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새를 마주친 바로 다음 날부터
“쓰임새를 봤다고? 네가…? 언제! 어디에서!”
“워우… 너무 흥분하진 마세요… 다 얘기해 드릴 테니까.”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찬찬히 어제의 일을 낱낱이 전했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 어디에서 누구와 만났고, 면접을 어떻게 망쳤는지, 모두 있는 그대로. 그러다 쓰임새의 모습을 설명하던 때에 갑자기 그가 끼어들었다.
“아니, 제대로 본 게야?”
“그렇다니까요. 속고만 사셨나. 분명 새하얗긴 한데 흐릿한 게 거의 투명해 보였다구요.”
“그런 쓰임새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혹시 털 색은 어땠나?”
“아니, 방금 얘기를 했잖아요. 새하얗…, 잠시만. 아, 맞아요.”
기억이 났다. 분명, 아주 적지만 남아 있었다.
“꼬리! 꼬리가 파란색이었어요.”
“그렇지! 그래…, 파란색이어야만 하지. 그런데 참 대단허이.”
“뭐가요?”
눈이 동그래져 묻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그는 말했다.
“쓰임새를 직접 마주칠 정도라니… 역시 보이는 게 다는 아니로구만.”
아니, 이 새대가리가 또 뭐라는 거야.
매섭게 째려보는 내 눈빛을 뒤로한 채, 그는 내 방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그 무례함을 지적하려던 찰나,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단서를 찾아봐야겠는데, 혹시 집을 좀 뒤져봐도 되겠나?”
하, 되겠냐!
Q6-2. 의자는 세트로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함께 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구매한 것인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가?
홀로 생활한 지가 벌써 10년이 되었다. 자취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활 방식도 이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먼저,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내 거처가 임시 공간일 뿐이라는 생각을 점점 깊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구나 물건을 고를 때에도 그 다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집에 있는 가구 대부분이 조립식이나 모듈형 가구인 이유다. 언제든 들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하니까.
또, 대학 시절에는 누군가를 내 공간, 내 집에 들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기피했다. 되돌아보면, 2018년 9월까지 살던 자취방에는 책상 앞에 놓인 의자 하나 외에는 다른 의자조차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 물건들을 되돌아보면 많이 새롭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그런 경계심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나 혼자 보다는 둘 이상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의자 개수만큼 사람이 많이 그리웠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