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새를 발견한 지 18시간 하고도 21분이 지났다
…
“으에?”
“예?”
아니, 말을 할 줄 알아? 심지어 한국어로 존댓말까지?
연신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잠재우겠다며 입을 놀리는 그를 보면서 내 혼란스러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상상이라도 해보았는가, 새의 부리에서 우리말 한글이 쏟아져 나오는 풍경이라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와중에 이해한 그의 말은 대략, 본인도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이며, 자신은 그저 어떤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사냥꾼이라는, 너무나도 구시대적이어서 어이가 없어지는 내용이었다.
도대체가, 이런 이야기를 믿으라는 거야?
일단,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시며 서로 마음을 가라앉혀 보기로 했다. 엄마는 항상 손님에게 최소한 마실 것이라도 드리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혀 반갑지도 않고, 내가 초대한 손님도 아니지만 손님은 손님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뜨겁지도 않은 지, 홀짝거리며 차를 벌써 반이나 비워냈다.
나는 더 이상 서로 민망한 침묵이 계속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아까 사냥꾼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어떤 걸 사냥하는 건데요?”
그런데 저 대가리, 굉장히 불쾌하다. 가면인지 진짜 머리인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정면으로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도 왠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매우 불쾌했다. 나는 그 불쾌함이 드러날까, 표정을 숨기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새를 잡아요. 쓰임새라고.”
“쓰임새?”
무슨 새 이름이 그렇냐고 또 무례를 저지를 뻔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질문을 이어 나갔다.
“어떻게 생긴 건데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음… 생김새가 엄청 다양하다고 배웠는데. 아직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고, 아버지께 듣기만 해서.”
“그래도, 대충 설명이라도 해줘요. 혹시 아나, 내가 봤을지?”
절대 그럴 리 없다는 그의 무시하는 듯한 눈빛을 읽어버렸지만, 애써 그것까지도 무시하며 그를 재촉했다. 그럼에도 그는 연거푸 손 -이라고 해야 하나, 날개라고 해야 하나- 사레를 치며 거부했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던 도중, 그가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자네는 해가 중천에 떠가는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요?”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 정말 예의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새대가리.
Q7. 임보는 언제까지 할 계획인가? 임보 기간이 끝나면 물건은 다시 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 물건들의 원래 자리 혹은 재배치 등 계획해 둔 일들이 있나?
물건에는 쓰임새가 있다.
그 쓰임새라는 것은 쓰는 사람이나 쓰이는 공간마다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데, 지금은 내 방보다는 빌롱잉스의 스튜디오가 어울리는 자리다. 원래 자리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내가 구매한 것일지라도, 어쩌면 내가 진정한 의미의 소유자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나 무언가가 오고 가는 것은 부가적인 것일 뿐이다. 내가 집을 옮기고 새로운 공간이 생긴다거나, 빌롱잉스의 스튜디오가 리모델링을 거치거나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다면, 그렇게 상황이 변화할 때 그 물건들의 제 자리는 언제든 변화할 수 있다.
이상적인 그림은,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내 공간, 내 스튜디오가 생기는 것. 그리고 그 곳에 임보중이던 의자와 가구들을 적절히 데려오는 것이 아닐까. 반드시 전부는 아닐지라도. 꼭 전부일 필요도 없고.
분에 넘치는 욕심은 부리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