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쉴 자격은 있다
고명 얹은 잡채처럼,
창틀에 내려앉는 햇살이 반갑다.
얼마만의 밝음인가.
추석 연휴 며칠 우중충한 날씨와 비가 이어졌다.
창가에 앉아 차 한잔을 햇살과 함께 마신다.
문득 지나간 추석의 기억이 아슴아슴 떠오른다.
오래전 어느 추석,
배때벗은 먼 친척이 한 사람의 마음을 긁은 적이 있었다.
"넌 쉴 자격이 없어!"
내게는 아니었지만 듣기 민망한 말이었다.
말을 들은 이는 굳은 표정으로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취업 전이고, 미혼이고, 아직 여린 나이였다.
한창 젊었던 나는 말한 사람을 흘기죽죽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시는 분은 그런 말할 자격이 있으신지요."
경우 없는 사람에게 나도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곧바로 자리 떠난 이를 찾아가 조용히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다음부터 그는 명절에 시골에 내려오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그가 성실히 일해서 크게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추석의 안 좋은, 조각난 기억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일수록,
특히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말조심을 해야 한다.
"넌 OO 자격이 없어!"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자격의 유무를 따지고 증명하며 살아간다.
일을 잘해야 쉴 자격이 있고,
사랑을 베풀어야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참아내야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자격’이라는 단어 속에는 메마름이 있다.
자격을 인정받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쉬지도 못하고 힘든 시간을 보낸다.
삶의 따뜻한 온도가 시나브로 식어간다.
햇살은 자격을 묻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비추고, 감싸고, 머물다 간다.
바람도, 새소리도, 꽃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자연은 마음을 열고 베푼다.
‘쉴 자격’이란 말은 누가 내려야 할 판단이 아니다.
살아 있는 나를 위해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자격을 지닌 사람들이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눈치 보거나 조바심 내지 말고, 깊은숨 쉬며 스스로를 다독일 자격이 있다.
세상은 자격을 따지지만
하늘은 구름 품듯, 달과 별을 품듯, 우리를 다독인다.
그 넓은 품 안에서 우리는 쉬고 싶을 때 쉬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