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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02. 2020

「30살 앞 30날」D-31

0. 프롤로그

30살 앞 30날



0. 프롤로그(30+)



「30살 앞 30날」을 준비하며 옛 사진들을 되돌아보다가, 하나의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언제 찍힌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머리가 짧은 것을 보아하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닌가 보다 했다. 계속 보고 있으니 슬슬 기억이 돌아왔다. 1년 전쯤, 추석에 부모님을 찾아뵙고서, 바람이나 쐴 겸 마실을 나간 차에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찍힌 사진. 

100m 길이의 러닝 트랙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옷깃을 여미는, 따스한 날씨를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이 그 사진 속에 담겨 있었다.



불과 1년 2개월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새로운 직장에서의 성장을 기대하던 나는 직장을 잃은 백수가 되었고, 20대 청년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평범했던 헤어 스타일은 단발과 장발의 경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비범한 스타일로 변했으며, 미세먼지가 없으면 호탕하게 숨을 들이쉬고 내뿜던 내 호흡기는 마스크에 가려져 햇빛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또, 둘에서 하나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변화의 풍랑에 휩쓸려 거칠게 표류하던 내 29번째 삶도 한 달 뒤면 끝이 난다. 

물론 앞자리 숫자가 달라진다 해서 모든 게 없었던 일처럼 리셋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래, 이 지긋지긋한 29번째도 ‘끝이 난다’는 것 때문에 그 사진에 유독 꽂혀버린 것일 테다. 아주 커다란 육상 경기장의 러닝 트랙의 굽이진 구간을 뛰고 또 뛰어오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멈추어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니, 그 거대한 트랙의 직선 구간에 결승선이 보이는 순간을 나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 결승선은 지금의 나를 위한 것은 아니다. 먼 훗날의 늙고 지친 나라면 모를까. 돌고 도는 인생처럼, 트랙 위를 돌고 돌다 보니 처음으로 마주한 30살이라는 결승선(이자 출발선)이 아주 생경하게 다가오는 것을 기념하고 싶을 뿐이다. 

동시에, 이미 기록은 남들보다 뒤처졌을지라도, 기왕이면 멀쩡한 모양새로 그 선을 넘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두 번째 바퀴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얼추 눈대중으로 거리를 가늠해보니, 30걸음이면 그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바퀴의 마지막 30걸음 동안 나는 지난 내 걸음걸이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의 걸어갈 모양새와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려 한다. 사실, 30걸음이면 레이스 전체에서 불과 10초도 되지 않을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여느 때보다 중요한 영겁의 순간처럼 느껴진다. 



그 30걸음의 첫걸음을, 이제 막 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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