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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21

San Juan de Ortega→Burgos

by 안녕
Day 19.
Sunday, June 14


6시에 일어났으나 짐 싸기에서 시간이 지체되었다. 맑은 날엔 자기 전에 빨래를 걷어서 짐 싸기까지 끝내고 잠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밤새 말리느라 아침에 짐을 싸야 했다. 옆 침대의 네덜란드 이쁜이는 아침에도 씻지 않는다. 아침, 저녁으로 샤워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그녀는 침낭과 책 정도로만 가지고 다녀서 짐 꾸리기가 간단한데 수건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세수는 하고 가겠지 싶었는데 슬리퍼 없이 양말 신은 채로 젖은 화장실 바닥을 누빈다. 그녀의 정체에 의문을 품으며 7시쯤 출발했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 부르고스까지 가는 길은 세 가지 루트가 있다.

첫 번째 여정은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 출발하는 가장 왼쪽 루트로, 로그로뇨와 부르고스를 연결하는 N-120 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살두엔도(Zalduendo)와 이베아스 데 후아로스(Ibeas de Juarros)를 통과한다.

두 번째 여정은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걸었으며 아헤스(Agés), 아따뿌에르까(Atapuerca), 비야프리아(Villafría)를 거친다.

세 번째 여정은 여정의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까미노로, 발리오스 데 꼴리나(Barrios de Collina)를 거쳐 N-1 고속도로와 나란히 걷게 되는 루트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루트는 고속도로와 나란히 걸어가기 때문에 편하기는 하나 고속도로를 지나는 대형트럭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공장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다소 살풍경하고 지루하며 좋은 알베르게를 찾기 어렵다. 이럴 경우,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는 두 번째 루트를 선택하여,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부터 아헤스와 아따뿌에르까를 통과하는 것을 권한다.




산 후안 데 오르떼가에서 출발하기 위해서는 산또베니아 데 오까(Santovenia de Oca)로 향하는 길을 따라 커다란 십자가가 있는 첫 번째 교차로까지 이동하면 된다. 순례자는 여기에서 앞서 말한 루트 중 어떤 길을 걸을지 선택해야 한다.

첫 번째 루트를 선택하면 산또베이아로 가는 아스팔트 길을 통해서 왼쪽으로 향해야 하며 살두엔도에서부터 부르고스까지 N-120 고속도로와 나란히 걸으면 된다.

아따뿌에르까를 통과하는 전통적인 까미노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과거 마드리드에서 출발했던 오래된 철도 구간을 통과하여 직진하는 기분 좋은 비포장도로 길을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발로스 데 꼴리나로 향하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루트를 많이 우회하여야 하며 현재까지 마드리드에서 출발하여 부르고스를 통과하여 운행 중인 철도 구간을 건너 N-1을 따라 걸어야 한다.

아헤스로 가기 위해서는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흙으로 만든 담을 가로질러 떡갈나무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철길이 나오고 길이 세 개로 나뉘어지나 바로 이어지므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윽고 커다란 두 개의 떡갈나무와 나무로 만들어진 십자가가 있는 언덕이 나오는데 언덕의 왼쪽으로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비르헨 델 레보로(Virgen del Rebollo)의 성당이 보이며 앞쪽으로는 앞으로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황무지가 보인다.

나무로 만들어진 농장문을 지나고 오래된 철길을 건너면 여정의 첫 번째 마을인 아헤스가 나온다. 나바라의 왕이었던 가르시아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아헤스는 소박하고 깔끔한 2개의 알베르게가 순례자를 맞아준다.




오래된 마을 Agés (968M)는 중세 시대 기독교 왕국의 패권을 뒤흔든 중요한 배경이다. 또한 전원 속의 마을이라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까미노를 순례하며 사진을 찍은 순례자라면 이 그림 같은 풍경의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Mojon Fin de Rey
죽은 왕의 경계석은 아헤스와 아따뿌에르까 사이에 펼쳐진 평원에 2m 높이의 거석을 말한다. 이 평원은 중세 나바라의 왕 돈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의 군대와 그의 형제 까스띠야의 왕 페르난도 데 까스띠야의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이 전투로 가르시아 왕이 사망하고 나바라의 군대는 패배하게 되어 결국 이베리아 반도에서 나바라 왕국의 왕위 다툼이 끝나버렸다. 이 거석은 죽은 왕의 경계석이라고 불리며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1054년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 여기서 죽다.” 전설에 따르면 전투에서 살아남은 왕의 부하들이 죽은 왕의 내장을 아헤스 성당의 입구 반석 밑에 묻었다고 한다. 아직도 아헤스 주민들은 아따뿌에르까 사람들을 Castellanos, 까스띠야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아따뿌에르까에서는 아헤스 사람들을 Navarros, 나바라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매년 8월 23일에는 나바라와 까스띠야 왕국의 전투와 가르시아 왕의 죽음을 기리며 중세식 저녁식사를 하는 전통이 남아있다.

Puente Canto
까미노의 성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가 지었다고 알려진 깐또 다리는 마을을 나가는 길의 왼쪽에 세워져 있다.

Iglesia de Santa Eulallia de Merida
16세기에 만들어진 산따 에우라리아 데 메리다 성당에는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현관이 돋보이며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의 유해가 성당의 반석 밑에 매장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전원 속에 잠들어있는 아헤스와 아따뿌에르까에 이르는 길은 까미노의 성인 산 후안 데 오르떼가의 노력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의 출구는 왼쪽으로 버드나무 숲길을 끼고 이어진다.

아따뿌에르까에 이르는 길은 넓은 평원으로 이어져있으며 중간에는 나바라 왕국과 까스띠야 왕국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를 기리는 ‘죽은 왕의 경계석’을 볼 수 있다.

이제 순례자는 유럽 대륙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인류의 고향 아따뿌에르까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는 최초의 인류인 ‘안테세소르’의 유적으로 가는 샛길이 있다. 마을에서 약 3km 정도 떨어져있는 이 유적의 발견은 유사이전 인류의 동굴생활과 매장관습 등 고고학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Atapuerca (954M)의 집들이 모여 있는 중심 구역에는 산 마르띤 성당이 있다. 아따뿌에르까는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큰 곳이다. 이곳은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인류의 고향이고 중세에 결정적인 전투가 치러졌던 곳이다. 약 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백만 년 전의 인류 ‘호모 안테세소르’의 유적지는 인류의 진화이론에 대한 혁명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호모 안테세소르는 네안데르탈인 이전의 인류로 유럽의 인류 중 가장 오래된 이들이라고 한다. 아따뿌에르까에 머문다면 어린 양고기로 만든 구운 고기 요리를 즐겨 볼만하다. 매년 8월에는 페르난도 데 가스띠야가 그의 형제 나바라의 왕 가르시아 엘 데 나헤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주민들이 전투 장면을 재현하는 축제를 연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Martín
산 마르띤 교구 성당은 15세기와 16세기의 르네상스와 후기 고딕 양식이 혼합된 성당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들러서 구경했을 텐데 나에겐 여유가 없었다. 잘 걸을 수 있을까로 시작되었던 불안은 어느 순간, 시간 내에 잘 도착할 수 있을까로 바뀌었고 오늘은 원하는 숙소에서 잘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걷는 걸음마다 항상 조급함이 묻어나고 있어서 여유가 사라진 지 오래된 것 같았다.

아따뿌에르까에서는 올모스 데 아따뿌에르까를 거쳐서 비얄발로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가는 길에 아헤스에서 자고 늦게 출발했다는 제인을 만났다.

마을에는 작은 알베르게가 있는데 만약 아따뿌에르까에서 숙박할 장소를 찾지 못했다면 마을의 출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와 Olmos de Atapuerca에서 머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올모스 데 아따뿌에르까에서도 다음 마을인 비얄발과 까르데뉴엘라 리오 삐꼬로 이어진다.

올모스 데 아따뿌에르까에서 머물지 않는다면 마을 출구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오르막을 오르면 숲길로 이어지는데 철조망과 평행하게 이어진 떡갈나무 숲길을 따라 한 시간쯤 완만한 언덕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활한 평원이 내려다보인다.

부르고스 성당의 높다란 탑이 까스떼나야의 초원과 지평선 사이로 보이며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높다란 십자가상을 지나면 어느새 내리막의 끝에 비얄발에 도착한다. 특별한 전설이나 순례자를 위한 서비스가 없는 조그만 마을 비얄발과 다음 마을인 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는 거의 붙어있다.

정상에서는 잡힐 듯한 거리였는데 거의 한 시간이 지나서야 까르데뉴에라 리오삐꼬의 폐버스가 나왔다. 버려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움직일 것 같지 않은 버스에 예쁘게 색을 칠해서 알베르게 광고판으로 쓰고 있었는데 한가운데에 우리나라 태극기가 그려져 있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오래된 Cardeñuela Riopico (924M)의 이름은 산 뻬드로 까르데냐 수도원에서 유래가 되었다.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 마을은 까르데냐 수도원의 영지였고 그 이후엔 꼬바루비아스 수도원의 영지에 속해 있었다. 매년 12월 10일에는 마을의 수호성인인 산따 에우라리아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Iglesia de Santa Eulalia de Merida
마을의 수호성인인 산따 에우라리아를 위해 만들어진 이 성당에는 아름다운 피에타와 비가르니 봉헌화가 있는 르네상스 양식 현관이 돋보인다. 큰 종이 걸린 성당의 종탑은 넓은 하늘에 솟아 있어서 성당이 마을의 중심임을 알려준다.




또다시 한 시간을 걸어 오르바네하 리오삐꼬에 도착했는데 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까르데뉴엘라 리오삐꼬와 오르바네하 리오삐꼬는 조그만 바르 이외에는 특별히 순례자를 위한 시설이 없지만 포장된 길이라 걷기는 편했다.




Orbaneja Riopico (909M)는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길이 지나는 삐꼬 강변에 위치한 조용한 마을이다. 부르고스 주의 수도인 부르고스에 가기 전에 조용한 거리와 강변에서 잠시 쉴 수 있다.

Ermita de La Inmaculada
원죄 없는 잉태 소성당은 중세풍의 근사한 탑이 있는 작은 석조 건축이다.

Iglesia Parroquial de San Millan Abad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산 미얀 수도원장 교구 성당의 내부에는 소박한 성 로께의 조각상과 마을을 지나는 신실한 순례자들이 바치는 봉헌물들을 볼 수 있다.




까미노는 포장된 자동차 길로 부르고스까지 이어진다. 오르바네하 리오 삐꼬의 출구에서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이곳에서 다시 어느 쪽으로 부르고스로 들어갈지 결정해야 한다.

다리를 건너서 정면으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은 까스따냐레스(Castañares)를 통과하는 길이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향한다면 처음 산 후안 오르떼가에서 부르고스까지 가는 루트 중 세 번째인 N-1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지나는 비야프리아를 지나는 까미노와 만나게 된다.

까스따냐레스를 지나 부르고스로 향하는 길을 선택한 순례자의 앞에는 아름다운 아르란손 강을 건너 나무로 우거진 산책길을 통해 부르고스 역사 속으로 들어 갈 수 있다.

까스따냐레스로 가는 길도 두 가지가 있는데 오른쪽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면 부르고스 공항의 철책을 따라가야 하며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농로를 따라 잠깐이라도 조용한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길은 까미노 싸인이 별로 없어 불안한 편이다.

비야프리야로 향하는 까미노는 약 10km에 걸쳐 공장지대의 어수선함과 N-120 고속도로가 주는 소음이 기다리고 있다. 원래의 루트 보다는 약 1km가 더 짧지만 까미노가 주는 기쁨을 누리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대도시 부르고스의 입구에 도착한 순례자가 적당한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반대편까지 중심부를 통과하여야 하며 거리는 약 4km가 넘는다. 부르고스는 까미노를 위한 도시라고는 할 수 없으나 중세부터 여러 가지 산업이 발전했던 도시로 순례자를 위한 모든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다.

12시쯤 비야 프리야를 지나는데 차가 달리는 도로를 걷다 보니 누가 태워준다면 얻어 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살표를 따라 잘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차도를 걷다 보니 교차로 부근에선 어디서 어떻게 걸어야 하고 어디로 건너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 걸은 걸까? 어디서 화살표를 놓친 거지? 대도시에 들어오면 광고판에 가려져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고 싶으나 이 길에 사람은 없고 쌩쌩 달리는 차들 뿐이다.

대도시 부르고스의 입구에 도착한 순례자가 적당한 알베르게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반대편까지 중심부를 통과하여야 하며 거리는 4km가 넘는다. 부르고스는 까미노를 위한 도시라고는 할 수 없으나 중세부터 여러 가지 산업이 발전했던 도시로 순례자를 위한 모든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다.

884년 디에고 로드리게스 뽀르셀로스에 의해 처음 아르란손 강변의 언덕에 만들어진 마을은 1035년 까스띠야 왕국의 건설과 1075년 주교 교구의 이동으로 점점 커다란 도시로 모습을 바꾸어왔다. 부르고스를 대표하는 산따 마리아 대성당과 같은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과 오래된 거리는 순례자들에게 중세의 장엄함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또한 충분히 편안하고 깨끗한 알베르게는 도시의 출구에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




중세부터 Burgos (863M)는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룩했다. 또한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 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이기도 하다. 적들로부터 방어가 용이한 전략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고 과거 까스띠야 왕국의 수도로 까미노 데 산띠아고가 지나가는 주요 지점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닷길과 까미노의 만남은 부르고스의 유물들을 널리 퍼지게 만들었고 양모 산업의 독점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주교가 상주하는 도시이자 박력 넘치고 아름다운 도시 그것이 바로 부르고스다.

부르고스의 구 시가지에서는 흥미로운 유적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가장 잘 알려진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꼭 들려 볼만한 곳이다.

산 후안 단지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산 후안 문, 15세기 건축물인 산 후안 수도원, 부르고스의 수호성인이 산 레스메스의 무덤이 있는 산 레스메스 성당 그리고 15세기에 만들어진 산 후안 병원이 모여 있는 구역이다.

순례자 사이에서 많이 알려져 있는 산 후안 단지의 문은 오래된 성벽을 따라서 줄지어 있다. 16세기에 까를로스 5세를 기려 만들어진 산따 마리아 아치, 돌과 벽돌이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무데하르 양식의 영향이 두드러진 산 에스떼반 문, 부르고스를 떠날 때 만나게 되는 두 개의 탑인 산 마르띤의 문이 있다.

도시의 유적들을 본 다음에는 편안한 술집에 앉아서 리베라 델 두에로에서 생산되는 포도주(Vinos Ribera del Duero)와 부르고스의 유명한 Tapas, 신선한 치즈와 장작에 구운 양고기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런 음식들은 부르고스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임으로 꼭 시도해 볼 것을 권한다.

Catedral de Santa María
부르고스 대성당(Catedral de Burgos)라고도 부르는 산따 마리아 대성당은 1221년 알폰소 10세와 마우리시오 주교의 후원으로 짓기 시작한 건축물로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빼어난 고딕 양식 건축물이다. 세비야, 똘레도에 이어서 스페인에서 3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며 스페인 고딕 양식 건축물 중 가장 빼어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대성당은 2차에 걸쳐서 완성되었는데 첫 번째는 1221년 페르난도 3세의 명으로 프랑스의 건축가 앙리에 의해 신랑과 아름다운 현관이 만들어졌다. 두 번째는 15세기에 독일인 건축가인 후안 데 콜로니아에 의해 건축된 첨탑과 꼰데스따블레 소성당이다. 산따 마리아 대성당은 세 개의 신랑과 아름다운 꼰데스따블레 소성당이 있으며 특히 성당 지붕의 돔은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밖에 13세기에 만들어진 탑과 15세기의 첨탑이 있으며 여러 세대의 파사드와 현관 등이 손꼽힌다. 특히 환상적인 Escalera Dorada (금계단)는 꼬로네리아 문으로 이어지고 성당의 내부에는 무수한 조각상과 부조, 회화가 소장되어 있으며 신비로운 산또 끄리스또 데 부르고스 조각상도 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커다란 신랑 앞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103개의 성직자 의자가 있고 앞에 수랑과 교차하는 문이 있는데 그 아래에 엘 시드와 그의 아내 히메나의 묘표가 있다. 제단의 후면으로는 여러 개의 소성당들이 있으며 그 안에는 수많은 조각품들이 숨어 있다. 특히 꼰데스따블레 소성당의 천정에는 환상적인 채광창과 스테인드글라스가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또한 이 소성당의 오른쪽 성물실안에는 레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으로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의 상이 보관되어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강을 건너 아름다운 산따 마리아 아치를 통과하면 산 페르난도 광장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때 한눈에 가득 대성당이 들어온다. 광장 앞 나체로 벤치에 앉아있는 순례자의 조각상에서 기막힌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어 보거나 대성당을 관람하기 전에 한눈에 대성당을 관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Arco de Santa María
산따 마리아 아치는 황제 까를로스 5세를 기리며 16세기에 건설되었다. 성벽을 통해 부르고스로 들어가는 여러 개의 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입구로 현재는 부르고스 주의 수도인 이 도시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이다. 1943년 스페인의 문화 자산으로 지정되었다.

Iglesia de San Lesmes
산 레스메스 성당은 15세기에 만들어진 건물로 15세기의 봉헌화와 16세기의 무덤, 회화 등이 있으며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레스메스 성인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

Iglesia de Santa María la Real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성당은 14세기에 만들어진 성당으로 가모날에 위치해 있다. 원래의 고딕 양식 대문 앞에 15세기의 풍의 십자가를 든 야고보 성인 상이 있다.

Monasterio Santa María Real Huelgas
산따 마리아 레알 우엘가스 수도원은 까스띠야의 알폰소 8세와 레오노르 왕비가 12세기 후반에 지은 건물이다. 여러 가지 우아한 회랑과 부조, 조각 등이 있고 중정에서는 꾸르삐요스 축제가 열리며 태피스트리 박물관도 있다. 수도원 건물로 사용되었으나 수많은 왕과 여왕, 왕실 가족들이 묻힌 왕실 판테온이 되었다. 내부에는 도냐 레오노르를 비롯한 많은 왕가의 무덤이 있다.

Iglesia de San Gil
13세기에 시작하여 14세기에 완공된 산 힐 성당에는 15~16세기의 흥미로운 봉헌물과 부유한 부르고스 상인이 가져왔다는 커다란 십자가상이 있는 소성당이 있다.

Iglesia San Esteban
13세기에 짓기 시작해서 14~15세기까지 변화를 거친 산 에스떼반 성당은 아름다운 장미 창과 고딕 양식 회랑이 있다.

Iglesia de San Nicolás de Bari
산 니꼴라스 데 바리 성당은 아름다운 묘지와 함께 프란시스코 데 꼴로니아의 석재 봉헌 작품이 눈에 띈다.

Ermita de San Amaro
아마로 성인은 프랑스 출신의 순례자로 델 레이 병원에서 헌신적으로 순례자들을 도왔다. 17세기 그를 기리기 위해 건축된 산 아마로 소성당에는 아마로 성인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다.

Arco de San Martín
14~15세기에 걸쳐 건설된 산 마르띤 아치는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의 일부였으며 왕족이 도시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였다. 무데하르 양식의 이 문을 통해 순례자들은 부르고스를 떠나게 된다.

Solar del Cid
18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로 엘 시드라고 불린 로드리고 디아스의 집이 있었던 곳에 만들어졌다.

Puente de Malatos
12세기에 건축된 마라또스 다리는 18세기에 재건축되었다. 중세시대에는 나병 환자를 위한 병원이 다리 옆에 있었다고 한다. 산띠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은 이 다리를 지나 아를란손 강을 따라간다.

Casa del Cordon
프란시스코 회의 Cordon (허리띠)이 이 저택의 현관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까사 델 꼬르돈이라고 불린다. 15세기의 건물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이 저택에서 가톨릭 왕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아메리카 대륙 탐험을 다녀온 콜럼버스를 맞이했다. 또한 1515년엔 나바라와 까스띠야의 통합을 이룬 의회가 열렸던 곳이다. 이 건물은 부르고스에서 가장 훌륭한 도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성당의 십자가 상
부르고스 대성당에 있는 십자가상은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경배받는 성상이다. 중세의 한 부유한 상인이 플랑드로 여행을 떠나며 아구스띠노스회 수도자들에게 자신이 여행을 잘 다녀올 수 있도록 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하며 보답으로 돌아오는 길에 좋은 선물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상인은 배를 타고 귀국하면서 약속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판 위에 서 있던 상인의 눈에 바다 위를 떠다니는 큰 궤가 보였다. 상인이 궤를 건져냈더니 그 안에는 사람 크기의 십자가상이 들어있었고 상인이 십자가가 담긴 궤를 싣고 부르고스로 돌아오자 도시의 모든 종이 저절로 울리기 시작했다. 죽은 이를 18명이나 살려냈다고 전해질 정도로 이 십자가상은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는데, 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상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 그리스도상은 사지와 머리를 구부리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졌다.

엘 시드의 궤
부르고스 대성당 회랑에는 엘 시드의 노래에 등장하는 궤가 보존되어 있다. 엘 시드는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유대인 디마스와 라켈에게 돈을 빌렸다. 그는 담보로 두 유대인에게 이 궤를 잡히면서, 그 궤에는 보물이 들어있지만 일 년 안에 궤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 후 엘 시드는 돌아와서 빚을 모두 갚았고 유대인들 앞에서 궤를 열었는데, 그 안에는 보물이 아니라 돌이 가득 차 있었다. 엘 시드는 자신이 말한 보물이란 황금보다 더 값나가는 자신의 말과 약속이라고 말했다.

엘 빠빠모스까스
부르고스 대성당에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릴 때, 거대한 입을 벌리는 인형이 있다. 옛날, 엔리께 3세가 대성당에 기도하러 왔다가 아름다운 처녀에게 반했고, 며칠간 그녀의 집 앞까지 따라다닌 왕은 용기를 내어 처녀에게 손수건을 주었다. 손수건을 받은 처녀는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주며 집으로 들어가서 슬프게 울었다. 그 후로 왕은 처녀를 볼 수 없었다. 상심한 왕이 신하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신하들이 그 집은 벌써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라고 말하였다. 슬픔에 빠진 왕은 그 처녀를 빼닮고, 흐느낌까지 내는 조각상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왕의 조각가는 솜씨가 좋지 않았다. 조각가는 처녀를 빼닮은 조각은커녕 장난기 있어 보이는 거대한 입에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는 늙은 남자 인형밖에 만들지 못했다. 이 비명 소리 때문에 도시의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고, 결국 부르고스의 한 주교가 영영 이 인형이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14시쯤 부르고스에 들어섰지만 30분을 더 걸어서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518번. 규모가 엄청난데 뭔가 세련되고 깨끗함이 독보적이다. 일단 씻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파스타 재료를 들고 주방으로 내려오니 앗, 취사 불가한 주방이다. 전자레인지와 싱크대만 있는 식당이라고 해야 하나? 시설은 좋은데 이게 뭐람. 오늘 먹은 건 사과 한 개가 전부였다. 이틀째 파스타 해먹을 생각으로 왔는데 오늘도 먹지 못하게 생겼다. 파스타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소스병을 치우고 싶었던 거였고 오늘은 먹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실망이었다. 사과를 먹고 장을 보러 가려고 했더니 일요일이라 문 닫았단다. 지난주 일요일엔 문 열었잖아! 여긴 대도시인데, 아니 대도시라 그런가?

빨래를 해놓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바게트를 사러 나갔다. 그런데 그나마 열려있던 띠엔다도 그새 문을 다 닫아버렸다. 올 때와는 달리 마을이 사뭇 조용해졌다. 빵집 찾아 거리를 헤매느라 덕분에 거리 구경을 했고 그렇게 걸은 거리가 꽤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힘들었다. 차라리 그냥 굶자. 포기하고 돌아오다 문을 연 요거트 가게가 보였다. 당이라도 채우자 싶어 들어갔는데 냉동 피자가 있었다. 주방에 전자레인지가 있었던 것 같아 가격을 물어보려고 계산대로 갔더니 거기에 그렇게 찾아 헤매던 바게트가 있었다. 0.65€ 당장 사서 뜯어먹었다. 오늘 만든 빵은 항상 맛도 좋았다. 겉은 바삭, 속은 쫄깃. 비상용으로 바게트 하나는 구비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가 지나면 딱딱해지는 바게트는 힘들다. 돌아오자마자 스위트 콘, 버터 바른 바게트 그리고 맥주로 배를 채웠다.

부르고스 대성당에서 미사가 있다는데 성당은 어디쯤일까 하며 알베르게를 나서는데 우측으로 바로 보였다. 골목에서도 일부가 보일 정도로 커다란 성당이 낮에는 왜 안보였을까?

까미노는 항상 성당으로 통했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성당 종탑만 잘 찾아가면 길을 잃을 일은 없었다. 대도시에서 까미노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성당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오늘도 굳이 알베르게를 찾아오지 않아도 되었다. 낮에는 익숙하다는 이유 때문에 왔던 길로만 다녀서 잘 몰랐는데 성당 광장 쪽에는 상점들도 즐비했다.

성당 입구를 못 찾아서 한참 동안 헤매느라 봉헌 직전에야 입장했다. 뜻하지 않게 매주 미사 참석을 하고 있다. 미사가 끝나자 신부님이 손을 내밀며 안녕을 빌어주신다. 모두가 떠났지만 웅장한 부르고스 성당 내부를 구경하느라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일요일에 와서 비록 얻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대신 성당 내부 구경을 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성당을 나서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들어올 때 왼쪽으로 한 바퀴를 돌고서도 한참을 걸었던 기억에, 돌아갈 때는 반대로 달리면 알베르게까지 가까울 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성당의 크기에 다시 한번 놀랐다. 성당 건물 하나 달랑 있는 그런 규모가 아니었던 거다. 덕분에 한참 동안 비를 맞았고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돌아왔지만 그래도 마냥 기분은 좋았다.




San Juan de Ortega→Burgos 26.7km

○San Juan de Ortega (1,005M)
●Agés (968M) 3.7km
-Mojon Fin de Rey
-Puente Canto
-Iglesia de Santa Eulallia de Merida
●Atapuerca (954M) 2.6km
-Iglesia Parroquial de San Martín
■Olmos de Atapuerca (952M) 2.5km
●Villalval (945M) 4.4km
●Cardeñuela Riopico (924M) 1.6km
-Iglesia de Santa Eulalia de Merida
●Orbaneja Riopico (909M) 2.0km
-Ermita de La Inmaculada
-Iglesia Parroquial de San Millan Abad
●Villafria (891M) 3.5km
■Castañares (891M) 4.7km
●Burgos (863M) 8.1km/구7.7km
-Catedral de Santa María
-Arco de Santa María
-Iglesia de San Lesmes
-Iglesia de Santa María la Real
-Monasterio Santa María Real Huelgas
-Iglesia de San Gil
-Iglesia San Esteban
-Iglesia de San Nicolás de Bari
-Ermita de San Amaro
-Arco de San Martín
-Solar del Cid
-Puente de Malatos
-Casa del Cordon

489.0km/775.0km




Albergue Casa de Peregrino Emaus -5.00€
Baguette -0.65€
Burgos Misa -1.00€




사과
커피, 건자두, 바게트, 버터, 스위트 콘, 맥주


Comedor
Microondas
Supermerc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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