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본새는 인성의 기본
때는 내가 스무 살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버스 안, 한 여중생이 핸드폰 통화를 하고 있었다.
“엄마, 네가 그랬잖아!”
버스 뒷자리를 울리는 큰 소리였다. 엄마가 자기 물건을 말도 없이 버렸다며 성난 어조로 따지는 통화였다. 그 말투는 버릇없고 예의도, 존중도 없었다. 그때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절대 저렇게 싹수없이 키우지 않겠다고.
그 다짐이 너무 단단했던 것일까. 지금의 고오는 말투와 태도에서 또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등교를 준비하는 아침.
“고오야~” 하고 부르면 “네, 5분만요…” 하고 대답한 뒤 뒹굴뒹굴하다가 일어나 옷을 챙겨 입는다.
주말 아침이면 토스트나 볶음밥을 만들어 엄마 아빠를 깨우기도 한다. 물론 주방은 전쟁터가 되어 있겠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 모든 것이 너그러워진다.
“어머니, 저 조금만 놀다 들어가도 될까요?”
“아버지, 여기 좀 와보세요!”
고오가 밖에서 이렇게 부르면 지나가던 사람도 한 번쯤은 돌아보게 된다. 청학동에서 왔냐는 말도 들어본 적이 있다. 초등학생이 부모에게 높임말을 쓰는 것도 신기한데 존칭이라니.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높임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도록 유도한 것이 시작이었다. 어른들에게는 물론 엄마, 아빠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말본새가 인성의 기본이라는 나만의 꼰대 같은 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2학년 때 태권도장에서 진행한 어버이날 미션. ‘일주일간 부모에게 존칭 사용하기’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었는데 그 미션은 강제 사항이 아니었음에도 고오는 이후에도 스스로 높임말과 더불어 어머니, 아버지라는 존칭을 계속 사용했다. 지금은 6학년이 되어 때때로 반말과 존댓말을 섞기도 하고 엄마 아빠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괜찮다. 중요한 건 그 안에 깃든 존중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고오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예뻐 보이리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별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뭐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라 질풍노도의 시기인 15살이 넘어갈 무렵에도 부모의 말이 여전히 아이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반항은 성장의 일부이지만 그 반항 속에서도 부모에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고 있다면 된 것이다. 그렇게 기본적인 경우를 아는 아이로 자란다면 이미 잘 커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