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루 do rough Dec 16. 2020

「30살 앞 30날」D-17

14. 17

30살 앞 30날(reversed)



14. 17, 17177 1



세상에 단 한 사람 당신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나

이 세상에 태어난 걸 알고 있나요


어쩌면 우린 예전부터

이름 모를 저 먼 별에서


이미 사랑해 왔었는지도 몰라요

<17171771>, 자우림



드라마처럼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뿅 하고 빠지는 것보단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 요즘 연애의 트렌드라지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저런 순간 한 번 없을까나

저런 순간 없더라도 그런 생각 한 번 없으려나


서로가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순간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바로 직전일지도 몰라요


아주 먼 옛날부터 당신만을 바라보며

저 별에서 지구로 한 달음에 날아왔다는 그 거짓말이

별사탕처럼 아주 달콤할 그때


바로 그때,

17171771.


17171771



생각만 해도 이불을 죄 걷어차버리고 싶어 그냥. 이 새끼 저 새끼 해도 그만한 새끼가 있을까. 

뭐가 그렇게 좋다고 그랬나 몰라. 애초에 시작을 말았어야지. 왜 그때 그거에 홀려가지고 그냥. 진짜 그때로 돌아가면 다 찢어버릴 거야 다.


그 뻔한 거짓말에 홀라당 넘어간 내가 바보지 내가. 무슨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고. 별이고 나발이고. 

세상에 반은 남자고 반은 여자랬는데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정말. 어휴. 미친거지 외로워서.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지.


내가 진짜 다시는 생각도 안 할 거야. 내가 그러면 진짜 개다 개. 

개새끼야 아주.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어째서 단 한 사람만을 만나서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한 가지 사랑만을 해야 하나요

<Carnival Amour>, 자우림






비록 내가 삐삐를 쓴 세대는 아니지만, 그 시절 삐삐 메세지는 숫자만으로도 온갖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해 마음을 전하는, 아주 애절한 암호문이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자우림의 5집 앨범 수록곡 <17171771>도 삐삐 세대에게 익숙한 암호문 중 하나이다. 

언뜻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저 무의미한 숫자의 나열을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 줄 만한 정성이라면, 이미 9부 능선은 넘어간 것일 테다. 노랫말도 어찌나 애틋한지, 토씨 하나 바꾸지 않아도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로 전혀 모자람이 없을 명문이다. 차마 내 입으로 내뱉기에는 소름이 살짝 돋지만.



삐삐로 쓴 17을 그 시절 그 감성으로 해석하면 U가 된다. YOU, 그러니까 당신.



나 만큼이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 당신. 인생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 

사랑에 빠지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버려서, 당신과의 화학반응이 뿜어내는 엔도르핀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세상 모든 것이 두렵지 않고, 언제나 씩씩하고 밝게, 함께라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그런 마음으로, 모든 충성을 바치리라.


17 = U



문제는, 사랑의 유통기한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불같은 사랑을 나누던 연인은 유전이 터진 것처럼 영원히 사그라들지 않는 불꽃을 피울 것 같다가도, 서로를 불태워 한 줌 재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노랫말도 있지 않은가.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거라고.



자우림의 7집 앨범 수록곡 <Carnival Amour>는 앞서 소개한 <17171771>의 속편 같은 노래이다. 두 곡 모두 자우림의 김윤아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로,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선 곡의 가사를 절묘하게 비꼬는 듯 읊기도 한다. 두 곡을 연달아 들으며 비교를 하는 재미가 쏠쏠한데, 김윤아의 가창력과 연기력에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시점이 얼마나 지나서 저렇게 변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의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한 줌의 미련도 남지 않은 것처럼 쿨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이별을 고하는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내 속이 시원해지는 듯하다.



나 만큼이나 소중하고 특별하기에, 내 삶에 있어서 절대 빼놓을 수 없기에 나는 당신을 더욱 매몰차게 대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히 독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함께한 모든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마지막 남은 자비라고 해야 할까.



17 17177 1. 과거에는 수줍고 애틋하게 진심을 전하던 그 말.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애써 짜 맞춘 복잡하고 구차한 것들을 이해하려 할 것 없이, 그냥 보이는 그대로 들이받아버려. 17 171 771.



그렇게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0살 앞 30날」D-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