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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Sep 18. 2021

+17, 쓰임새를 찾아서: 여수시 돌산읍 完.

 몽환(夢幻)

그렇게 순식간에 이틀이 지났고, 그동안 ‘그’는 종적을 감추었다. 하지만 왠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이틀에 쓰임새는 전혀 없었다. 내 귀에 익은 그 울음소리, 쓰-, 비슷한 것도 전혀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그 이틀은 허무하지만 평온하게, 빠르지만 여유롭게 지나가 버렸다.


그와는 기차역에서 출발 시간에 맞춰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조금은 일찍, 여유롭게 커피나 한 잔 마실 겸, 숙소를 나섰다.

시내로 가는 버스는 어림 잡아 30분에 한 대 정도. 기약 없이 버스를 기다리며 동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급할 것 없고, 누구 하나 재촉하는 이 없는 이런 여유로운 분위기. 당분간은 느낄 수 없을 것 같다니 조금은 우울해진다.




‘환기’


여러 의미가 떠오르는 이름이다. 예술가 김환기 선생님의 이름, 공기를 순환시키는 행위, 혹은 어떤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것.

나는 그런 의미를 담은 카페에서 여수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아늑하고 편안한, 여러 빈티지하고 앤티크한 장식품이 놓인, 우드와 화이트 톤이 조화를 이루는 곳. 정성스레 담긴 커피 한 잔에 머리를 담고 사색에 잠기기에 딱 좋은 분위기다.


창 밖으로는 항구와 함께 오동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짠내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하얀 커튼을 춤추게 만든다. 쓰윽, 쓰윽-. 커튼이 춤추는 소리는 그 놈의 울음소리와도 묘하게 닮았구나.


커피 한 잔만 하려던 것이 커피 두 잔, 차 한 잔, 스콘 한 개로 늘어나고, 그동안 시간은 이 여행의 끝을 향해 힘차게 달려간다. 사장님과 아쉬움 가득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 여수 EXPO역으로 향한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나 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조금 야윈 것 같기도.


나는 그런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도 나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침묵에 익숙해진 채로, 기차는 우리를 다시 서울로 되돌려 놓았다.






     『앞뒤로 30날』은


삶의 크고 작은 분기점의 앞뒤로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마음을 다 잡는 솔직한 고백이자 성찰의 기록입니다. 매일 남은 혹은 지난 날짜를 체크하며, 주제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 합니다.


앞뒤로 30날을 기록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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