕은 곧 신하들을 빈비사라왕에게 보내어 모셔오도록 하였다. 빈비사라왕은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의 요란한 발소리를 듣고, 보다 괴로운 고문을 당할까 두려워 기절하여 죽었다.

오래지 않아서 어머니 위제희부인도 죽었다. 빈비사라왕이 죽은 때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8년 전이었다.


*열반 : 돌아가시다



괴로움에 대해 묻는 아자세왕


부처님의 말씀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부왕에 대한 죄책감과 부처님을 해치려 했던 죄책감에 늘 괴로워하게 된, 아쟈세왕은 때때로 신하들에게 괴로운 마음을 토로하였다.

그 때, 기바왕자는 부처님을 찾아가 뵙도록 권하였다. 기바왕자의 권을 받은 왕은 대신들과 함께 부처님을 찾아 갔다. 왕은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죄를 짓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와 남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집착과 탐애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지입니다.”

“무지의 뿌리는 무엇입니까?”

“행동과 생각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왜 변합니까?”

“본래부터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본래부터 변합니까?”

“꼭두각시나 허깨비와 같아 아무 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변합니다.”

“누가 변화를 시킵니까?”

“변화를 짓는 주체가 없이 변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헤아립니까?”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의심은 어디서 일어납니까?”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근거가 없기 때문에 가령 말을 들으면 의심하게 됩니다.”

“도란 무엇이며, 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음욕과 어리석음과 분노 등을 벗어나면 그것을 도라 하며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자세왕은 후에 대외 정복사업으로 중인도 최강국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슬픈 사실은 자기가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도 그의 아들에게 살해당한다. 이 비극은 그의 하리얀카 왕조에게서 빈번하게 반복되고, 결국엔 왕조는 망하게 된다.

신팔상록, 동국대학교




5. 아들의 탑과 아버지의 감옥



영축산이라고 불리는 곳을 향해가다 처음 맞이한 유적이 아자세왕의 탑이었다. 이 탑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남은 *사리 중 8분의 1을 모셨던 곳이라고 한다. 표지판만 없었으면, 유적인지 모를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아 있었다. 그냥 도로가 옆에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었다.

그 다음 맞이한 유적지가 빔비사라왕의 감옥의 터이다. 빔비사라왕은 아자세왕에게 유폐되어 죽었다. 감옥의 창을 통해서 부처님이 계신 영축산을 바라봤다고 하는데, 분명히 그 터에서 영축산이 보였다. 터밖에 남아 있지 않은 곳이지만, 창을 넘어 기도드렸던 빔비사라왕의 모습을 기억해 보았다.

아들의 탑과 아버지의 감옥을 지나가는 기분은 묘했다. 빔비사라왕이 수행자를 죽이고, 그 수행자의 환생자인 아자세왕자가 빔비사라왕을 죽이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아자세왕자가 자신이 환생자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을 믿음으로써 원인과 결과의 고리가 만들어진 꼴이 씁쓸했다. 아자세왕자 본인은 빔비사라왕으로부터 분명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을텐데 말이다.

두 왕 모두, 부처님에게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들이 한 행동의 결과까지는 피할 수 없었음은 인상 깊다. 부처님은 인과론자였다고 하시는데,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도 인과는 바꿀 수 없는 것 같다.

*사리 : 화장한 뒤 나오는 구슬 모양의 것.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u5zQ.jpg 아자세왕의 탑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아저씨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 정도로 관리는 되어 있지 않았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Cl3Q.jpg 아자세왕의 아버지, 빔비사라왕이 있던 감옥의 터다. 여기서 확실히 영축산이 보였다.

6. 엔돌핀


작용과 반작용은 분명한 과학 법칙인데, 원인과 결과는 실제로 법칙 중 하나일까? 원인이 있는 것엔 무조건 결과가 있다면, 내가 느끼는 괴로움이라는 결과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제까지 내가 느꼈던 힘듦의 대부분은 꿈을 가졌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꿈을 버리면 그 힘듦조차 버려지는 걸까? 꿈을 버린다고 해서 버려지나?

이 부분에서 나는 솔직해져야 한다. 꿈과 돈 탓은 책임전가다. 정확히는, 내 주위 사람들보다 내가 더 잘난 사람이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겼던 것은, 나는 더 잘난 사람이 되어 더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남보다 잘남을 원인으로 더 많은 행복이라는 결과는 나올 수가 없었다. 남보다 잘남을 원인으로는 엔돌핀이 잠깐 나왔다 사라진다. 그거 뿐이다.

이제까지 엔돌핀이 행복인 줄 알았다. 더 잘해야, 더 좋고, 더 낫고, 더 행복해 질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잠깐 행복해지고 싶지는 않다. 그냥 계속 행복하고 싶다, 나는.

“행복=엔돌핀”이라는 공식은 확실히 생존에는 유리하다. 나의 생물학적인 특성과도 잘들어 맞는다. 하지만 생존이 해결된 지금의 나에게는 불리한 공식이다. 엔돌핀이 행복이라면, 엔돌핀의 부재가 불행이 될 수밖에 없다. 엔돌핀이 내가 찾던 행복이 맞다면 약을 하는 편이 가장 바른 방법이 될 것이다.

빔비사라왕과 아자세왕도 이 공식을 쓰지 않았을까?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 둘도 자신의 권력을 물려 줄 아들과, 아빠가 가진 권력을 가져 순간적인 엔돌핀을 얻어보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다른 공식이 필요하다. 이 공식은 믿을 수 없다.





7. 파도 앞에서



내가 의문을 품는 것은 행복이라고 느껴왔던 그것이 정말 행복이냐는 질문이다. 그리고 어째서 이러한 행복이 불안을 항상 동반하며 순간적이냐는 불평이다. 또한, 그 행복을 쫓는 과정에서 왜 나는 불안하고 우울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공식의 사용에 대해 고민해보려한다.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너무나도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는 아니다. 나의 일부로서 표현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진실로 내가 아니다. 그것들이 내가 아니듯, 남들도 그것들이 아니다. 이 공식의 함정은 여기에 있다. 나는 항상 나를 재산과 사회적 지위로 보아왔고, 그렇기 때문에 남 역시 그렇게 보아왔다.

숫자와 계급으로 나를 소개해왔기에, 나는 닻 없는 배처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파도처럼밖에 볼 수 없었다. 다가오는 파도가 나보다 작다면 안심했고, 나보다 크다면 벌벌 떨었다. 그렇기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더 큰 배를 만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들 수 있는 배보다 큰 파도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 내가 탄 배는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배를 만들 만들어서 파도가 적은 곳에서 조심히 항해 해야할까? 어떤 파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의 핵심은 간단하다.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나는 나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8. 바이러스



나는 은연중에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이 공식을(“행복=엔돌핀”) 배웠다. 그리고 이 공식은 자기 자신을 숫자와 계급으로 바라보는 인식을 수반한다. “소유와 비교”를 바탕으로 하는 이 인식은 비물질적인 것(지식, 경험, 관계)까지 소유화 시키며 나의 존재를 확장시켜나갔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나의 경계선의 상대적인 확장의 순간 나는 행복함을 느껴왔다.

이러한 방식의 행복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다분히 중독적이다. 분명히 잠깐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생물학적 특성과 맞물려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나”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 공식과 인식을 잊어야할까? 이것을 잊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잊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나는 이 둘에 대해 어떤 것을 더 알 수 있을까?

이 공식과 인식은 사회에 감기처럼 만연하다. 때문에 이 둘의 특성과 전염성은 바이러스와 유사하다. 바이러스처럼, 숙주 생물이 존재하는 한, 죽지 않는다. 증식할 수 없다면, 잠복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 타길 기다린다.

이 셋은 서로의 영양분에 기대어 진화해왔기 때문에 때어 놓을 수 없는 사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바이러스인지, 바이러스가 나인지 구분하는 경계선은 점차 모호해져왔다. 어쩌면 내가 바이러스이고, 숙주가 나일 수도 있다. 주도권 자체는 바이러스에게 있었기 때문에 후자의 가능성은 더 농후하다.

이 바이러스 같은 공식을 모른다고 우겨보아도 말이 되지 않는다. 이 공식은 인식하고 있어야, 모를 수 있다. 정말로 모른다는 말은, 모른다는 것을 인식조차 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있는 한 이 바이러스 또한 나와 같이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바이러스를 버릴 수 없듯이, 그 바이러스 또한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주도권을 넘겨받을 때이다.



9. 왕의 길 위에서


영축산에 가는 길에 *자와띠의 망고승원 터가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이 역시 터만 남아 있다. 영축산의 꼭대기에는 일본에서 세운 샨티스투파가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쪽 봉우리에는 독수리봉이 보였다. 깃자꾸따라고 불리는 독수리 봉까지는 지상에서 약 30~30분 정도가 걸렸다. 올라가는 길은 “빔비사라왕의 길”이라고 불리는데, 이 길을 따라서 빔비사라왕이 부처님에 가르침을 들으러 가거나 맞이하러 갔다고 한다. 길이 반듯하게 나 있어 올라가는데 무리는 없었다.

이런 길이 있을 만큼, 이 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좋아했나 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2개의 거점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도 이 빔비사라왕의 지지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1,250명의 스님들이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하는데, 그 분들을 먹일 식량이며, 잠자리며 한 개인이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왕은 찾으려던 것을 이 길 위에서 찾았을까?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ydjQ.jpg 일본 사원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한문으로 된 문도 있었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E9ZF3Qew1JQOH7JUdiO.jpg 영축산 입구다. 늦은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노점들이 문을 하나도 열지 않았다. 쉬는 날인가?
IMG_6012.JPG 이 길이 빔비사라왕의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왕은 부처님을 만나러 갔다고 한다. 지금은 벽돌로 잘 깔려있었다.

10. 독수리는 보지 못했지만



깃자꾸띠는 독수리봉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영축산의 한 봉우리인데 그곳에서 설법과 수행을 하셨다고 한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작은 석굴 두 개를 만날 수 있었다. 수까라카따 레나라는 석굴인데, 불상이 모셔져 있었다. 이 불상에 향을 올렸다. 이 곳은 부처님이 쉬었던 장소라고 가이드북이 소개했다. 오후 두 시인데도 불구하고 석굴 안은 쾌적했다. 밖은 정말 더웠다.

깃자꾸띠에 도달하니, 왜 마가다국이 강대국이었는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방이 돌산으로 둘러쌓인 요새였다. 현대전에서는 무의미 하겠지만, 육군을 기반으로 전쟁을 했던 시대에는 이 지리적 요인이 한 목 했을 것이다. 지리적 장점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우고 밖으로는 점령을 해나갔을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니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독수리는 보지 못했지만, 정상에는 작은 불상과 불단이 모셔져 있었다. 이곳에 앉아서 수행과 법문을 하셨다고 한다. 향을 올리고 가이드 북을 읽었다. 날이 너무 뜨거워 얼마 있지는 못했다. 밑에 있는 돌 그늘 아래에서 쉬다, 샨티 스투파로 향했다.


IMG_6026.JPG 올라가는 길, 두개의 석굴을 볼 수 있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석굴 같았다.
IMG_6029.JPG 이곳에서도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렀다고 하는 것 같다. 들어가보니 시원했다.
IMG_6053.JPG 뭔가 독소리 같기도 하고?
IMG_6039.JPG
IMG_6043.JPG 꼭대기에는 이렇게 불단이 모셔져 있었다.
IMG_6044.JPG
IMG_6052.JPG 탁 트여져 바람이 불어왔다. 한 스님과 그의 어머니?로 보이시는 분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곳과 관련되어 있는 부처님의 제자 이야기가 많다. 많은 분들이 있지만 그 중, 멍청이 주리반특이야기를 발췌해왔다. 주리반특에게는 형 마하반특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마하반특은 주리반특에게 재산을 다 주며 출가를 하려했다. 하지만 우둔한 동생을 홀로 둘 수 없었던 형은 주리반특을 데리고 같이 출가하게 된다.


멍청이 주리반특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주리반특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그는 출가한 3년이 지나도록 *게송 한 구절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바보취급하고 멸시하며 비웃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부처님께서 “입을 지키고 뜻을 다스려 몸으로 나쁜 일을 짓지 말라.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는다.”는 간단한 게송 하나를 가르쳐 주셨다.

주리반특은 부처님께서 주신 게송을 외우려고 하였지만 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방금 들은 말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진짜 우둔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그에게 빗자루를 한 개를 내어 주면서 ‘너는 매일 마당을 쓸면서 이 게송을 외우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주 짧은 게송 하나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가르쳐 주셨다.“먼지를 털고 때를 없애라.” 주리반특은 마당을 쓸 때마다 빗자루가 왼쪽으로 가면 “먼지를 털고” 하면서 외우고

오른쪽으로 가면 때를 없애라“하고 외웠다.

한시도 잊지 않고 이렇게 게송을 외우면서 다른 제자들과 대중들의 신발도 닦아주고 먼지도 털어 주었다.


*게송 :


그렇게 몇 해 동안을 오로지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받들어 실천하였다.

그러다 어느 날 주리반특의 마음이 환하게 열리며 깨달음의 게송이 절로 터져 나왔다.

“욕심이 깨끗하지 못한 것이요, 티끌과 때는 깨끗하지 못함이 아니네.”

부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면서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교리를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단 한 가지에 집중함으로써 마침내 깨달음을 얻지 않았느냐.“

주리반특은 자기 마음의 때와 먼지, 즉 집착과 번뇌의 속박으로부터 **해탈하였다.

본생경


*게송 : 시
**해탈 : 괴로움을 벗어남, 깨달음을 얻음.






11. 익스트림 엑티비티



일본식 사찰은 멀끔하고 예뻤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 같았다. 워낙 화려해서, 여기만 오고 깃자꾸띠를 보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찰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올라오면서 만났던 한 인도 친구가 법당 안에 영어로 써 있는“남호호렌게쿄”가 무엇인지 나에게 물었다. 내가 일본인인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종의 염불 수련법이라고 대답해주었다.

샨티스투파를 둘러보고 그곳에서 리프트를 타고 내려왔다. 어떻게 보면 익스티림 엑티비티였다. 안전장치라고는 파이프 하나인데, 덜컹거릴 때마다 심장이 철렁했다. 파랗게 질린 내 모습을 보고 맞은편에서 오시는 분들이 웃으셨다. 중간쯤 지나가니, 어린 아이 한명도 나랑 같은 얼굴을 하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은 괜찮아졌다. 두 번은 타고 싶지 않았다. 빠르게 내려오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위험했다.

입구 식당에서 망고주스 하나를 흡입하고, 통가 아저씨를 찾았다. 아저씨는 주무시고 계셨다. “짤로! 짤로!(출발!)” 내가 외쳤다.


IMG_6082.JPG 일본 사원으로 가는 길, 약초를 팔고 계신 아저씨를 만났다.
IMG_6061.JPG 빔비사라 왕의 길에서 만난 소 3대장! 원숭이도 놀랐다.
IMG_6067.JPG 일본 사원 근처에는 꼭 이런 탑이 있었다.
IMG_6084.JPG 일본 사원에서 입구까지 이 탈 것(?)을 타고 내려갈 수 있었다. 아래로 떨어지면 분명 죽을 것만 같았다.

12. 삡빨리동굴



말도 자친 듯, 터벅거리는 소리가 힘들어보였다. 점심 내내 땡볕에 서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삡빨리 동굴과 칠엽굴이었다.

삡발리 동굴은 *마하가섭 존자가 머물렀다는 석실이었다. 작고 아담했다. 원숭이 신, 하누만의 사원에서 올라가면 금방 볼 수 있었다. **1차 결집이 있었다는 칠엽굴까지 올라 가보려고 했었지만, 경찰분들이 길을 막아섰다.

내가 힌디어도 안 되고, 그분들도 영어를 하지 못하셔서 한창 실랑이를 했다. 내가 뭐라고 물으면 “아차!(응)”을 하셨다. 하지만 들어가려고 하면 막으셨다. 10분정도 손가락과 그림으로 이야기한 결과는 이랬다. 4시에 중간에 놓인 ***자인교 사원이 문을 닫으면서 칠엽굴까지의 경로도 막힌다고 하셨다. 아쉽게 칠엽굴은 가지 못했다.

사실 퉁가 아저씨가 칠엽굴까지는 오래 걸린다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20분정도 걸릴 것을, 30분이 넘어서오니, 아저씨가 씩 웃으신다. “너 거기 갔다 왔지? 물으신다. “ ”아니 안 갔다왔는데?“ 나는 능청을 떨었다. 이제 마지막 장소인 죽림정사로 말이 달렸다.

*마하가섭 : 출가 전 이름이 삡빨리였다. 십대제자 중 수행에서 최고라는 ‘두타제일’이라고 불리며,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교단을 이끈다.

**1차결집 :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이제 우리를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자유롭다“라는 말을 하는 스님이 있었다. 그 이후 마하가섭은 선택된 500명의 스님을 모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한다.
***자인교 : 나체수행을 하는 인도의 한 종교이다.



IMG_6094.JPG 삡빨리 석굴이다.


IMG_6102.JPG 흠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들어 갈 수 있어 보이는 곳은 이곳 밖에 없었다.

13. 죽림정사(웰루와나)



빔비사라왕이 지은 죽림정사는 볼 수 없고 터만 남아 있었다. 한 바퀴를 돌면서 구경을 하다가 젊은 베트남 스님들을 발견했다. 그분들이 예불을 올릴 때, 나도 껴서 향을 올렸다. 정성스럽게 예불을 준비하고 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과일과 초와 차를 준비해서 올리는 모습에 향밖에 올리지 않은 내가 초라했다. 준비를 할 시간, 돈도 있었지만 게을러서 따로 준비하지 못했다. 입장료는 외국인은 100루피였다.

아저씨와 말과 작별하고 5시 쯤 미얀마 절로 돌아왔다. 배는 고픈데, 마땅히 먹을 것이 없어 조그만 슈퍼에서 비스켓을 사다가 먹었다. 6시 반쯤 되자, 절의 매니저가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였다. 그날은 다른 미얀마 신자들이 와 있었는데, 내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간식을 나눠주셨다. 인도식 빵튀김이었는데, 이름은 까먹었다.






IMG_6112.JPG 죽림정사의 입구이다. 외국인은 100루피! 싸다 싸다!


IMG_6132.JPG 가운데에는 사각형의 연못이 있었다.
IMG_6148.JPG 인도인분들은 아닌 것 같았다. 죽림정사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는 것 같았다. 초록색 상자에는 한국 분들도 많이 오시는지 “보시하십시오”라는 글이 쓰여져 있다.
IMG_6155.JPG 베트남에서 오신 스님들께서 예불을 준비하고 계셨다.
IMG_6158.JPG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스님의 복장과 비슷했다.


keyword
이전 07화안녕, 부처님[E.2 불타오름과 우로보로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