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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18. 2020

「30살 앞 30날」D-16

15. 16

30살 앞 30날. 업로드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15. 16, 2⁴



이사(移徙, move). 사는 곳을 다른 데로 옮김. 

공교롭게도 몇 안 되는 이사 경험 중, 내 인생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이사를 했던 때가 내 나이 16살이던 때이다.



요즘은 어떤 식으로 진학을 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내가 고등학교를 가던 때에는 소위 뺑뺑이로 다음 학교가 결정되었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외국어고등학교로 진학하기도 했으나, 나는 공부보단 게임과 축구에 미쳐있었던 평범한 아이였다.

뺑뺑이에도 대략적인 확률이라는 것이 있었다. 대부분은 내가 다니던 중학교 인근의 고등학교로 배정되었지만, 아주 낮은 확률로 구의 경계를 넘어가야 하는 예외도 존재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주 독한 벌칙을 걸고 룰렛을 돌릴 때처럼.



제도의 공정성을 위해서인지, 그 결과는 졸업식 당일에 발표되었다. 중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친구들과 어쩌면 영영 헤어져야 할지도 모르는 그 순간에 아주 작은 쪽지에 쓰인 몇 글자로 친구 사이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예상대로 주변 고등학교에 배치되었기 때문인지, 그 결과로 인해 동요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내 차례가 되었고, 건네받은 쪽지를 열었을 때, 절로 ‘응?’ 이라는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16년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학교의 이름이 적혀있었으니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반에서 그 고등학교를 가는 친구는 나뿐이었고, 놀랍게도, 전교생 400여 명 중에는 오직 4명뿐이었다. 1%의 확률을 보란 듯이 뚫어내다니. 99%에 속하지 못했다는 것은 중학생 3학년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벌칙이었다.



얼마나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면, 친구들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목이 쉬도록 억울함을 어필했다. 심지어는 행사가 모두 끝난 뒤 지나가던 교장선생님을 발견하고는, 다짜고짜 이게 무슨 일이냐며 절규하기도 했다.



그때 교장선생님은 ‘운이 좋네! 잘 됐다’라고 하셨다.



사는 곳을 다른 데로 옮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일단 사는 곳의 정의부터 새로이 할 필요가 있을 텐데, 당연히 거주하는 집이라는 공간도 포함될 테지만, 그 집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환경도 포함이 될 수 있다. 

학교나 직장을 옮기는 것도 이사가 될 수 있다. 24시간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보내는 곳이니, 사는 곳이라 해도 과언은 절대 아니니까. 24시간을 어떤 곳에서 어떻게 보내느냐는 곧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와 강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내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집은, 대학교 1학년 시절 자취를 하며 두 번째로 거주했던, 학교 근처의 5층 건물 5층에 위치한 작은 원룸이었다. 5평 남짓한 방에, 한 켠에 난 창문을 활짝 열면 탁 트인 길거리가 보이는, 뷰가 괜찮은 방이었다. 문제는 그 유일하게 난 창이 정확히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24시간 중에 해가 들어오는 시간이 극도로 적은 탓에 여름에는 곰팡이, 겨울에는 냉기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겨울에는 보일러를 켜고 패딩에 수면바지와 수면양말을 신고 있어도 침대를 벗어나면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이석증을 처음 앓았던 때도 그 집에서 살던 때였다. 10년이 젊었기에 망정이지, 지금 그런 집에 살고 있다면 며칠 내로 병원 신세를 질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이래로 지금까지, 10년 가까운 자취 생활 동안 여러 자취방을 전전하면서 자연스레 사는 곳을 보는 눈썰미가 생겼다. 고통을 겪어본 만큼 허투루 볼 수는 없었다.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집도 2-3달 동안 수십 개의 매물을 비교하며 찾아낸 곳이다.

하지만, 완벽한 조건을 갖춘 집은 아니다. 남쪽과 서쪽으로 큰 창이 난 덕에 채광이 좋지만, 커튼 박스가 없는 탓에 한동안 해가 뜨면 일어나야만 했다. 빌트인 옷장과 신발장이 구비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동선이 걱정될 만큼 방이 작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집은 나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로또 1등에라도 당첨되면 모를까.



학교나 직장도 마찬가지 아닐까.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쌓이는 경험으로 좋은 판단을 하는 수밖에.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원치 않는 곳보다는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한 노력을 곁들일 동기가 생기는 것이다.



워라밸, 워크 라이프 밸런스. 요즘 가장 뜨거운 단어. 그 의미는 해석하기 나름일 테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목표이기도 하면서, 또 다른 사람에게는 무가치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마법의 단어.

워크를 앞서 말한 것처럼 학교와 직장에 빗대서 생각해보면, 나는 철저히 워크와 라이프가 분리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 분리가 확실하다면, 워크가 24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다.



이는 어릴 적부터 철저히 학습된 결과이다. 나에게 집은 철저한 여가와 휴식의 공간이었다. 부모님의 교육 방식이 그러했다. 집에서는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도 불필요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학교에서 학업에 충실하지 않으면 일벌백계가 내려졌다. 자연스레 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고, 집에서는 최선을 다해 휴식을 했다.

그 습관은 독립을 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평소 웬만한 작업은 집 근처 카페에서 하는 편인데, 카페에서 5시간이면 넉넉히 끝낼 일을 집에서는 한나절을 붙잡아도 끝을 보지 못한다. 반대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24시간 운영하는 카페를 가서 꼬박 밤을 새도 전혀 문제가 없다. 언젠가는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 잠을 청할 수 있을 테니까. 지난 글에서도 말했듯이, 신체적으로도 쉴 때는 쉬어야 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어쩌면 워크와 라이프를 일치시키려는 시도이다. 일에 대해 항상 깨어있는 태도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영감이라는 것은 일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불쑥 찾아오는 법이기도 하다.



아, 그래서 그 교장선생님의 운이 좋다는 발언에 대해서. 당연히 나는 그 자리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말이 참말이었다. 그 1%의 확률을 뚫은 것은 불운이 아닌 행운이었던 것이다. 학업에 열중하기에 더 좋은 동네와 환경을 갖춘 학교로 진학한 것이었고,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과연 공부를 그만큼 열심히 했을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그만큼 사는 곳은 참 중요하다. 그 이사 한 번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고 믿을 만큼.



크게 봤을 때, 29번째 삶까지 겪은 이사가 족히 20번은 될 것 같다. 옮겨다닌 집도 10곳은 될 테고, 학교와 직장도 도합 10곳은 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찬찬히 따져보면, 이 결과가 그리 과장된 것은 아니라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그 20번 남짓한 이사를 모두 마치고 난 결과가 서울 한복판에 홀로 남겨진 백수라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다만. 그렇지만, 이사는 계속될 테니까.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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