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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08. 2020

「30살 앞 30날」D-25

6. 25

30살 앞 30날



6. 25, = 50 / 2



" 27 club 에 가입할 자격을 얻기에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한참 부족하다. 그 대신, 나는 이따금씩 ‘난 50살에 죽을 거야’라는 얘기를 진지하게 꺼낸다. forever 50 club 이 만약 있다면 그곳에 내 삶의 전부를 새긴 이력서를 내고 싶은 마음이랄까. "

<30살 앞 30날> 4. 27 中



50번째 삶을 마지막으로 꿈꾸고 있다면, 25번째 삶은 정확히 그 중간에 놓인, 아주 중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나의 25번째 삶은 반환점이었을까, 분기점이었을까, 혹은 또 다른 어떤 것이었을까.



대학교 4학년, 부전공 1년 차, 다양한 교내외 활동과 공모전까지. 단연코 내 n번째 삶 중에서 가장 열심히, 바쁘게 살았던 때가 바로 25번째 삶이었다. 우물에서 뛰쳐나온 개구리의 마음으로.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체력과 용기가 갖춰진 시기였다.



패션 공부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지키기 위해, 패션과 관련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도전했다. 매 학기 방학마다 전문학원에서 디자인 실습을 하고, 학기 중에는 부전공에서 다양한 강의를 듣고, 동시에 교내외 활동을 병행하며 몸과 머리로 익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채워나갔다. 그 절정에 달했을 때에는, 21학점을 수강하면서 교내 학회의 운영을 담당함과 동시에,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대외활동까지 곁들였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시기의 기억이 뒤죽박죽인 것을 보면, 정말 닥치는 대로 가릴 것 없이 살았던 것 같다.



덕분에 1년 후, 26번째 삶에서 취업을 준비할 때 가장 도움이 된 시기가 되었다. 소위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미친 듯이 쌓았으니까. 아직도 그 당시 취업에 필요한 서류들을 스크랩해놓았던 폴더를 가지고 있는데, 그 속에 담긴 상장이나 자격증, 증명서의 대부분은 25번째 삶의 성취로 얻은 것들이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생활에 소홀했던 것도 아니었다. 학교 근처의 작은 라이브 펍 밴드의 드러머로 꾸준히 활동하기도 했고, 술자리만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마셨으며, 짬을 내서 운동도 했고, 연애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밤을 새우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도 즐길 새가 없었다.



이렇게 글로 기억을 되짚으면서도 도대체 어떻게 지치지 않고 버텼을까 싶은데, 그것이 내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기준을 만들어 주었다.



이석증. 신체의 평형을 담당하는 달팽이관 안에 있는 이석이 이탈하여 발생하는 병으로, 세상이 도는 듯한 회전성 어지러움과 구토, 안진(한 곳을 응시하고 있음에도 눈동자가 계속해서 한쪽으로 돌아가는 현상) 등의 증상이 있다.



이석증이 처음 발병한 것은 20번째 삶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때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어도, 침대를 벗어나도 괴로운 것은 물론이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급히 병원을 찾아 이석증 진단을 받았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감기처럼 평생을 함께하는 병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 이어진 물리치료에서 진정한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이석의 위치를 바로잡기 위해 양쪽 귀에 뜨거운 물을 강제로 주입하고, 억지로 내 몸을 내가 넘어뜨리며 어지러움에 적응해야 하는. 차마 말로 설명하기에도 끔찍한.



두 번째 이석증은 2년 차 고시생이었던 내 24번째 삶에 찾아왔다. 

시험을 불과 한 달 여 남긴 어느 날, 어김없이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느지막이 집에 돌아와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침대에 몸을 던진 그 순간, 아주 익숙한 그 전조 증상을 느꼈다. 짧은 순간 세상이 한 바퀴 돌아버리는 그 끔찍한 느낌. 이내 온몸이 오싹해지는 공포를 느끼고는, 그 즉시 상비약을 찾아 단숨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중대한 결심을 했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결심.



그때부터, 이석증은 내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석증이 찾아왔다는 것은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니, 당장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긴급하고 엄중한 경고가 되었다. 



그 명제의 대우를 훌륭하게 증명한 사례가 바로 나의 25번째 삶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면,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고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것이다. 

스트레스에 지나치게 예민한 탓에, 점차 내 건강 신호등에는 청신호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않지만, 한편으로는 신호등이 고장 나버릴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면, 25번째 삶은 내 인생에 있어 첫 번째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남이 원하는 대로 이끌려 가는 삶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이끄는 삶으로. 그렇게 변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아낸. 첫 번째 터닝 포인트.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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