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쌍문동 사람들

이제 막 그런 사람이 생기려는 참이었다.

by 두밥

백춘길은 외로움과 친했다. 자식은 없었고 아내도 일찍 그의 곁을 떠났다. 그는 원래도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었고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자 외로움을 벗 삼는 삶에 익숙해져 갔다.


외로움은 하루에도 다양한 강도와 물성을 지니고 춘길 주위를 맴돌았다. 아침에는 덜했고 밤에는 심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아, 주택가에 찌개 냄새와 수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올 때 진하고 끈적였다. 한낮의 태양이 머리 위를 가로질러, 아이들은 학교에 부모들은 직장에 고양이는 그늘진 구석에 있으면 희미하고 건조했다.


외로움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백춘길은 외로움에 잠식되어 빛을 잃지도, 고독을 곱씹으며 오만하고 괴팍해지지도 않았다. 그저 사람들 떠난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처럼 꿋꿋하게 살아갔다. 외로움을 다스리는 방법은 그의 유난스러운 다정함과 신중함을 무기로 삼아 찾아냈다.


김영배는 몰랐지만 그가 사는 저층아파트의 길가 쪽 화단을 가꾸는 사람은 다름 아닌 춘길이었다. 경비원과 주민위원회의 허락을 받고 5년 전부터 화단 관리를 맡았다. 도서관을 다니러 아파트 앞을 지나가던 그에게 황량한 화단이 눈에 자꾸 밟힌 까닭이었다.


꽃씨를 뿌리고 구근을 심고 제때 잡초를 뽑아주며 춘길이 돌본 화단은 길 가다 누구는 한 번쯤 돌아볼 정도로 화려해졌다. 아파트 주민 중 네다섯명의 SNS 프로필 사진은 그 화단에서 자란 꽃일 정도였다.


춘길은 쌍문동에서 알게 모르게 유명했다. 안식년을 맞기 전 출근하며 매일 아침 사 먹는 길거리 토스트 노점 주인은 그를 기억했다. 그는 꼭 누군가 떠준 듯한 스웨터를 입고 조심조심 뜨거운 토스트를 먹었다. 반찬 가게 사장에게는 매번 새로 담근 총각김치를 찾는 노인으로 기억에 남았다. 익은 김치를 잘 못 먹는다나.


두 달에 한 번 가는 미용실 원장은 유난히 숱 많고 까만 곱슬머리로 그를 알아봤다. 뜨개용품 가게 직원은 그가 꾸준히 사가는 메리노 울과 알파카 울이 아내를 위한 것이라 굳게 믿었다. 실상은, 춘길의 취미가 뜨개질이었다.


춘길이 그들의 기억에 남은 이유는 그가 꾸준히, 조심스럽게 오지랖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소한 점도 잘 기억했고 사람들에게 불편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을 걸 줄 알았다.


“지단에 옥수수를 넣으셨네요?”


길거리 토스트를 돌연 아주 신중하게 음미하다 춘길이 물었던 적이 있었다. 때는 7시 14분이었고 그전까지 수십 명의 손님들이 토스트를 먹고 간 뒤였다. 노점 주인 황진숙에게 말을 건 손님은 춘길이 처음이었다.


마침 손님이 밀려들다 한 차례 빠져나간 참이었다. 진숙은 잠시 예쁘장한 스웨터를 입은 노인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로 결심했다.


“예, 입에 좀 맞으세요?”


“잘 어울리네요. 맛있어요. 이따 퇴근하면서 찰옥수수도 좀 사가야겠어요.”


춘길이 토스트 노점 반대편에서 찰옥수수와 뻥튀기를 파는 가게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진숙은 손사래를 쳤다.


“저기선 사지 마요. 아침마다 옥수수 찌는 걸 보는데, 사카린을 얼마나 들이붓는지. 보기만 해도 몸이 상하는 기분이라니까요.”


“그래도 가끔씩 저런 옥수수가 먹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춘길이 대꾸하자 진숙은 못마땅하게 코웃음 쳤다.


“저런 옥수수 먹을 바엔 집 가면서 토스트 하나 더 먹어요. 우리는 기름도 자주 갈고 재료도 밖에 안 꺼내놓으니까.”


“사카린 안 먹는다고 얼마나 더 오래 살겠나요. 내일 아침에 또 올게요.”


가판대에 놓인 싸구려 핑크색 휴지로 입을 꼼꼼히 닦은 춘길이 미소 짓고는 몸을 돌렸다. 다음날 아침 그를 봤을 때 진숙은 옥수수를 사 먹었냐며 추궁부터 했고 작은 노인은 불량식품을 사 먹다 걸린 아이처럼 머쓱해했다.


진숙은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 맨발 걷기 운동부터 주말에는 줌바 댄스를 췄고 몸에 좋다는 음식과 약재는 백과사전처럼 꿰고 있었다. 자신이 파는 토스트는 어묵이나 떡볶이보다 훨씬 나은, 영양소가 고루 들어간 완전식품이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계란 지단에 옥수수를 넣은 그날 이후로 진숙은 춘길의 건강 지킴이로 나섰다. 주 역할은 춘길이 퇴근길에 생크림 와플이며 붕어빵이며 특히 사카린 범벅 찰옥수수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었다. 그가 혼자 살며 반찬가게 단골이란 사실을 알고 나선 노점 문 닫을 때 오라고 일러 말린 대추며 표고버섯을 쥐어주기도 했다.


진숙은 줌바 댄스 수업 동기인 최성희에게 눈에 밟히는 단골손님 이야기를 해주었다. 표면적으로는 노인네가 쓸데없이 군것질만 좋아한다는 불평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를 챙기는 자신의 넓은 마음씨에 대한 자랑이었다. 그리고 성희는 진숙에게 놀라운 정보를 알려줬다.


“머리 까맣고 쪼그맣고 착하게 생긴 사람 맞지? 귀여운 스웨터 입고. 그 노인네, 우리 가게에도 자주 오잖아.”


“뭐야? 안 그래도 나한테 요리를 못해서 반찬 사 먹는다고 그랬거든. 근데 그게 자기네 가게였어? 어머.”


“그래. 언니는 그거 알아? 그 사람 대한대학교 교수야. 역사 교수.”


“그건 몰랐네. 하기야 맨날 홈메이드 스웨터만 입고 다녀서 그런 줄 상상도 못 했다.”


수업이 끝나고 카페에 가서도, 수업 전에 준비운동을 핑계로 하천을 걸으면서도 춘길은 종종 진숙과 성희의 대화 주제로 등장했다. 하루는 찜질방에서 진숙이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그 쪼그만 옥수수광 노인네 기억나? 자기 반찬가게 단골.”


“아유 무슨 날 바보천지로 아나. 당근 기억하지. 그 사람 왜?”


“며칠 전부터 우리 토스트 먹으러 안 온다. 저녁 때도 안 보여. 보통 셋 중 하나에 보이거든. 옥수수 사거나, 붕어빵 들고 가거나, 와플에 아이스크림 추가해 먹거나. 근데 어디에도 없어. 사라졌어, 아주.”


성희는 한동안 얼음방에 소리가 울리도록 깔깔댔다.


“언니가 안 그래 보여도 마음이 따스워. 걱정됐지? 우리 언니 정 많다, 정 많아.”


춘길이 안식년을 맞아 출근은 안 하고 반찬 가게만 문턱 닳게 들락거린다는 소식을 들은 진숙은 그제야 안심했다.


“아니 그래도. 요즘 그 뭐야, 고독사 그런 것도 뉴스에 나오고 하니까 불안했지. 혼자 살면서 반찬도 사 먹는다길래. 못된 할배. 일을 쉬면 그렇다고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녀?”


둘은 반찬가게에 진숙이 일일알바를 하다가 못된 할배를 놀라게 해주자는 계획을 짜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한편 얼음방에는 둘의 대화를 아주 관심 있게 듣던 세 번째 인물이 있었다. 쌍문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성혜란은 그날 오후 뜨개용품 가게 사장과의 티타임에서 새로 입수한 첩보를 전달했다.


“왜 그 아내 선물 사간다는 까무잡잡한 노인 있잖아. 영미 씨네 직원이 말했다는.”


“그래요 그 할아버지. 매번 비싸고 좋은 실만 찾던데. 그리고 웃긴 게 몇 달 뒤에 정확히 그 실로 만든 스웨터를 입고 나타나. 사모님 손재주가 보통 좋은 게 아니라.”


혜란은 얼른 말을 하고 싶어서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 사람 어디 교수인가 봐.”


윤영미는 홀짝거리던 핫 아메리카노 잔을 우아하게 테이블에 내려놨다. 그리고 너무 놀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뜸을 들였다가 되물었다.


“진짜?”


“그래. 내가 아까 해수사우나에서 요 앞 반찬가게 사장하고 토스트 노점 주인인지 둘이 말하는 걸 들었는데, 똑 그 노인네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근데 올해 안식년이라는 거지.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토스트 먹으러 들렀는데, 안 온다네.”


“안식년? 그거 교수들이 일 년 쉬는 그런 거 아닌가?”


“그래. 그렇다니까.”


혜란과 영미는 잠시 충격을 공유하며 잠자코 앉아있었다. 혜란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근데 내가 또 들은 게 있어. 그 할아버지 혼자 살면서 반찬을 사 먹는다더라.”


“뭐어? 그럼 스웨터는 다 누가 뜨고. 우리끼리 그랬잖아. 사모님 집에 갇혀서 스웨터만 뜨시는 거 아니냐고. 왜, 성 원장이 봤으면서. 한겨울에 그 할아버지 어땠는지.”


눈이 펑펑 내리는 유난히 추운 날 혜란의 미용실을 찾아온 춘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뜨개실로 만든 아이템을 장착하고 있었다. 뜨개 비니모자, 캐시미어 목도리, 메리노 울 스웨터, 핸드다이 실로 뜬 양말까지. 안타깝게도 비싼 실로 수고롭게 뜬 작품들은 눈을 그대로 맞고 말았다. 그 모습을 묘사하고 떠올리며 혜란과 영미가 얼마나 웃었던가.


“그 반찬가게 사장하고 노점 주인이 잘못 알았겠지. 아니면 진짜 사모님이 갇혀서 뜨개질만 하시던가.”


별로 안 무섭고 허무한 여름 괴담 같은 이야기에 혜란과 영미는 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럴 일은 없었다. 집안에 갇혀서 뜨개질만 하는 삶이라니. 적어도 쌍문동 여자들은 그렇게 얌전히 살지 않았다.


그렇게 버드랑골 백 영감은 소란스러운 쌍문동을 바지런히 쏘다니는 수호목의 유령 같은 존재였다. 그를 아는 사람은 진숙과 성희, 혜란과 영미 말고도 많았지만 그를 온전히 알고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제 막 그런 사람이 생기려는 참이었다.


자신이 완전한 최초가 되리란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가든아파트 103동 505호 거주민 김영배는 서재를 뒤집어엎는 중이었다. 딱 마음에 둔 악보집을 찾아, 얼른 백 영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영배가 운이 좋다면 백 영감의 노래를 30년 만에 처음 듣는 관객이 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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