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쓰린 속에 고추기름을 붓는구나. 해보자 이거지.
“당신이 알게 뭔데요. 내 일은 신경 끄고 얼른 그 새 설명이나 좀 해보라니까요? 쓰임새인지 뭐시긴지.”
“왜 그렇게 발끈하는가? 설마…”
아니, 이 새대가리가 정말. 어째 대화를 이어 나갈수록 나만 더 화가 나는 것 같은데.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의미로 다시 침대에 발랑 누워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었다. 씨익씨익 숨을 거칠게 내쉬는 소리가 혹여나 이불 밖으로 들릴까, 어떻게든 숨을 고르려 노력했지만 그것조차 쉽지는 않았다.
이불 밖이 고요한 것을 보니 내 눈치를 보고 있나?
… 어림도 없지. 그는 내 행동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가 할 말만 하고 있었다.
“그래, 자네가 그런 위인 일리는 없고. 대신 쓰임새 얘기나 조금 해줄 테니 편히 누워서 듣게.”
비꼬는 솜씨가 제법이라 발끈했지만, 쓰임새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옛날 옛적에, 그러니까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기도 훨씬 전에 말이다.”
그는 아주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를 아득히 뛰어넘는 시절부터 전해져 온,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해서, 별 시답잖은 이야기라며 무시하려던 내 마음이 금세 사그라들 정도였다.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고개를 반쯤 들고 골똘히 생각하며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는 쓰임새가 어떤 것인지, 자신은 왜 쓰임새를 찾는 것인지를 진심 어린 눈빛과 목소리로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어느새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오랫동안 이어진 그의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나는 꽤 복잡한 심경이었다. 그런 존재를 내가 어제 마주쳤던 거라고? 이 서울 한복판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내가?
이게 무슨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도 아니고.
“저기… 그런데요, 저 사실 어제 그 쓰임새라는 걸 본 것 같은데.”
“뭐… 뭐라?”
실컷 골려주기나 해야겠다는 마음 반, 거짓말은 못하겠다는 마음 반으로 툭 던지듯 내뱉은 말이, 그에게는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