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평생토록 불안한 이유
1. 평범한 삶
여기 A,B, 두 사람이 있다.
A는 꽤 유명한 대기업에 취직하여 부모님도 좋아하는 애인과 무사히 결혼하고 귀여운 아들, 딸도 낳았다. 크진 않지만 자랑할 만한 외제차에 이제 곧 40평이 되는 집으로 이사를 갈 예정인다. 그런데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불안하지?'
B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운은 따라 주지 않았다. 아직 30대가 되지 전이지만 흔한 연예도 해보지 못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어떻게 행복해 질 수 있지?'
2. 무지 속의 행복 vs 지각 속의 역경
이 두 인물은 조금 지루한 영화, 조금 유명한 소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클리셰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 평온해 보인다. 아무 의심 없이 남들 하는 만큼의 걱정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삶에 대한 회의는 고양이처럼 뜻밖에 찾아와 삶을 휘저으며 불안을 낳고 떠난다.
현실에 대한 이질감을 느끼는 주인공들은 안락한 삶을 등지고 실존을 밝히려는 무모한 선택을 하며 '굳이' 힘든 사건으로 뛰어 든다. 마치 매트릭스 속의 편안하고 안정된 삶 대신 위험하고 불확실한 매트릭스 밖의 삶을 선택하는 네오처럼.
3. 삶을 이해한 순간의 구토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실존적 고통을 느끼고 선택하는 인물 중 네오만큼이나 유명한 주인공은 사르트르의 구토에 등장하는 로캉텡이다. 평범하고 또 평범한 로캉텡은 알려진대로 손바닥 위의 조약돌을 바라보다 갑작스럽게 구토를 느낀 이후 모든 일상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문의 손잡이는 벌레로 보이고 사람들의 미소에서는 죽은 동물의 입이 보이며 현실감각을 잃는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미쳤다고 할 만큼.
실존주의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로캉텡의 구토는 '사물들의 다양성과 개성은 단지 겉모습에 불과하며 표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 하는 것이며 '설명과 이성의 세계는 존재의 세계가 아니다는 것을 이해' 하게 되는 과정에서 오는 필연적인 성장통이다. 즉 존재의 진실은 논리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고 부조리와 허무함으로 가득찬 것임을 인지하는 것이다.
4. 비본래적인 삶은 편안하고 안락하다
본래적인 삶은 죽음, 고통, 허무, 무의미와 같이 우리가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본래적인 삶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들은 일반적인 표준과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규범으로 이루어진 비본래적인 삶을 살아간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낸 환상은 편안하며 안락하다. 하지만 문제는 비본래적인 삶이 보장하는 평화와 안정은 모두 거짓이라는 점이다.
5. 본래성은 불편하지만..
1 - 비본래적으로 사는 것이 불안을 경감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불안을 근절시키지는 못한다. 실존주의자들은 불안이 존재의 본질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불안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존재를 제거하는 것 밖에 없다고 하지만 당연히 이는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우리 존재의 일부이며 마음 속에서 영원히 제거되지 않는 가시같은 불안. 우리가 비본래적 삶을 통해 이러한 인식을 없는 것인 것처럼 외면할 수는 있지만 영원히 이별할 수는 없다.
비본래적인 삶이라면 삶에 대한 불안은 사회적이거나 지엽적인 탓을 하게 된다. '돈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노력이 부족해서'. 하지만 이는 불안의 원인을 근본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오해일 뿐이다. 비본래성은 자기로부터 도피하려는 속성이지만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에서 도피할 수 없기 때문에 비본래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사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 때문에 다시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안이라는 존재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2 - 그리고 비본래성은 실존의 자유를 제한한다. 자유는 사회적 규율에 얽매인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분명한 인식 없이 예정된 정체성을 수용하게 된다. 즉 스스로 만든 역할이 아니라 던져진 역할로 빨려 들어가며 삶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며 일종의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본래성은 존재의 본질과 불안의 원인을 인정하고 정직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6. 삶은 완전한 공짜선물임을 이해한다면
'삶은 완전한 공짜선물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불안은 존재의 달콤함으로 이어지고 어렵고 매력없는 삶을 기꺼이 끌어안으며 살아갈 수 있다. 본래성은 존재의 불안 대신 평온을 전하는 것이다. 삶에 대한 불안은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타인의 규범에 맞춰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깨닫은 순간 우리는 비본래성을 특징짓는 필사적인 도피, 끝이 없는 욕망를 끝낼 수 있다.
삶이 불안을 주제로 한 변주곡이라는 실존의 진실은 우리의 환상을 파괴하지만 이 것이 삶의 본질이며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