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이 프랑크 소시지처럼 부푼다. 색깔도 맛있게 익었다. 다이빙 첫날 성게에 찔린 가시가 열흘이 지나도 여전히 말썽이다. 잔지바르에 머무를 때는 매일같이 바닷물에 몸을 담그니 점차 가라앉는 기미가 보였다. 하지만 잠비아로 넘어온 뒤부터는 눈에 띄게 상태가 나빠졌다. 넷째 손가락 첫마디는 염증으로 가득 차서 손가락을 접거나 주먹을 쥐는 동작이 불가능하다. 약간의 자극만 가해도 성난 듯 붉어진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봉사활동 프로그램 담당자 케네디에게 연락을 해 함께 병원을 찾는다. 동네 가까이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의원은 우리나라 병원 풍경을 연상케 한다. 정돈된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는 진료실과 접수대를 오가며 친절하게 안내한다. 넓은 대합실에는 지루한 대기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텔레비전을 틀어 놓는다. 아픔을 잠시 잊고 케네디와 나란히 앉아 드라마의 열렬한 시청자가 된다.
간호사의 부름에 따라 서류를 꼼꼼하게 작성한다. 한 글자 쓸 때마다 마주 보는 눈동자가 따라 읽는다. 동네 의원에서는 외부인의 방문도 드문 일인데 지구 반대편에서 온 환자를 맞이하니 관심이 쏠릴 만하다. 창이 밝은 진료실에는 여러 가지 의학 서적이 꽂힌 책장과 하얀 시트가 깔린 진찰대, 소독약과 바늘, 주사기 등 의료장비가 정갈하게 정리된 테이블이 있다. 회전의자에 앉아 퉁퉁 부은 손을 내밀자 진료를 시작한다.
- 잔지바르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성게를 건드렸어요. 가시가 손에 박혔는데 빠지지 않아요.
의사의 눈빛이 흔들린다. 사방이 땅으로 둘러싸인 내륙국 잠비아에서 성게 가시에 찔린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일평생 가시 달린 해양생물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본 경험이 없을 수도 있다. 까만 점처럼 박힌 살갗과 불룩 튀어나온 살점 위를 꾹꾹 누른다.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온다. 그의 손길에 이끌려 진찰대로 자리를 옮긴다. 본격적인 제거작업을 시작한다.
의료용 솜을 파란색 소독약에 적신 뒤 손가락을 여러 번 닦는다. 주사 바늘의 뚜껑을 뽑아 점 같은 자국이 있는 부위를 푹 찌른다. 평소 병원을 방문하면 고개를 돌려 진찰 과정을 지켜보지 않는다. 주사를 맞거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과정은 피가 튀기고 살점이 뜯겨나가 시각적인 공포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같은 위치를 여러 번 찌르고 겉면을 긁어내지만 가시는 나올 기미가 없다.
- NOTHING.
의사는 주사 바늘로 상처를 다시 찌르며 이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육안으로 봐도 가시가 박혀 있는 게 보이는데 없다니. 몇 차례 더 시도해도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아 고개를 끄덕인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핑 돈다. 두 눈으로 잔혹한 광경을 지켜봤더니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이 돌았나 보다. 진찰대에 누워 숨을 고르자 의사와 간호사의 장난 섞인 농담이 귀를 간지럽힌다. 표현 그대로 너무 긴장했나 보다.
머리가 맑아지자 둘을 따라 약제실로 들어간다. 빛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든 실내에는 3m에 육박하는 높이에 벽을 빈 틈 없이 메우는 거대한 칸막이 책장이 있다. 각 칸에는 쓰임에 따라 분류된 약제들이 이름표와 함께 놓여 있다. 약의 가짓수에 걸맞게 방 전체에는 강렬한 인조 향이 풍긴다. 의사는 공중에서 손가락으로 책장을 더듬더니 왼쪽 상단을 가리킨다. 작은 철제 사다리를 이용해 약병을 꺼낸다. 간호사는 핑크색 지퍼백에 삼일 치 약을 담는다. 수기로 적은 복용 주의사항을 천천히 읊는다. 처치는 별달리 효과가 없지만 처방한 항생제는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마주칠 때마다 손의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 약봉지와 얇아지는 손가락으로 답한다.
손가락의 부기가 멎자 복통이 찾아온다. 여행 내내 물갈이 한 번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통증에 밤새 끙끙 앓는다.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새벽을 맞자 출근 준비를 하던 제시카가 숙소 엄마 이와스에게 상황을 알린다. 엎치락뒤치락 몸을 뒤집다 지쳐 잠이 든다. 정신을 차려보니 짧은 시곗바늘이 십을 가리킨다. 예상치 못한 결근이다. 삐걱대는 이 층 침대를 내려와 방문을 열자 부엌 앞마당에서 이와스가 시마를 만들고 있다. 시마는 옥수수가루와 물을 섞어 만든 잠비아의 주식으로 식감은 무른 떡에 가깝다. 정전이 잦기 때문인지 이와스는 땔감에 불을 붙여 요리를 한다. 냄비에는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일고 있다. 평소라면 맛있는 점심 메뉴를 목격해 신이 날 텐데 컨디션 난조로 식욕이 없다. 주저앉은 자세로 신문지를 들고 바람을 일으키는 이와스 옆에 털썩 앉는다.
- 몸은 어때요? 얼굴이 안 좋네.
- 배탈이 났나 봐요. 아침보다는 괜찮아요.
손바닥으로 이마의 열을 확인하더니 얼른 쉬라며 등을 민다. 이불을 돌돌 말아 애벌레처럼 구부린다. 또 잠깐 잠이 들었을까, 침대 다리를 두드리는 진동에 몸을 일으킨다.
- 여행한 지 꽤 됐죠? 지칠 만하지. 죽 끓였으니 먹고 쉬어요.
방안 미니 냉장고 위로 노란 죽이 올라와 있다. 매일 세 끼를 꼬박 챙겨주는 이와스가 아픈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옥수수 포리지이다. 걸쭉한 수프에 가까운 옥수수 포리지는 낯선 식감이지만 목 넘김이 좋고 포만감을 준다. 남김없이 바닥까지 긁어먹는다. 설거지를 하러 주방에 들어서자 점심 준비를 마친 이와스의 등이 보인다. 허리를 꼭 끌어안는다.
- Zikomo(지코모, 고마워요), 이와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시마와 노란 옥수수 포리지
한 시가 지나자 동료들이 하나둘 퇴근을 하고 돌아온다. 룸메이트 스칼렛과 제시카가 걱정 어린 눈길을 쏟는다. 이와스가 마련한 포리지를 먹은 뒤 조금씩 혈색이 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호주 커플 윌리엄과 베네사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 장기 하우스의 공식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한다.
- 배탈 났다며? 천연가루인데 마시면 금방 나을 거야. 우린 여행 때마다 들고 다녀.
탄약처럼 시커먼 가루가 담긴 병을 흔든다. 물에 녹여 마시면 몸속 나쁜 물질과 함께 빠져나온다고 한다. 컵을 들고나가자 숟가락으로 가루를 덜어준다.
- 보기엔 이래도 맛은 나쁘지 않아. 쭉 들이켜 봐.
과연 베네사의 말대로 끈적이는 사약처럼 생긴 음료는 별다른 맛이 나지 않는다. 한 번에 털어 넣고 내려놓으니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 잔 더! 연거푸 두 컵을 마시고 시원하게 웃으니 다들 배를 잡으며 입술을 가리킨다. 거울을 보니 가루가 닿은 입 주변이 조커의 입매처럼 새까매졌다.
해질 무렵 숙소에는 적막한 공기가 맴돈다. 장기 하우스의 아지트이자 바나나 밀크셰이크 맛집인 쿠부 카페로 떠난 친구들이 많나 보다. 이곳은 시내에 위치해 거리가 꽤나 멀지만 잠비아 유심을 사용할 수 없는 국가의 친구들이 와이파이를 이용하려고 자주 들린다. 몇몇은 번지점프의 변형으로 협곡 사이를 그네처럼 오가는 액티비티(골지 스윙, gorge swing)를 즐기러 떠났다고 한다. 하루 종일 누워 있었더니 온몸이 뻐근하다.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지만 통증이 멎어 이제 살 만하다. 바깥공기를 쐬러 나오자 윌리엄이 숙소 앞마당 풀밭에 천을 깔고 있다. 붉은색 계열의 화려한 줄무늬는 잠비아 전통 의상인 키텡게를 연상하게 한다.
- 지수, 요가 시간이야. 어서 와!
깜짝 제안이지만 평소에 요가 수련을 하고 있어 기쁜 마음으로 착석한다. 여독을 풀 절호의 기회다.
배탈 치료에 특효약인 검정 주스와 윌리엄, 제시카와 함께한 요가 수련
방에서 쉬고 있던 제시카도 불러내 셋이서 세모나게 앉는다. 윌리엄의 호흡에 맞춰 명상을 시작한다. 등을 곧게 펴고 무릎 위에 손등을 올린다. 눈을 감고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데 귓가에서 모기가 춤을 춘다. 가뜩이나 모기가 많은 지역인데 거뭇거뭇한 해질녘이니 주 활동시간에 맞추어 수련을 시작한 셈이다. 실눈을 뜨고 둘의 표정을 살피니 잔뜩 뜯길 각오를 한 모양이다. 윌리엄은 요가를 한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쉬운 동작에서 다음 동작으로 유려하게 연결한다. 빈야사(흐름)에 맞추어 아사나(자세)를 이어가자 뭉친 근육이 풀리고 병치레와 긴장으로 굳은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린다. 평소 실내에서만 하다가 처음으로 야외에서 수련을 하니 같은 동작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강렬함을 잃은 낮은 고도의 햇빛과 서서히 식어가는 대기의 온도, 발바닥에 닿는 천의 부드러움과 나의 무게에 짓이겨지는 노란 잔디의 쓰러짐, 시간이 기울수록 키를 세우는 그림자와 움직임을 달리하는 사람을 부지런히 쫓는 모기의 합창. 자연 속에서 호흡하는 과정은 내면에 평안을 더해준다. 마지막 깊은 숨을 정리하자 사위는 서로를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라앉았고 하늘에는 오늘의 별이 총총 떠있다.
여행에서 가장 서러운 순간 중 하나는 몸이 아플 때이다. 더욱이 혼자 떠난 길이면 고통은 배가 된다. 감사하게도 이번은 다르다. 아빠처럼 든든하게 불안해하는 나를 다독이며 병원까지 데려다준 케네디, 엄마처럼 따끈하고 맛난 죽을 쒀주는 이와스, 언니처럼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걱정해주는 룸메이트 스칼렛과 제시카, 어떤 약보다 효과가 좋았던 천연가루를 선물하고 요가로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해 준 윌리엄과 베네사, 나보다 더 자주 내 손을 들여다보고 약은 먹었는지 챙겨주는 장기 하우스의 모든 친구들. 그들이 있어 어쩌면 가장 힘들었을지도 모를 시기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이겨낼 수 있었다. 함께 있어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