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시작
20살 무렵, 9살 터울의 큰언니는 형부와 함께 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어린 조카를 돌보며 공부부터 생활 전반까지 챙겨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육아’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냥 긴 시간을 조카와 보내야 하는 귀찮은 일 정도로 여겼다. 특별한 계획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내 첫 조카, 환이는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다. 걸어 다니는 게 아니라 온몸을 써서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지금 돌이켜보면, 산만함으로 상위 1% 안에 들 정도였고, 유치원을 다니기 어려울 만큼 까불이였던 것 같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서른을 훌쩍 넘겨 대기업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다.
환이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1999년, 스타크래프트와 환이
그때는 PC방이 성행하고, 스타크래프트가 대학가를 휩쓸던 시기였다. 도전을 좋아하던 나는 1시간에 1,000원이면 즐길 수 있는 이 게임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조카와 15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이모였지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을 수 있었고, 환이가 무서워하는 유일한 어른이기도 했다. 동시에 산이며 바다며 어디든 함께 다니며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보낸 보호자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방바닥을 온몸으로 휩쓸고 다니는 환이에게 집에 있는 PC로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쳐 주었다. 그때 환이는 겨우 일곱 살이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나와 대결할 정도로 빠르게 습득했고, 생각보다 훨씬 잘했다.
이 경험이 고오에게 스스럼없이 포토샵을 가르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7살도 스타크래프트를 하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 포토샵을 못 배울 이유가 없지!" 그렇게 시작한 포토샵 수업, 고오는 예상보다 훨씬 잘 따라왔고, 이 과정에서 ‘웹툰’이라는 꿈을 찾게 되었다.
고오는 2013년생, 코로나 입학생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시작하지 못한 채 온라인 수업으로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 교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집에서 직접 포토샵 수업을 열어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레이어 개념을 이해하는 것부터 어려워했다. 한 번 설명해도 돌아서면 “엄마, 엄마!” 하고 1분이 멀다 하고 불러댔다. 하지만 처음부터 각오한 일이었기에, 단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바로바로 달려갔다. 대신,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컴퓨터 수업은 딱 50분까지만!" 이라는 규칙을 정했다.
그렇게 흥미를 붙이기 시작한 고오. 엄마를 부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드디어 혼자 그림을 그리고 저장까지 해내는 날이 왔다. 포토샵을 배운 아이보다 가르친 내가 더 승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니콘의 웹툰 도전기
1년이 지나자, 포토샵에서 클립 스튜디오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리고 4학년이 된 어느 날, ‘농사꾼 호미’라는 만화를 네이버 도전만화에 올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농사꾼 호미를 주 2회씩 50화로 완결 후 바로 본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공웹’이라는 웹툰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70화로 공웹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프린세스 라이프’라는 차기작을 준비하며 매일 2~3시간씩 태블릿 앞에 앉아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포토샵 수업이었지만, 그것이 한 아이의 꿈을 찾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아이가 혼자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세우고, 열정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깨닫는다. 어른이 다 만들어줄 필요는 없구나.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구나.
그렇게 고오는 오늘도 레벨 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