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부처님[I.E. 기다려줘(3)]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 바라나시편

by 노루

바라나시

2018.10.10~2018.10.12


18. 보트를 찾아서, 시비


일몰 보트를 타기 위해 5시쯤 가트로 내려갔다. 평균적인 현지 시세는 50~100루피 정도로 보였다. 철수 씨와 선재씨의 보트가 유명했는데 가격은 200루피 정도 하였다. 그 분들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로 설명을 해주신다고 들었다. 듣기로는 200루피가 아깝지 않다고 한다. 수안 씨는 저번에 왔을 때 이미 타봤다고 하셔서, 싼 보트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다녔다.


가트를 쭉 걷다 보면 100~300까지 다양하게 부르신다. 한 분이 300을 부르시기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300을 외치셨던 분이 나에게 와서 왜 비웃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오해를 풀어야 했다. 가격이 너무 높아서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고 말하니, 여기는 중앙에 위치한 곳이라 더 높다고 한다. 뭐 그렇다니 그런 것이겠지만, 30미터 앞에 있는 보트가 50이라고 외치고 있는데 가격을 6배 올린 것은 그냥 관광객을 기만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안 씨가 대신 언성을 높였다. 이렇게 한 번 당해 놓으면, 다른 관광객들에게도 똑같이 그럴 것이라, 확실하게 화를 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더 얘기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어이없어 나온 웃음이 그 사람에게 기분이 나빴다면 나의 잘못도 있었으니 말이다. 괜히 미안했다. 수안 씨를 말려 다른 보트를 찾으러 갔다.


19. 연보라빛 하늘


50루피에 보트에 올라탔다. 현지인분들이 타는 보트였다. 출장을 왔다고 하시는 아저씨들이 이것저것 물으신다. 아우랑가바드에 다녀왔다고 하니, 우트라 프라데시의 아우랑가바드냐고 물으신다. 그곳에서 오셨다고 하는데, 내가 다녀온 곳은 더 남쪽이었다.


가트는 강변을 따라 길게 펼쳐있다. 사람들과 건물들이 가득하다. 해 질 녘의 하늘은 보트가 끝에 가까워질수록 빠르게 색을 바꿔 갔다. 내려야 할 곳에 도착하기 2분 전쯤, 훈련소에서 마지막 행군을 할 때 보았던 보라색 구름이 가트의 위쪽을 가득 채웠다. 주홍빛과 연보라빛으로 서서히 물들여진다. 꿈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수안 씨가 사진 하나를 찍어 놓았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NT60ILNKZZVdhFTVRqF.jpg 수안씨가 찍은 일몰 사진이다. 어두워지는 30초 중에 1초였다.

20. *뿌자


중앙 가트에서 매일 뿌자를 한다. 그저 행사나 공연일 수도 있겠지만, 모두를 위해 사리는 향과 춤들 그리고 사람들의 염원은 이곳을 다른 곳과 다르게 만드는 원인들일 것이다. 뿌자는 처음 신기했지만 지루했다. 오히려 거기서 박수를 유도하시고 기부금을 걷으시는 아저씨의 몸짓과 표정이 더 재미있었다. 20분 정도 보다가 엉덩이가 아파서 일어섰다.


*뿌자 : 힌두교인들의 종교의식이다. 춤과 향을 올린다.


21. 화장터


중앙 가트에서 올라가 더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화장터에 갈 수 있다. 장작이 쌓여 있는 골목을 지나면 화장터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이곳에서부터 사진 촬영은 금지되었다. 여러 개의 화장터가 불타고 있었다. 계단에는 화장을 기다리는 시신들이 놓여져 있다.


델리에서 다시 만났던 종민 씨가 먼저 이곳을 지나왔는데, 여기에서 무서운 사기꾼들에게 돈을 뜯길 뻔했다고 전했다. 이곳에 온 외국인에게 접근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고 하고, 그 이후에 기부금을 내라고 강요하는데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했다. 당시에는 같이 있었던 일본인 남자 두 명은 500루피를 뜯겼다고 하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22. 재가 되어, 강으로


이곳에 대해 수안 씨가 약간의 설명을 해 주었다. 이 근처에는 죽음을 준비하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고 한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바라나시에서 죽어 강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한 믿음을 지니기에, 죽음이 다가오면 가족들과 이곳으로 와 죽음을 기다린다. 마침내 임종할 때, 그들은 여기서 장작을 구매하여 화장터로 간다. 화장터에서 그 장작들과 함께 태워진다. 재가 되고 그 재는 갠지스 강을 따라 흘러간다.



23. 무엇을 가지고


시체가 태워지기 위해선 충분한 양의 장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돈이 없는 사람부터 많은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화장된다. 충분한 양의 장작을 사지 못하면, 덜 태워지고 시체는 남게 된다. 남은 시체는 강에서 썩게 된다. 시체는 천으로 쌓여 화장터로 오게 된다. 그리고 살아생전 가지고 있던 여러 장신구를 착용한 체 들어온다. 몸이 사라진 후, 남겨진 재 속의 장신구들은 이 화장터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는지에 대해 평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모든 장신구를 차고 온다고 한다.



24. 화장터에서


시체는 끊임없이 들어온다. 나도 화장터 한쪽에 앉아 방금 들어오신 분의 화장을 지켜본다. 아이들은 불꽃 옆에서 놀고 있다. 개들은 타고 남은 재 속에 코를 박았다. 그리고 불꽃은 서서히 커져간다. 타오르는 할머니의 얼굴은 깊게 잠에 드신 듯하다. 어떤 삶을 사신 분일까? 쌓여진 나무 위에 저 사람은 아기였고, 딸이었고, 학생이었고, 어머니였고, 인도의 한 사람이었다. 나무는 하얗게 재가 되어 하늘을 달렸다. 내 파란 *구르카 위에도 살포시 앉았다. 나무가 재가 되는 만큼 할머니의 몸은 촛농처럼 녹아 내렸다. 그리고 촛농까지 재가 되고 나서야 불은 꺼졌다.


*구르카: 인도의 전통의상 중 하나로, 상의가 원피스처럼 길게 무릎까지 내려온다.



지금에서야 바라나시지만, 그전에는 바라나시와 사르나트가 같은 곳으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 직접 가르침을 주신 것은 아니지만, 바라나시의 옛 이름인 까시를 언급하시면서 주셨던 가르침을 발췌하였다. 죽음과, 병듦과, 늙음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신다.


젊음에 대한 자부심


비구들이여, 나는 매우 편안했다. 나의 아버지는 궁궐에 연못을 만들게 했다. 청련, 홍련, 백련이 화려하게 피워 어우러졌다.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까시의 **전단향이 아닌 것은 사용하시 않았다. 모자, 외투, 하의, 상의도 모두 까시의 비단으로 만든 것이었다. 더위 추위 먼지 풀 이슬이 닿지 않도록 밤낮으로 내개 하얀 일산이 씌어졌다.

비구들이여, 나는 겨울용, 여름용, 우기용 궁전이 각각 따로 있다. 우기 넉 달 동안에는 우기를 위해 지은 궁전에서 순전히 여자 아사들의 연주와 연희를 즐기면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집에서는 하인과 일꾼들에게 시큼한 죽과 함께 싸라기밥으로 음식을 주었지만, 나의 아버지의 집에서는 쌀밥과 고기반찬을 주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영화를 누리고 매우 편안했던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늙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남들의 늙음을 보고 자신도 늙을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한다.

나도 또한 늙음을 극복하지 못한다. 만약 내가 늙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남들의 늙음을 보고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 이와 같이 숙고했을 때, 젊음에 대한 나의 자부심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병듦을 극복하지 못한 채, 남들의 병듦을 보고 자신도 병들 거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한다. 나도 또한 병듦을 극복하지 못한다. 만약 내가 병듦을 극복하지 못한 채 병듦을 보고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 이와 같이 숙고했을 때 건강에 대한 나의 자부심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자기도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남들의 죽음을 보고 자신도 죽을 거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한다. 나도 또한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다. 내가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죽음을 보고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혐오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않다.’ 이와 같이 숙고했을 때 장수에 대한 나의 자부심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앙굿따라 니까야, 편안함 경[A3.38], 대림스님 역


*인도 불교 성지순례 가이드, 무념 엮음에서 발췌하였음

*까시 : 바라나시의 옛 이름. 지금도 사용한다고 한다.

**전단향 : 인도에서 나는 향나무의 하나.

***범부 :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사람.



25. 오이소박이

맛없는 오이소박이를 먹을 때마다 할머니가 생각난다. 기억 속 첫 번째 죽음은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가족들이 다 바빠, 외할머니 집에서 자주 머물렀다. 할머니의 오이소박이는 맛이 정말 없었다. 20살 가을날 처음 맞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그때만 슬펐다. 시간이 지나자, 가끔 먹는 오이소박이처럼 희미했다.

어린 나에게는 죽음의 소식 보다는 탄생의 소식이 많았다. 그래서 죽음보단 탄생이 더 가까웠고, 친밀했다. 죽음이라는 것은 낯설고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외할머니의 말처럼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만 받아 들였다.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처럼, 나 자신에 대한 늙음과 죽음에 대해서 역시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나는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 같았다. 지금의 내가 젊기에, 어쩌면 오이소박이보다도 나는 나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내 죽음은 필연적이었지만, 나는 내가 죽는 것을 믿지 않았다. 영원히 어리고 젊을 것만 같았다. 나도 늙어서, 병들어 죽겠다는 건 알지만, 왠지 나만은 그러지 않을 것 같았다.


26. 내가 보듯이


할아버지는 과대망상이었다. 병원에서 엄마가 간호사와 짜고 이상한 주사를 놨다면서 엄마에게 계속 시비를 걸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엄마는 집을 나갔다. 엄마를 따라 아빠와 누나가 집을 나갔다. 집안은 조용해졌지만, 올여름에도 집은 서늘했다.


나는 집에 남았다. 아빠가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집에 남았다. 할아버지 방의 나무로 된 문이 삐걱 거릴 때마다 신경질이 났다. 할아버지는 내가 있는 방으로 와 나에게 엄마가 언제 들어 오냐고 묻는다. 그리고 다시 엄마 욕을 시작한다. 듣기 싫어서 나도 밖으로 나간다.


밤늦게 집으로 들어가면 방문 너머로 할아버지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의 잠꼬대, 문을 다 걸어 잠그시고 주무시면서도, 누가 밤마다 방문을 자꾸 두드린다며 겁을 잔뜩 드셨다. 나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하신다. 싫다고 하니, 혼자 있으면 무섭다고 투정을 부리신다. 낯선 장면이다.


한 장밖에 없는 사진 속의 할아버지는 정정하시다. 호랑이 같던 할아버지는 이미 틀니를 끼고 계신다. 저 방 안의 늙고 병드신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의 늙음과 병듦이 보인다. 내가 할아버지를 보는 시선대로, 나는 나의 늙음과 병듦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내가 싫었다.



27. 2500년 전에도


이 주검처럼, 불타는 화염처럼, 부처님의 몸도 이렇게 탔을 것이다. 책에서만 읽었던 이야기가 다시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본 화장은 화장터의 화로에서 본 것밖에 없었다. 장작이야, 수학여행에서 본 캠프파이어밖에 없어서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았었다. 인도의 화장은 달랐다. 부처님도 이렇게 쌓인 나무 위에서 재가 되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뜨겁고, 따뜻함을 주며 제자들과 재자신자*들에게 이별을 고했을 것이다. 상상만 하던 모습들이 이 바라나시의 화장터에서 재구성되었다.


*재가신자 : 출가를 하지 않은 신자를 말한다. 일반 신도들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28.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는 곳


바라나시의 소개 문구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는 곳이라는 수식어가 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경계는 이방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죽음이 낯설기에, 낯선 만큼 그 선이 보이듯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 선이 보이지 않는다. 태어남이 반가웠듯이, 죽음 또한 슬픔과 그리움 속에서 낯선 것이 아닌 체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29. 바라나시를 떠나기 싫음


화장터에서 숙소로 돌아왔다. 1달러당 73.5에 환전을 해주는 곳이 있어 백 달러를 환전했다. 여행을 시작 한, 한 달 전에 비해서 4루피나 올라있었다. 지역별로도 꽤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수안 씨가 맛있다고 한 에그롤 하나를 사서 나눠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바라나시를 떠나기 싫었다. 이곳은 사르나트로 넘어가는 길목의 쉼터와 같은 곳이었다. 다른 볼 것이 많았지만 볼 생각은 없었다. 더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체력도 충분히 회복되어 있었다. 그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조금 더 남아 있자고 속삭인다.


떠나는 날 아침에도 한참 동안 침대 위에서 고민했다. 하룻밤을 더 머물까? 아니면 지금 떠날까? 일정이 넉넉했기 때문에 하루 더 머문다고 해서 크게 지장은 가지 않았다. 괜히 이유 없이 남고 싶어 하는 마음이 괘씸했다. 결국에는 밀당을 하다, 오후에 떠날 결심을 했다. 이상한 곳이었다.



30. 카페의 난간에서


보니카페의 난간을 경계로 인도인이 운영하는 보니카페엔 인도인 손님이 없다. 이 선을 경계로 구걸하는 사람이 찾아오지만, 이 선을 넘어오지는 않는다. 나는 국경을 넘어왔는데, 인도인이 없는 이 인도인이 운영하는 카페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나 보다.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돈으로 이 난간을 넘어오려 할까?


한 아이가 뱀이 똬리를 튼 함을 가지고 와서 보여줬다. 엄마가 아기를 왼손에 안은 채, 오른손을 내민다. 주머니 속에 동전들은 많지만, 10루피가 주기 싫은 나는 눈과 코를 일기장에 박았다.



KakaoTalk_Moim_7L88sM6EDdZNT60ILNKZZVdhFU8MKt.jpg 나는 개를 보고, 개는 땅을 보고, 아주머니는 나를 봤다.

31. 블루라씨에서


일기를 마무리하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수안 씨와 마지막으로 먹지 못했던 블루라씨를 먹으러 갔다. 맛은 신기하게 모두 달랐다. 시원라씨는 훈제 맛이 은은하게 났다. 그래서 나에겐 별로였다. 블루라씨가 가장 좋았다.

많은 여행자들이 가게 벽에다 많은 증명사진들이 붙여 놓았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지나갔다니! 사진을 많이 가져왔으면 나도 하나 붙이고 싶었다. 수안 씨도 붙여진 사진 속에서 아는 얼굴을 찾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던 중 상여 하나가 가게 앞을 지나간다. 6명의 장정이 장송곡을 부르며 화장터로 향하고 있었다. 화장터의 불씨는 꺼질 틈이 없었다.



32. 안녕! 바라나시


다시 배낭을 메고, 사르나트로 향할 릭샤를 찾는다.

여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힘들다.

잠시 멈춰, 삼거리 위에서 다시 생각해본다.

아이폰에서는 때마침 김광석의 노래가 재생된다.

귀여운 여자친구를 달래는 사랑 노래인 줄 알았는데,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나 보다.

약 2500년 전, 부처님은 보드가야에서 깨달으셨다.

그리고 처음 가르침을 주시려, 사르나트에 오셨다.

왜 하필 사르나트였을까? 이 넓고 넓은 인도에서

노래 가사처럼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길

너의 마음에 이르는 길

너의 슬픔을 환히 비춰 주는 길

변하지 않은 사랑의 길을

부처님은 찾으셨을까?


-E1. 나의 길, 새로운 길[사르나트]에서 계속-





일몰 보트 위에서 찍은 동영상이다.
바라나시의 뿌자다. 매일 진행된다고 한다.
우연히 만난 일보인 케이다. 작은 콘서트를 열어 주었다.
보나까페의 난간 밖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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