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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3

Incheon, Korea→Amsterdam, Nederland

by 안녕
Day 1.
Wednesday, May 27


거의 일 년 전부터 차근히 준비를 했고 출발하기 7개월 전인, 2014년 10월에 항공권을 구입했다.

사실 이 때는 전세 만기를 두 달 앞둔 시점이었지만 집주인의 연락이 없어서 그냥 연장되는 줄 알고 그냥 여행을 준비했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라 이사 갈 마음이 전혀 없었기도 했으니 조용히 연장되길 바라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비행기 티켓을 구입한 지 며칠 후, 이사 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만기를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 집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어서 조건을 수용할 생각이었지만 월세로 전환한다니 집을 비워주어야 했다. 두 달 안에 이사 가기는 힘들거라 여유 기간을 좀 더 줄 수 있냐고 하니, 두 달 하고도 6일 전이면 석 달 전인데 자기가 왜 그래야 하냐며 무조건 계약서대로 하겠단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해, 마음에 드는 아파트 전세는 거의 일 년 전부터 찾아봐야 했기에 두 달이란 시간은 당연히 촉박했다. 그때부터 마음의 여유는 사라졌고, 여행 준비는 중단되었다. 만약 비행기 티켓을 끊기 전이었다면 당연히 그 여행을 포기했을 상황이었다.




졸업했을 때가 IMF 시기였는데 취업이 힘들어지자 집안의 눈치를 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취업을 위해, 아니 살기 위해 혼자 서울로 왔다. 24년 동안 집을 떠나본 적 없던 내가 그렇게 독립을 했지만 불안했던 부모님은 내가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 어떠한 지원도 해 주지 않으셨다.

용돈이 없었던 집에서 내가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친척에게 받았던 세뱃돈과 가족 외식에 빠지는 조건으로 받았던 푼돈을 악착같이 모으는 것뿐이었고 거기다 대학 가서 받은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모아서 만든 오백만 원이 전부였다.

혼자서 구한 첫 집은 보일러가 고장 난 보증금 오백만 원짜리 지하방이었다. 휴일이라 적금을 찾지 못해 일단 가계약금 30만 원을 걸어놓고 먼저 입주하기로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확인하러 오셔서 여기선 절대 지낼 수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셨고 난 가계약금이 아까워 난생처음으로 고집을 부렸다.

결국 어머니는 가계약금을 대신 갚아주겠다며 나를 그 집에서 데리고 나왔고 건너 건너 아는 집에 나를 며칠간 임시로 맡기셨다. 눈치를 줘서 스스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라는 당부를 하셨지만 그래도 난 버텼고 2주가 지나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않자 결국 하숙방 한 달치를 끊어 주셨다. 한 달 안에 취업을 못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조건이었지만, 집에서 받아 본 유일한 지원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어머니가 주기로 약속한 가계약금은 끝내 돌려받지 못했으니 그 돈으로 구한 셈인지도 모른다.

난 취업에 성공했고 서울에 남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내가 돌아오길 바라던 부모님은 어떠한 지원도 해 주지 않으셨다. 장남인 오빠가 서울로 독립했을 때는 직접 발품 팔아 방을 구해주셨고 전세 보증금도 마련해 주셨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하숙에 이어 고시원, 월세 단칸방, 반지하 전세, 원룸 전세, 오피스텔을 거쳐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월급의 90%는 모두 저축을 해야 했다. 전세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나에게 여행이란 것은 평생 한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계약금 30만 원을 날렸을 때 서울에서 적어도 30만 원은 꼭 벌고 내려가겠다던 그 결심이 지금에 이르렀고 현재는 남향에 시야가 뻥 뚫려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던 108동에서 6년째 살고 있지만 2년마다 이사를 해야 했다. 첫 번째 살았던 8층은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해서 이사를 했고 두 번째 살았던 17층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습기로 인해 이사를 해야 했지만 현재 살고 있는 15층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앞으로도 계속 살고 싶었던 터였다. 아파트 내에서 전세를 찾기도 힘든데 같은 동에서 전세를 찾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지만 같은 동이 아니라면 이 아파트에서 살 이유가 없었기에 다른 지역까지 찾아 헤매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끝내 적당한 집을 찾지 못했다.

한 달쯤 지나자 전세의 설움이 다시 북받쳤다. 집을 소유하고 싶진 않았지만 평생 한이었던 여행을 자주 다니려면 내 집이 있어야 할 것 같아 결국 어쩔 수없이 작은 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어차피 이사를 해야 한다면 며칠이라도 서두르고 싶어서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더니 어떻게 빨리 구했냐고 난리다. 사실 2년 후쯤 월세로 돌리려고 했는데 모자라는 금액은 부동산에서 알아서 할 테니 이번에 전환하라고 부추기더란다. 전세 구하기 힘들 테니 그동안 월세로 들어올 세입자를 찾아놓겠다고 했다는데 한 달 만에 이사 날짜가 정해졌다니 당황했던 모양이다. 이제야 집주인이 조금 봐달라고 하길래 집주인이 했던 말 그대로 돌려주었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정 그러시면 계약서대로 가시죠.

그렇게 두 달이 지나갔고 무사히 원하는 날짜에 이사는 했지만 직접 짐을 싸고 풀어야 하는 성격 탓에 짐 정리와 하자 보수 문제 등으로 몇 달을 더 시달렸고 또한 무너진 컨디션을 되찾느라 고생했다.

여행을 취소할까 수십 번 넘게 고민했지만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냥 떠나기로 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다. 지인에게 빌린 배낭은 일찌감치 싸 두었다. 경비는 두 군데 이상 분리 보관 하라지만 성격 상 하나만 지키는 편이 좋았다. 강도를 만난다면 어차피 배낭째 다 뺏길 테니 배낭에 숨겨두는 것도 의미가 없다. 실제로 강도, 실종 사건 등이 종종 일어나고 있었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범죄 가능성은 있으므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정해진 약속 시간에는 항상 여유를 두고 움직이는 편이다. 집에서 기다리느니 공항 가서 기다리는 편이 나았기에 공항에는 항상 세 시간 전에 도착하곤 한다. 자정 넘어 출발이라 밤 열 시까지 공항에 가면 되는데 목동으로 이사한 뒤로 공항버스 대신 공항철도를 이용하고 있다. 오늘도 여덟 시쯤 여유 있게 집을 나섰고 김포공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고 공항에 가니 밤 아홉 시 반이다. 짐을 줄여야 해서 면세점 쇼핑도 패스, 출국 수속을 밟고 108번 게이트에 가니 오늘도 충분히 여유 있게 도착했다.

탑승 게이트 의자에 앉아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한 순간이다.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을 때 말이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은 와이파이도 빵빵해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단 에어컨도 빵빵해서 긴팔 옷은 필수다. 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기다리다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출발이다.




몇 년 전 독일에 출장 갔을 때 비행기에서 푹 자고 도착하니 저녁이었는데 호텔에 도착하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밤에는 멀뚱, 낮에는 자느라 끝내 시차 적응에 실패했었다. 사람이 이토록 무기력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으로 느꼈고 조금은 무서웠다. 그래서 그 이후엔 비행기에서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영화 네 편을 보고 나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밟고 환승 게이트로 가서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식으로 캔콜라와 샌드위치를 나눠주는데 대부분의 승객이 먹질 않았다. 승무원에게 하나 더 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되려 기뻐하며 흔쾌히 주셔서 감사히 받았다. 하나는 먹고 하나는 점심으로 챙겨두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Incheon, Korea→Amsterdam, Nederland

Incheon 00:55~04:55 Amsterdam (11시간)
Amsterdam 06:50~08:00 Paris (1시간 10분)




총 경비 : 3,000,000원
항공권 : 1,238,800원
여행경비 : 1,761,200원 (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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