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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03. 2020

「30살 앞 30날」D-30

1. 30

30살 앞 30날



1. 30, 30살과 30대



「앞뒤로 30날」의 첫 번째 소재는 30살이다. 왜, 하필이면 30살일까. 29번째 새해를 맞이하는 동안 한 번도 이런 고민을 한 적은 없었다.



나는 감히 우리나라 사회를 평균의 사회, 일반화의 사회라고 생각한다. 

삶의 과정에 있어서 ‘왕도’라고 하는 그 길을 벗어나는 사람에게는 따가운 관심과 건조한 조언들이 쏟아져내린다. 특히, 처음부터 그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보다, 그 길의 가운데에서 방향을 트는 사람에게 더욱 더. 그런 사람에게는 때로는 조언을 넘어선 저주가 내려지기도 한다. 네 나이를 생각하라던지, 그러다 굶어 죽는다던지 하는 따위의. 

주변을 둘러보면 다 그렇게 참고 버티며 잘 살아가는데 왜 너는 그렇지 못하냐는 말에는 여전히 어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른다.



28, 29번째 삶은 20대 후반의 삶으로 뭉개지고, 곧 20대 또는 30대 전체의 삶으로 뭉뚱그려지다가, 청년 또는 중년의 삶이 된다. 그렇게 각자의 삶은 모양과 색을 잃고 희끄무레한 회색의 둥그스레한 덩어리로 변한다. 

적어도 내가 28번째 삶까지 겪어온 내 주변 환경은 그러했다. 고등학생 때는 응당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했고, 대학생 때는 학점을 잘 챙기면서 미래를 위한 시험 준비를 해야 했고, 졸업을 앞두면서 자연스레 대기업을 가기 위한 끝이 없는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렇게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 상향평준화로 완성된 일반적인 ‘왕도’였다. 



단, 거기까지였다. 딱 거기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지도에 표시된, 단 하나의 길 끝에 위치한 종착점이었다.



운이 좋게 그 종착점에 도착했을 때, 그 너머에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았던,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던 수많은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갈림길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그 지점에 내가 서있는 것 같았다. 강을 따라 빠르게 내려오는 방법은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에는 일절 쓸모가 없었다. 멈추고 싶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이미 물살에 휩쓸려 버린 탓에,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채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실제의 삶에서도 물놀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앞서 얘기한 삶의 과정에서도 물을 좋아했다. 강을 타고 내려올 때에도 나름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바다에 빠졌을 때에도 처음에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물살에 몸을 맡기고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눈을 감고 풍류를 즐겼다. 이미 바다로 나왔는데 어디로든 어떻게든 갈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주변에 그렇게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많았던 탓에, 어떠한 위화감도 없었다.



갑자기 이런 얘기까지 하게 된 것은, 29번째 삶을 앞두고 문득 나도 뭉뚱그려질 것 같다는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손끝과 발끝부터 서서히 닳고 뭉개져서, 팔꿈치와 무릎을 넘어, 종국에는 팔과 다리가 다 뭉개진 채로, 내 의지대로 방향을 조절하지 못하고 그저 물살의 흐름에만 몸을 맡겨야 하는 삶이 될까 봐. 

그런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는 강을 따라 내려올 때부터 열심히 팔과 다리를 허우적댔고, 그것이 즐거웠을 뿐이다. 넓고 푸른 바다의 고요한 물놀이 속에서 온 몸으로 물장구를 치려는 나는 한 마리의 빌런에 가까웠다. 

그래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사는 삶이 꽤 멋져 보였다.



앞선 지리한 이야기를 잠시 뒤로 하고, 지금의 나는 30살이라는 러닝 트랙의 결승선(혹은 출발선)을 바라보고 있다. 열심히 물장구를 치대던 중에 경련이 일어나, 물도 많이 먹고 온 몸이 땀에 젖어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는 애잔한 꼴로. 

이러는 와중에도 조금은 좋은 모양새로 그 결승선을 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오래 주입되어 온 일반의 시선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30살이 되는 순간 일반적인 30대의 삶과 비교당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사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내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뿌듯함을 느끼다가도, 배가 곯아 지르는 비명을 듣노라면 물놀이를 하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를 부러워하지는 않을지언정, 돼지가 게걸스럽게 배를 채우는 그 순간은 차마 쳐다볼 수 없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30살일까. 그것은 아마 배고픔도 열정으로 채울 수 있는 20대에서 배고픔을 걱정하지 않아야 마땅한 30대로 넘어가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30걸음 남짓 남은 이 순간에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꿈꾸는 것이라면, 남은 30걸음 동안 흉내라도 내야지. 

나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는 듯 겉으로라도 멀쩡해 보여야지. 당장 배가 부를 수가 없다면, 먼 미래의 부귀영화를 기대하고 상상하며 배부른 척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30살이라는 결승선을 통과해야지.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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