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이 전하는 프리미엄 독서실의 문제점
저는 한 프리미엄 독서실의 알바생입니다. 설 전날인 15일까지 독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1년 6개월이 넘는 시간을 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독서실 경영사정이 악화됐습니다. 물론 제 월급엔 문제가 없지만, 4개월 정도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가 작년 수험생들이 빠지고 신학기가 시작되지 않아 비수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작년엔 분명 이 정도는 아녔습니다. 항상 자리가 없어 대기자들이 줄 섰었습니다. 불과 1년 만에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토즈 스터디 센터, 어썸 팩토리, 온 더 데스크, 크라스 플러스 독서실, 그린 램프 라이브러리, 스터디 플래닛, 아카데미 라운지, 천일문 라이브러리, 스터디 뱅크 독서실, 듀앤 큐브
제가 알고 있는 프리미엄 독서실 브랜드입니다. 더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이자 기업 입장에서 손쓸 수 없는 문제, 공급과잉입니다. 몇 해전부터 공간을 대여하는 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망한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건, 수요는 있되 공급자가 아예 없던 새로운 시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공간 대여업 중 프리미엄 독서실은 일확천금은 힘들지만, 큰 노력 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기사화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었고, 2018년인 지금 공급과잉 최고점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습은 편의점과 닮아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프리미엄 독서실의 경우 학교 근처라든지 주택가라든지 비교적 한정적인 입지를 가진 것입니다.
이 곳은 서초구에 위치한 서울고등학교 사거리입니다. 2017년까지만 해도 3개 업체가 존재했지만, 현재 6개 업체가 존재합니다. 무려 1년 사이에 3개 업체가 늘었습니다. 인근에 학교가 많고 대단지 아파트 혹은 주택가라면 수요가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곳은 학교는 2개뿐이며, 6개 업체가 공급하는 좌석을 수요 할만한 대규모 주거단지 있지 않습니다. 비단 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다른 지역에서도 공급과잉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독서실'을 처음 정의 내렸다고 할 수 있는 토즈의 창업주 인터뷰를 살펴보겠습니다.
6년간이나 지겹도록 공부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험공부 자체가 아니라 공부할 공간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했던 점입니다.
즉, 마땅히 공부할 공간이 없다는 일상에서 불편함을 발견했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이렇듯 토즈의 시작은 공간의 부재였습니다. 따라서 좋은 시설을 공급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촌에 1호점을 낸 지 16년이 지났습니다. 이미 좋은 시설을 공급하는 기업은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더 이상 좋은 시설을 제공하는 건 '프리미엄'이 아닙니다. 따라서 '프리미엄'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프리미엄'은 희소성에서 옵니다. 희소성은 같은 카테고리의 제품과 서비스를 체험했더라도, '이전과 다른 경험'을 만들어 줍니다. 희소한 경험은 누구나 누릴 수 없기에 더욱 빛납니다. 따라서 체험이 주는 효용을 넘어 경험자에게 '이전과 다른 희소한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옷의 기본 효용은 외부환경에서 몸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위 명품이라 부르는 옷을 입는 건 보호뿐 아니라, 명품이 주는 '특별한 경험'에 있습니다. 단순한 효용의 증가는 한계 체감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더라도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남들의 시선, 개인의 만족 등' 효용을 넘어 프리미엄의 희소성이 제공하는 '특별한 경험'만이 차이를 만듭니다.
프리미엄의 희소성으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하나입니다.
치킨 게임
치킨게임은 두 명의 경기자들(players) 중 어느 한쪽이 포기하면 다른 쪽이 이득을 보게 되며, 각자의 최적 선택(optimal choice)이 다른 쪽 경기자의 행위에 의존하는 게임을 말합니다. 즉, 가격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기업이 승자가 됩니다. 치킨게임은 경쟁에 놓인 기업뿐만 아니라 시장의 규모를 축소시키기에 시장에도 좋지 않습니다. 나아가 해당 제품/서비스로 얻을 수 있는 최종적인 효용과 경험의 발전도 없어집니다. 당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혜택을 보더라도, 결국엔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다음은 제가 지난 1년 6개월가량 근무를 하면서 있었던 나름의 '행사'입니다.
2+1 행사 : 2개월치 가격으로 3개월 회원권을 판매하는 프로모션
~만원 할인 행사 : 신규는 3만 원, 기존은 2만 원 할인 프로모션
문화상품권 행사 : 친구를 데려오면서, 그 학생에게 소액의 문화상품권을 지급하는 프로모션
그나마 진행했던 프로모션도 가격을 낮추는 것뿐이었습니다. 신학기마다 동일한 프로모션을 진행해 고객의 학습을 지원하는 '진정성'있는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닙니다. 빈자리를 채우기 급급한 프로모션뿐이었습니다. 가격 중심의 무차별적인 프로모션은 제품/서비스의 유저가 누구인지, 구매자가 누구인지 분석을 해내는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차별화된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학습유형과 그에 맞는 좌석을 고를 수 있는 서비스처럼 유저 혹은 구매자가 효용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희소하고 특별한 경험을 얻기 힘든 결과론적인 서비스만 즐비합니다. 독서실은 어디까지나 공부하는 곳이고, 다른 자리에서 공부를 해도 마찬가지로 성적이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과학적인 분석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과학적 근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소리를 듣길 희망하며, 원하는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합니다. 마케팅 또한 이들이 원하는 마케팅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합니다.
제품/서비스의 유저와 구매자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마케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 바로 정관장입니다. 과거엔 3050 여성을 메인 타겟으로, 남편과 자식을 둔 구매자를 대상으로 마케팅이 진행됐습니다. 현재는 인구통계적 틀에서 벗어나, 사랑을 주고 싶은 사람 - 사랑을 받는 사람으로 나눠 마케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품의 역할, 유저와 구매자에 대한 재정의를 통해 제품의 본질적 가치에 근접하게 됐습니다. 더욱이 보다 넓은 타겟층과 진정성 있는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해결책이 없는 지적은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편에선 몇 가지 솔루션을 제시할 예정이다.
커버 : 아이엔지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