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끝자락이 윤슬처럼 퍼지는 오후,
문득 구월이가 떠오른다.
구월이는 시골 이웃 할머니댁 개 이름이다.
바람 불던 어느 날,
타지에 살던 아들이 개 한 마리를 안고 돌아왔다.
9월에 찾아온 그 개를 할머니는 구월이라고 불렀다.
가을 누런 들녘을 닮은 털과 흔들림 없는 눈빛이었다.
병약한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할머니의 깊은 슬픔과 그리움은 구월이와 함께 했다.
할머니는 구월이를 아들처럼 정성스레 돌보았다.
밥을 같이 먹고 나들이와 밭일도 함께 했다. 잠도 꼭 옆에서 잤다.
구월이는 아들이 떠난 날부터 그림자처럼 할머니를 따라다녔다.
그늘이 진 듯한 눈과 차분한 걸음으로 할머니의 곁을 지켰다.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나서면 앞장서서 길을 열었고, 어느 때든 할머니와 걸음을 맞췄다.
할머니가 아프면 냉큼 이웃집으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알리곤 했다.
“어지간한 사람보다 낫네. 참 기특해."
구월이는 낯선 이가 마당에 들어서면 큰소리로 짖었지만,
낯익은 마을 사람이나 아이들을 보면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늘 할머니의 발치에서 할머니와 함께 오랜 풍경처럼 시간을 보냈다.
시나브로 낙엽이 쌓이던 가을밤, 할머니는 긴 잠에 들었다.
이웃집에 먼저 달려온 것은 구월이의 구슬픈 울음소리였다.
장례를 마치고도 구월이는 한동안 집을 떠나지 않았다.
빈 방을 들여다보고, 장독대 옆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뒤뜰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할머니의 흔적을 그리워했다.
마을사람들이 번갈아 구월이에게 음식을 주었지만 잘 먹지 않았다.
구월이는 점점 야위어갔다.
"겨울이 오면 추워서 어쩌지."
"구월이를 누가 데려가야 하지 않나."
"에구, 딱하지. 두 주인을 다 잃고..."
구월이는 서글픈 눈빛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했다.
겨울 삭풍이 불기 전, 구월이는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뒤 누구도 구월이를 본 사람이 없었다.
“구월이는 주인을 따라갔을 거야."
시골 마을의 전설처럼 구월이는 그렇게 떠났다.
구월이의 충직함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구월이는 할머니와 아들을 잇는 다리였다.
시골에 가면, 이미 잡초 속에 묻혀 있는 그 집터를 서성인다.
구월이가 그 어디 즈음,
먼산바라기로 앉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