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자마자 커피를 내린 후, 컵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고요한 집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안온하다. 휴우- 몸도 머리도 긴장이 풀리며 한숨 돌리는 시간이다. 오늘 할 일들을 천천히 생각하며 코끝에 스치는 커피 향을 만끽한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커피는 나에게 그저 사람들을 만날 때만 마시는 음료일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후부터 커피는 나의 하루에 꼭 필요한 영양제가 되었다. 특히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을 때, 그때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점심 먹고 또 한 잔, 오후에 쏟아지는 졸음에 다시 한 잔, 저녁에 밀려오는 예민함에 또다시 한 잔. 커피를 적어도 하루에 세 잔 이상씩 마셨던 것 같다. 나의 에너지가 고갈될 때마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조금 일지라도 충전이 되었기 때문에 커피는 나에게 생명수나 다름없었다. 엄마들끼리 말하는 ‘커피 수혈’이라는 말은 정말 현실이었다. 커피가 없었다면 내가 그 고단함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그런데 너무 자주 커피 수혈을 받았던 탓일까? 언제부턴가 오후 2시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오질 않고, 겨우 잠들어도 잔 건지 안 잔 건지 싶은 선잠을 잔다. 그래서 아침에만 마실 수 있는 커피 한 잔이 나에겐 더욱 소중하다.
나는 요즘 저탄고지 식단을 하고 있어서 커피에 버터 한 조각을 넣어 마신다. 일명 방탄 커피라고 부르는데, 초반엔 정말 못 먹겠어서 카카오 99% 초콜릿 한 조각을 추가로 넣어 마시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버터를 미처 다 녹이지 못한 채로 급하게 커피 한 모금을 마신 적이 있다. 그 짭짤한 첫 입이 꽤나 맛있었다. 여태까지 버터를 넣자마자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버터를 온전히 다 녹여 마셨었는데, 이제는 숟가락이 필요 없어졌다. 커피를 내려 버터를 퐁당 넣고 조금 기다리면 버터가 커피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갈색 커피 위에 노란 도트무늬들이 동동 떴을 때 후후 불어 마시면 뜨거운 한 모금 안에 짜고 고소한 맛이 순차적으로 느껴진다. 완전히 섞였을 때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었는데, 섞지 않으니 자신들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 어우러진다.
문득 사람 사는 것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혀 안 섞이거나 혹은 전부 섞이는 것보다 적당히 섞여야 건강한 게 아닐까? 친구도 가족도 적당히 섞이되, 내 맛은 잃지 않을 수 있는 관계가 잘 어우러지는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나의 온 신경이 아이에게 집중됐다. 마음도 몸도 전부 내팽개치고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한 결과, 나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자다 깨다 하며 숙면을 하지 못하고 딱히 하는 것 없이 정신이 없어 무언가를 자꾸 잊어버리고 놓치기 일쑤였다. 몸 상태는 더 심했는데 머리가 곧 터질 것 같이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하혈을 했으며, 등에 담이 왔다. 걱정하는 남편에게 나는 “이상하네.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보다 몸이 보이는 변화가 훨씬 큰데?”라고 했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인정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제일 먼저 두통이 멈췄고, 다음 날은 하혈이 멈췄다. 담도 조금씩 풀리고 있고 잠도 푹 자고 있다. 아이도 내 걱정과 달리 학교를 즐거워하고 너무나 잘 적응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건강하지 못했던 것은 일주일 넘게 나를 잃고 아이에게 섞인 결과였던 것 같다.
나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한 단어를 꼽자면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뭐든지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내가 나의 균형을 잃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섞여야 한다. 가족도 마찬가지로 예외는 없다. 그래야 나도 관계도 건강한 거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혼자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나를 다독이는 시간, 내 균형을 지키는 시간, 때로는 어그러진 균형을 정비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커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