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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09. 2020

「30살 앞 30날」D-24

7. 24

30살 앞 30날



7. 24, 시간이 모자라.



오늘도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며 눈을 감는 그 순간 하루가 24시간뿐이라는 것을 매우 아쉬워할 것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미처 다 하지 못한 일이나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 퇴근 후에 나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도 있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걱정 없이 수다를 떨 수도 있고, 항상 부족한 잠을 늘어지게 잘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글에서처럼, 치열하게 살던 25번째 삶에서 그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정확히는, 바쁜 와중에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나는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은 사람이 아니다. 집중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신체적으로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쓰기도 했지만, 2년 간의 고시생활을 거치면서 눈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졌다.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평소와 다름없이 도서관 한쪽 구석에 앉아 끝이 없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눈이 뻑뻑하다는 느낌은 있었으나, 몸이 조금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했다.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올 겸,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와 먼 산을 바라보려는데, 먼 산이 보이질 않았다. 마치 슬픈 감정에 복받쳐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것처럼, 온 세상이 흐리고 뿌옇게 보일 뿐이었다. 서둘러 자리에 돌아와서 책을 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손을 뻗으면 닿을 가까운 거리에 책이 있는데, 그 글자들이 세네 겹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다음 날, 근처 안과를 찾아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굳이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무심하고 뭉툭하게 한 마디를 툭 던졌다. “학생 고시 공부하죠?” 

소위 ‘고시병’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지나치게 오래 가까운 것만 보게 되면 눈에서 거리를 조절하는 근육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고, 수축과 이완이 어려워지면서 초점을 잃게 된다는 것이었다. 자세한 설명 뒤에 이어지는 처방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책을 보지 말라는 것. 헛웃음이 나왔다.



고시 공부를 청산하고 난 뒤에는 조금 호전되었지만, 그 후로도 지금까지 일을 오래 하거나 작업이 길어지면 어김없이 눈이 초점을 잃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밤을 새워가며 작업을 할 때면 거의 울면서 작업을 한다. 조급한 마음에 속으로도 울고, 눈이 아파서 겉으로도 울면서.



그래서 항상 24시간으로는 부족했다. 눈을 감고 일하지 않는 이상, 오래 일을 하면 당연하게 눈이 아팠고, 그러면 적당히 쉬어가야 했다. 심지어 일 머리를 식히기 위한 수단으로 틈틈이 디자인 작업을 하거나 글을 읽기도 했으니, 정말 쉬어갈 틈을 주지 않았다. 

그나마 짧게라도 눈을 붙이면 몇 시간은 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잠을 자도 괜찮은 회사는 당연히 없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잠드는 날이 허다했다. 시간이 더 주어지지 않는 이상, 나를 위한 여유를 가지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의 나에게도 언제나 24시간은 부족하다. 

처음 경험하는 프리랜서의 삶은 정말 시간과의 싸움이다. 일이 있으면 데드라인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에 쫓기고, 일이 없으면 굶어 죽을 수 없기에 간절함을 쫓게 된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고,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만큼 여유를 충분히 누릴 시간도 필요하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라 여기는 것은, 24시간이 모자라서 아쉽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몸과 마음이 힘들고 아프던 시기에는, 주어진 24시간을 내다 버리고 싶을 정도였으니.

아, 물론 아침에 눈을 뜰 때에는 조금 다른 감정을 느낀다. 남은 하루를 어찌 보내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남은 시간의 풍족함에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일어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니까.



그래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오늘의 24시간도 모자라다고 느끼는 나 자신이라서 참 다행이다.



오늘도, 24시간은 모자라.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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