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부처님[I.E. 기다려줘(1)]

인도 불교 유적지 순례기, 코삼비 편

by 노루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기다려줘, 김광석



글을 쓰게 된 이유


나는 우리나라의 꽃과 나무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식물들로 우리나라의 현재를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2018년 봄,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런데 잘 안 되었다. 열정은 그저 소신이었고, 현실은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6년 동안 채워왔던 열정이라는 기름은 6개월 동안 다 타버렸다. 다시 채워야 하는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노력이 부족해서, 더 노력할 마음을 낼 노력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꿈을 버렸다.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친구들과 가족들은 푹 쉬라고 이야기했지만, 길을 잃은 것처럼 항상 불안했다. 항상 나의 꿈으로 나를 소개해왔지만, 그 길 밖에 있는 나를 소개할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도 설득력을 잃었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더 이상 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2달이란 시간을 집과 PC방에서 보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 상태로 좋지 않은 것이 명확했다. PC방이 아닌 어딘가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결정했다. 존나 힘든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여행이 존나 힘들면, 왠지 지금의 고민들이 해결될 것만 같았다. 왜 하필 인도를 택해 여행을 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힘든 여행, 2 백만 원으로, 2달을 여행할 수 있는 싼 물가(항공권 포함)등 여러 가지 요건들이 겹쳐진 곳이 인도였다.


그다음은 어떻게 여행을 할지 고민을 했다. 남들이 가는 여행길 위에서는, 이 질문도 모르는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인도하면 떠올랐던 것이, 나에게는 불교의 발상지라는 것이었고, 검색을 하면서도 내 나잇대의 사람이 배낭을 메고 불교 유적지를 혼자 순례한 사례는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힘들 것 같았다. 여행의 컨셉은 이렇게 정해졌다. 약 한 달간 자료조사를 하고, 9월 11일부터 11월 9일까지 총 58일간의 여행 계획을 잡았다.


여행이 끝난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첫째, 나를 위함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답 같은 것은 찾지 못했다. 다만 그 전의 나와는 다른 믿음이 생겼을 뿐이다. 그리고 자꾸 그 믿음을 까먹는 나를 위해 이 글을 남겨 놓는다. 까먹고 길을 해멜 때 이 글을 다시 보며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둘째, 혹시나 같은 이유로, 내가 지나왔던 길과 비슷한 코스로 인도를 여행하시려는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완성된 글을, 볼 수 있는 곳에 남겨 놓는다.


이 글은 인도의 모습, 유적지 아래의 이야기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26살, 대전에 사는 아직은 휴학생의 일기이다.



글의 구성에 관하여


시간상으로는 2달의 여행 중 마지막 한 달 이후 처음 한 달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공간적으로는 부처님의 생애가 남아있는 지역의 이야기가 먼저 나오며, 그 후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만들어진 불교 건축물(아잔타, 엘로라, 아쇼카 에딕트)과 인물(아쇼카, 나가르주나, 달라이 라마)에 관한 유적이 있는 지역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내용적으로는 내가 유적지를 이동하면서 겪은 여정과, 불교 유적지와 관련된 이야기와 가르침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엮어 구성하였다. 첫째로, 유적지를 이동하면서 겪은 여정에서는 내가 이용한 교통수단과 숙소, 음식에 대한 정보와 동행, 사건들에 대해서 담았다. 둘째로, 유적지와 관련된 이야기와 가르침에서는 자료 조사를 하면서 만났던 유적지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서 설해진 가르침을 다른 책에서 인용하였다. 또 간혹 내가 읽었던 책과 웹툰에서도 인용했다. 마지막으로, 유적지와 관련된 이야기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나의 생각에서는 그 이야기와 가르침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에 대해서 서술하였다.


나의 경험에만 국한되기 때문에, 정보전달 측면에서는 내가 이용한 한 가지 경로만을 보여 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인도의 길 위에서 겪은 경험과 생각들을 솔직하게 기록해 놓는 것뿐이다.


미흡한 부분은 많이 있을 것이다. 적게나마, 자료를 찾으시려는 분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코샴비

2018.10.10


처음으로 부처님의 생애가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조금 들떴다.


코샴비는 고대인도 16대국 6대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또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였다.


불타의 세계, 나까무라 하지메


코샴비에 꼭 가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자료조사를 하다 읽은 이야기 때문이다. 코샴비의 왕인 우다야나 왕은 처음에 불교를 적대시했지만 사마바티 왕비의 감화로 불교에 귀의했다고 전해진다. 그 이야기를 발췌했다.


손 안의 나뭇잎


부처님이 코삼비에 있는 신사파 숲 동산에 머물 때의 일이다.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숲 속 나무 밑에 앉아 떨어진 나뭇잎을 한 움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말문을 열었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손안에 있는 나뭇잎이 많은가? 저 숲 속의 나뭇잎이 많은가?”
“부처님이시여, 손 안의 나뭇잎은 매우 적사오며,
저 숲 속의 나뭇잎은 한량이 없어 견줄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내가 큰 깨침을 얻고 본 **법은 한량이 없다.
내가 그대들에게 설한 법은 이 손 안의 나뭇잎과 같으니라.”

강건기 교수의 부처님 생애 40, 불교신문


* 비구 : 남자 스님

** 법 : 진리


알려주지 않음의 이유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아는 것들 가운데
내가 가르치지 않은 것은 훨씬 많고, 가르친 것은 아주 적다.
그러면 나는 왜 가르치지 않는가?
그것들은 이익을 주지 못하고
*청정범행의 시작으로 이끌지 못하고
싫어함으로 이끌지 못하고
탐욕의 사라짐으로 이끌지 못하고
소멸로 이끌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이끌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이끌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이끌지 못하고
열반으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상윳따나까야, 심사빠 숲 경[S56.31], 각묵스님 역

*인도 불교 성지순례 가이드, 무념 엮음에서 발췌하였음


*청정범행 : 깨달음으로 이끄는 삶


1. 가문비나무의 노래처럼


마틴 슐레스케라는 바이올린 제작자가 쓰진 가문비나무의 노래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깨어 있다 보면 일상이 기도가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믿음과 일은 하나가 됩니다. 그런 깨어 있음을 ‘창조성’이라 부를 수도 있고, ‘영성’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든 간에 그런 상태는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쓰이도록’ 내주어야 합니다.


영성과 창조성 같은 것들은 정말 소유할 수 없다. 그 둘 모두, 나라는 테두리 밖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내가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들은 나라는 경계선 안으로 들어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계산 밖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소유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영성과 창조성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확했다. 말 그대로 쓰여지는 것이다.


처음 불교와 관련된 책을 읽었을 때를 기억한다. 영혼이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내 사주팔자는 어떤지, 실제로 운명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모든 것이 우연인지에 대한 답을 해줄 것을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그런 답은 얻을 수 없었다. 내가 만든 나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으면, 그것을 믿겠다고 선을 그었던 순간. 나는 믿기보다는, 믿지 않기 위해서 이해하려고 했다. 내 계산 안에 있어야 믿을 수 있었다.


2. 항상 문제가 없다고 하시지만


보팔에서 출발한 알라하바드로 가는 기차는 약 1시간 정도 연착되어 10시에 도착했다. 자료조사를 해봤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여행지가 되지 못했다. 숙소, 교통, 음식 모두. 최대한 적게 머물고 바라나시로 가기로 계획했다.


되도록 버스를 타고 이동해왔다. 버스가 가장 싸기 때문에. 하지만 코샴비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로는 4시간은 타야 할 듯싶었다. *올라를 찍어보니, 도시 외곽으로는 운행이 안 돼서 협상을 해야 한다고 나왔다. 올라를 불렀지만, 아저씨는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으셨다.


역 앞의 택시 주차장에서 코샴비를 외쳤다. 한 아저씨가 뛰어오신다. “코샴비!” “오케이 노 쁘라블럼!”(고개를 사선으로 끄덕이시며) “하우머치?” “뜨리 따우선드 루피!“ .망설임 없이, 떠나려는 동작을 취했다. 가격은 그로부터 멀어질수록 떨어졌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결국에는 1500까지 떨어졌다. 나는 돌아섰다. “코샴비 1500, “고 앤 컴, 히어 페이? 오케이?” 기사님께 3번을 확인했다. “노 쁘라블럼! 오케이!” 항상 문제없다고 하시지만, 항상 문제는 생겼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기름 값으로 주유소에서 500을 먼저 지불하고 도시 밖으로 나갔다. 점점 도시에서 멀어졌다. 시골을 지나 더 들어가서야 코샴비에 도착했다.


*올라 : 인도의 카카오 택시, 지역별로 가능 여부가 다르다.


3. 코삼비에서


관리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철조망만이 사각형으로 터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쇼카 석주만이 우뚝 서 있었고, 몇 마리의 말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사람은 나와 택시 아저씨뿐이었다.


“떠티 미닛 오케이?” “오케이!” 아저씨에게 말을 한 뒤, 터 한편에 앉아서 아쇼카 석주와 건물의 터를 보았다. 얼마 후, 하얀 옷을 입으신 분들이 오셨다. 아쇼카 석주 쪽으로 따라 걸어가셨다. 인도의 신자 분들이시거나, 미얀마나 스리랑카의 신자이신 듯 보였다. 불교 신자 분들은 하얀 옷을 입고 단체로 움직이셨는데, 어두운 피부색과 대비되어 눈에 띄었다.


옛 왕국의 성곽은 평화로웠다. 더 이상 지킬 사람도, 이곳을 찾아올 사람도 없다. 성곽의 규모는 이곳이 상당히 컸던 도시였음을 보여줬다. 그 컸던 왕국은 이제 어디로 갔을까? 변화가 느린 인도에서도, 느릴 뿐이지, 시간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작은 모래 하나에서 하나의 나라까지.


*아쇼카 왕 : 인도의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하나, 인도의 인장에 사용되는 사자상은 아쇼카 왕의 상징이다. 지폐와 동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IMGP1937.JPG 이곳이 유적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표지판 상태로 보아선 관리가 안된 지 한참 된 듯싶다.
IMGP1910.JPG 코삼비 유적의 전경이다.
IMGP1931.JPG 코샴비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쇼카 석주를 향해 걷고 있다.
IMGP1915.JPG 코삼비 유적의 아쇼카 석주이다.
IMGP1959.JPG 코삼비에 있던 왕국의 성곽이다. 택시 아저씨가 같이 찍히셨다.
IMGP1973.JPG 이곳 어딘가에 숲이 있었다고 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 없어져 버린 걸까?

4. 아이들의 맨발


성곽에서 야무나 강을 찍고 있었는데 멀리서 아이들이 다가왔다. 액션캠이 신기한지 그 앞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기사님과 다시 택시로 돌아가려고 차로 향했다. 아이들은 나를 따라오며 뭐라고 말을 걸지만, 하나도 알아듣지는 못했다.


아이들과 같이 걷다가, 내 시선에 아이들의 맨발과 나의 슬리퍼가 같이 걸렸다. 군대를 다녀온 나보다도, 아이들의 발바닥엔 굳은살이 두꺼웠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 위도 거침없이 걷는다. 나도 따라서 슬리퍼를 벗은 다음 걸었다. 다섯 발자국 가지 않아 다시 슬리퍼를 신는다. 아파하는 표정을 보고 아이들이 웃었다.


키만 큰 이방인의 발은 저 아이들의 굳은살에 비하면 한참이나 어렸다. 인도에서는 내가 걔네들보다 어렸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이제 인도에 태어난 지 갓 한 달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이들과 사진 하나를 찍고, 한국에서 가져온 홍삼캔디 하나씩 줬다.



IMGP1976.JPG 아이들은 깡패처럼 내 카메라를 건들었다. 훠이 훠이 내 져으니, 내려가란 소리인 줄 알고 포즈를 취한다.
IMGP1981.JPG 아이들 대부분은 맨발이었다. 가장 큰 아이만 자신의 발보다 더 큰 슬리퍼를 끌고 다니고 있었다.

5. 나를 호구로 보고


다시 알라하바드로 향했다. 바라나시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나 버스를 타야 했다. *익시고로 기차 편을 검색해보니, 3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래서 버스정류장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잘 도착하여, 기사님에게 남은 1,100루피를 건네주었다.


아저씨는 갑자기. “노노 투따우젼 뜨리 헌드레드 루피(2,300)” 1,600루피에서 500을 주유비로 내어, 1100루피만 주면 됐었다. 하지만 아저씨는 종착지를 바꿨기 때문에 700루피를 더 내야 한다고 우기셨다. 알라하바드 역에서 터미널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700루피를 더 받으셔야겠다니 어이가 없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바라나시를 외치는 버스를 확인했다. 아저씨의 손에 1,100루피를 쥐여준 뒤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서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원망스러운 듯이 노려보셨다. 나는 눈을 피했다. 아무래도 2,300루피는 아니었다. 나는 호구가 아니다.


*익시고 : Ixigo, 기차 예약을 하는데 유용한 어플. 사실 카드가 안 돼서 결제는 못 했다. 기차 시간과 플랫폼을 확인하는 데 사용했다.


보팔에서 출발하여, 알라하바드로 가는 기차 안에서 찍은 창 밖 풍경이다.
코삼비의 전경이다.
성곽에서 야무나강을 찍고 있는 중에, 아이들이 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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