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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ul 02. 2019

쓸모를 다한 옷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준다면

작은 나눔이 큰 기쁨으로 번지는 헌 옷 기부



버리긴 아깝고, 그렇다고 입지도 않는데 어떡하지?



옷장이 마침내 폭발했다. 욱여넣은 겨울옷은 제 몸을 감당할 공간이 없어 나무 널 위에 앉아 있다. 문이 닫힐 때마다 접힌 부분이 틈에 끼여 존재감을 드러낸다. 봄가을 옷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옷걸이에 걸었지만 키 작은 집 덕분에 허리를 접어 바닥을 쓸고 있다. 침대와 옷장 아래 수납공간은 말아 넣고 포개 넣어도 한도 초과이다. 본가에서 보낸 여름옷은 택배 상자 안에서 잠자고 있다. 자주 입는 것들마저 수납장 위에 올려놓아 온 집에 옷가지가 널브러졌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고민은 두 종류로 나뉜다. '무엇을' 버릴지와 '어떻게' 버릴지이다. 두 선택지 중 '어떻게' 버릴지를 먼저 테이블 위에 올렸다. 보통 의류를 내놓을 때 동네에 있는 헌 옷 수거함을 이용한다. 그런데 막상 버리려니 아끼던 옷들이나 얼마 입지 않은 옷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왕 쓸모를 다했다면 좋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검색창을 띄워 헌 옷 기부를 찾아보았다. 아름다운 가게처럼 유명한 곳들이 상단을 차지했다. 멀지 않은 거리에 상점이 있다. 인터넷으로 사전 신청 후 기증을 하면 되는데 조건이 조금 까다롭다. 판매가 가능해야 하니 상태가 좋아야 한다. 착용에는 문제가 없어도 얼룩이 있거나 보풀이 있으면 곤란하다. 분류를 하는데 애를 먹을 것 같아 다른 사이트도 열심히 검색했다. 그중 내가 정한 곳은 '옷캔(OTCAN)'이다. 국내외 소외계층을 위해 일하고 기준도 폭넓다.




다음엔 '무엇을' 버릴지이다. 전부 꺼내어 침대와 바닥에 눕혔다. 첫 번째, 즐겨 입지만 오래되어 약간의 변색이나 실 풀림이 있다. 이번 계절만 넘기자며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눈물을 머금고 상자에 담았다. 추억이 많아 여러 번 쓸어내렸다. 두 번째, 아직 쓸만하지만 더 이상 입기 힘들다. 청 소재를 좋아해서 청바지, 청치마, 청 멜빵이 많다. 그중 유행을 많이 타서 당분간 손이 가지 않을 스타일을 골랐다. 혹은 야금야금 먹는 나이로 이제는 부담스러운 길이의 하의와 파릇파릇한 디자인 차례이다. 출근룩으로도 무리이고 평상시에도 굳이 택하지 않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새로 샀지만 도저히 정이 가지 않는다. 제일 안타까운 경우이다. 눈에 쏙 들어와서 구매했지만 이상하게도 번번이 눈길을 피한다. 큰 맘먹고 집어넣었다.


신청서를 쓰고 방문 희망 날짜를 알리자 택배 기사님의 문자가 왔다. 아침에 꼼꼼하게 포장을 해두었다. 퇴근 후 문 앞에 둔 상자가 사라졌다. 이틀이 지나자 발송한 물품이 정상적으로 도착했다고 연락을 전해왔다. 보낸 의류는 필요한 자리로 갈 것이다. 함께 후원한 운송비도 제3세계로 발송되는 과정에서 귀하게 사용될 예정이다. 처음 옷장을 정리하려고 계획했을 때만 해도 예쁜 내 새끼들을 떠나보내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나에게 쓸모를 다한 옷들이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준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은 덜어지고 뿌듯함이 더해졌다. 며칠 전 기부한 물품이 유월에 국내·외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작은 나눔이 큰 기쁨으로 번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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