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루 do rough Aug 15. 2021

-9, 흔치 않은 날 것.

당신은 어떤 것을 좋아하나요?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나를 앞에 두고, 그는 평생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는 듯이 어깨를 가볍게 치켜올려 보였다. 하품을 하거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그는 나에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로 몇 분을 기다려주었다.


결국 나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흔치 않은 날 것. rareraw를 직역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런 정체성이 나를 과하게 자극하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먼저, 흔치 않다는 것. 희소성이 높아서 귀하다는 의미보다는, 발견하기 어렵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에 가깝다. 이런 속성에 완벽히 지배당한 것이 바로 내 음악 취향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 플레이리스트들의 궁극적인 공통 요소는 '국내 인디밴드' 로 귀결된다. 가사의 의미를 깊게 따지고, 자유로운 형식을 선호하며, 밴드 음악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갖는 성격이 빚어낸 최적의 결과물.


대학에 입학한 뒤로 지금까지, 10년 동안 드럼을 쳤기 때문에 자연스레 밴드 사운드, 그중에서도 락 음악에 깊게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이 락의 정석을 배우기 위해 해외 락 음악에 미쳐갈 때, 나는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인해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 음악에는 흥미를 갖지 못했다. 대신, Nell을 시작으로 그 당시 떠오르는 국내 인디밴드들의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음악 세계에서 뛰어놀았다. 특히 듣는 것으로는 모자라, 직접 카피를 하고 공연을 하면서 더욱.


그렇다고 반드시 밴드 음악만 듣는 것은 아니라서, 장르에는 꽤 개방적인 편이다. 다만, 다른 장르라 할지라도 선호하는 음악들에 밴드 사운드의 향취가 짙게 배어있다는 점은 여전하다.

그래서 여전히 이태원 클럽이나 미국 빌보드에서 유행하는 트렌디한 음악들에는 문외한이다.


다음으로, 날 것. 앞서 말한 흔치 않음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느낌.


아마도 살아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정말 단어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음악이든 공간이든 물건이든 누군가에 의해 생명이 부여된 것 말이다. 생명은 곧 진정성이나 가치, 또는 이야깃거리와도 같은 의미가 된다.


나 또한 예쁜 쓰레기를 좋아하고 모으는, 별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개 소비자지만, 그래도 나름의 의미 부여를 하고는 싶다. 같은 값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컬러나 소재로 된 제품을 사고 싶고, 다른 값이라면 더 진정성이 있어서 공감되는 브랜드의 제품을 사고 싶을 뿐이다.


마치 내가 목재를 싫어하고 철재를 좋아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몇 가지 정해진 취향들이 존재한다.

옷을 살 때면 블랙 컬러를 광적으로 선호하며, 청바지는 절대 입지 않는다. 가구와 마찬가지로 소품도 다른 소재보다는 철재를 선호하는데, 특히 황동을 좋아한다.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호하지만 빈티지나 클래식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디자인이나 오리지널리티 못지않게 현실성을 중요시하므로, 가성비를 자연스레 따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엽서나 포스터 등 인쇄물을 열심히 모아 놓는다. 언젠간 레퍼런스가 될 것이라며.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에는 나름의 존재 가치와 이유가 있다. 그게 설령 정말 시답지 않은 것일지라도. 그런 것들이 내 방 구석구석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흔치 않은 날 것'. 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국내 인디밴드의 음악들을 반복해서 듣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상품이 나오는 소식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며, 주말에는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찾아 서울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어쩌면 홍대병(서양권에서는 힙스터. 대중문화를 무시하고 자신의 취향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마니아를 비꼬는 말.)에 걸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취향의 차이를 인정할 뿐 차별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강남스타일을 들으며 신나게 말춤을 춘 적도 있는 걸.






지나치게 몰입한 것일까,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른 채 쉬지 않고 떠들어댔구나. 그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요?"


"……. 음?"


"뭐야, 자고 있던 거였어요?"


"아니, 아니야. 절대."


아니기는. 입가에 침이나 닦고 말하시던가.


"그런데, 그렇게 얘기한 것 치고는 집이 조금 휑한 것 같은데?"






Interviewee: 나

Interviewer: 빌롱잉스


(생략)

홀로 생활한 지가 벌써 10년이 되었다. 자취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활 방식도 이에 맞게 변화하고 있다.


먼저,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내 거처가 임시 공간일 뿐이라는 생각을 점점 깊게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구나 물건을 고를 때에도 그다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집에 있는 가구 대부분이 조립식이나 모듈형 가구인 이유다. 언제든 들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하니까.


또, 대학 시절에는 누군가를 내 공간, 내 집에 들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기피했다. 되돌아보면, 2018년 9월까지 살던 자취방에는 책상 앞에 놓인 의자 하나 외에는 다른 의자조차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내 물건들을 되돌아보면 많이 새롭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그런 경계심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나 혼자 보다는 둘 이상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의자 개수만큼 사람이 많이 그리웠었던 게 아닐까 싶다.

(생략)






     『앞뒤로 30날』은


삶의 크고 작은 분기점의 앞뒤로 3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을 마주하고 마음을 다 잡는 솔직한 고백이자 성찰의 기록입니다. 매일 남은 혹은 지난 날짜를 체크하며, 주제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 합니다.


앞뒤로 30날을 기록하고 싶으신 모든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 개똥철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