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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 do rough Dec 05. 2020

「30살 앞 30날」D-28

3. 28

30살 앞 30날(스페셜)



3. 28, 2월



유일하게 30일을 다 채우지 못하는 28일짜리 달, 2월은 내가 태어난 달이다.



태어난 날. 생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주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사소한 인연이라도 닿아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 축하를 받고, 친구들과 이렇게 저렇게 모여 성대하게 축하 파티를 열고, 1년 치 선물을 하루에 다 받게 되는 그런 날. 

사람에 따라서 그 정도는 다르겠으나, 생일 축하를 위한 파티를 매일 다른 친구들과 만나 1주일이 넘도록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에게는 그것이 가슴팍에 매달린 커다란 금빛 훈장과 같은 것이어서, 생일이 다가올 때면 뿌듯함을 숨기지 않고 자랑스럽게 이번 생일 주간의 스케줄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 친구를 나는 순수하게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에게 있어 생일이란 그다지 중요한 날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이지만, 주민등록증에 또렷하게 새겨진 6자리 번호 때문에 내가 평생 기억해야 할 날이라는 것이 생일이 가진 의미의 전부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생일을 넉넉히 챙길 만한 집안 형편이 아니었고, 학교에서는 1년 빠르게 입학했다는 것으로 친구들에게 진득이 놀림을 받아야 했으며, 겨울방학 기간에 포함되어 그런 친구들조차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또, 민족 고유의 명절 설과 가까운 날인 탓에 명절 동안 자연스레 잊혀지거나, 명절이 끝나고 전화로 간단하게 축하를 받기 일쑤였다. 

카카오톡에서 내 생일을 챙겨주기 전까지는 내 생일이 언제였는지 아는 이도 몇 없었을 것이다. 그마저도 마음에 없는 축하를 강요하는 게 아닌가 싶어 생일 알림을 꺼야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오히려 나보다는 엄마에게 더 뜻깊은 날이 아닐까. 태어나는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니까. 아무런 생각도 인지도 할 수 없는 작은 핏덩이를 바라보며 극한의 고통 속에서 무한한 환희를 느낀 것은 내가 아닌 엄마였으니까. 



내 생일은 곧 엄마의 생일이기도 하다. 한 아이의 엄마라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던 그 순간. 그 순간을 기리기 위해, 나는 매 번 돌아오는 생일마다 잊지 않고 엄마와 긴 시간 통화를 하며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 오글거리지만, 낳아주셔서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나는 사주팔자에 꽤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1년에 2번 정도는 사주를 본다. 사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을 기약하고, 사주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태어난 생년월일은 물론이고 태어난 시간을 알고 있어야 한다.

대학생 때 처음으로 사주를 보기 위해, 내가 태어나던 그 순간에 대한 엄마의 기억을 들춰보기로 했다. 상기된 목소리로 그 기억을 자세하게 되짚는 엄마의 문장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 아들 덕에 엄마가 고생을 안 했지. 밤에 고생 안 시키고 낮에 얌전히 나왔잖아. 엄마는 아직도 그 시간도 정확히 기억해. 태어난 날짜랑 똑같은 시간에 나왔어. 오후 2시 XX분.”



사주를 보면 이따금씩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고생을 많이 했을 거라고, 엄마한테 잘 해 드려야 한다고 하던데. 태어난 때 이후로, 나이를 먹을수록 말도 안 듣고 속만 썩이는 나쁜 아들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보다, 심지어 나보다도 내 걱정을 많이 하실 텐데.



사주 얘기를 꺼낸 김에, 2월은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30살 앞 30날>처럼, 일반적으로는 양력 1월 1일을 새해의 첫날이자 모든 것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해마다 조금씩은 달라지지만, 음력에서는 2월의 어느 날이 새해의 첫날이 되기도 한다. 

운이 맞으면 내 생일이 그 날이 될 수도 있는데, 2021년은 아쉽지만 아니게 되었다.



매 년 1월 1일에는 모두의 마음속에서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힘차게 울린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바로 뛰쳐나가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지금 이렇게 30일 동안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는 것처럼, 1월 1일이 되면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숨을 고르는 시간도 필요해진다. 억지로 급하게 뛰어 나갔다가는 이내 호흡이 달려서 멈춰 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처럼 2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1월에 여유롭게 숨을 고르고, 각자의 생일이 다가올 때 천천히 몸을 일으켜, n번째 삶이 새로이 태어난 것을 자축하면서 힘차게 새해의 첫 발걸음을 내디뎌보는 것은 어떨까. 



이 얼마나 완벽하고 멋진 핑계인가.




글쓴이   두루 Do, rough

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1인 기획-편집-디자인 독립 잡지 「매거진 손」을 제작하고,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루는 1인 출판사 [스튜디오 두루]를 운영 중입니다.

글쓰기를 통해 나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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