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자전거

목도리를 손수 둘러줬는데.

by 두밥

“편지를 언제 보내는지가 중요한가요, 마음이 전해지면 됐죠.”


춘길이 편지를 다 읽은 후 영배에게 차분하게 일렀다. 그는 분명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라고 지시한 해인의 메시지에 대해서 모를 텐데, 마음이 전해진다고 이야기했다. 영배는 부족한 솜씨로 쓴 글에서 그의 마음이 어떻게 전달되었을지 궁금했다. 춘길은 마치 그의 생각을 읽은 듯 싱긋 웃었다.


“영배 씨가 쓴 글이라는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짧게 알고 지냈는데도요. 자기만의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귀하다고 했는데, 영배 씨는 그런 분이네요.”


“그렇게 봐주니 고맙습니다.”


더 말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날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추워졌다. 이제 완전히 해가 넘어가 공원은 어두컴컴했다. 저녁때를 놓친 영배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시장하지 않으세요? 돌아가기 전에 주전부리라도 사가야겠어요.”


춘길이 먼저 벤치에서 일어나 길게 스트레칭을 했다. 영배는 그럴 엄두는 못 냈기에 허리에 손을 올리고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어디서 간식을 살 거냐는 영배의 물음에 춘길은 꽤나 단호하게 마음을 정했다.


“붕어빵 말입니까? 이 동네 주변에서는 다 일찍 닫을 텐데요.”


“창동역까지 갈 거예요. 거기 토스트 노점이 늦게까지 하는데 다른 노점들도 같이 장사하더라고요.”


영배는 창동까지 걸어갈 바에는 차라리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었으나 춘길의 단호함에 기가 눌렸다. 그의 미적거림을 춘길은 이번에도 귀신같이 알아챘다.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영배 씨는 슈크림 붕어빵 드셔보셨나요?”


그런 붕어빵도 있냐는 말을 하기에 자존심이 상해 영배는 고개만 내저었다. 춘길은 영배가 피로한 만큼 신이 나 보였다. 발걸음이 느린 그를 위해 보폭을 맞추면서도 흥을 감추지 못했다.


춘길에게서 슈크림 붕어빵의 진가와 붕어빵집 주인이 자신을 알아본다는 자랑을 듣고 이야기가 생크림 와플과 아이스크림 와플의 장단점까지 흘러갈 무렵 그들은 창동역에 도착했다.


“어떠세요?”


영배는 춘길의 성화에도 꿋꿋하게 팥 붕어빵을 선택한 참이었다. 창동 붕어빵이 쌍문 쪽 노점보다 맛있다는 춘길의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살을 할퀴는 찬 바람에도 맨손으로 들고 혀를 데어가며 먹는 붕어빵은, 그가 먹어본 어떤 음식보다 맛났다.


영배의 표정을 본 춘길은 말 안 해도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그도 슈크림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다시 창동에서 쌍문동까지 걸어가는 길은 전보다 힘들고 어두웠지만 더 따뜻했다. 최초의 이마트가 있는 사거리에서 아파트 대단지 하나를 가로질러 길이 갈라졌다. 춘길은 붕어빵 봉지를 품에 안고 길 건너서까지 손을 흔들었다. 어두운 색 외투와 바지를 입고 머리도 새까만 그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소중하게 품은 구겨진 흰 봉지가 영배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 * *


네번째 메시지는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도착하지 않았다. 혹시 해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영배는 화상통화를 걸려다 마음을 바꿔 딸 경희에게 전화했다.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시작된 경희의 걱정은 이내 안도와 반가움을 바뀌었다.


“아빠, 안 그러신 척 해도 다 알아요. 해인이 보고 싶죠?”


“아니다. 토요일에 말괄량이가 없으니 조용하고 좋더라.”


“에이 거짓말.”


경희가 깔깔거리고 웃게 내버려 두며 영배는 그 어미에 그 딸이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영배의 아내를 쏙 빼닮은 딸은 꼭 저 같은 아이를 길러냈다.


또 한 번 해인의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의 출처가 경희인지 의심스러워졌지만 영배는 이내 추리하길 포기했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어떤 무시무시하고 환상적인 일을 벌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이제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는 해인이 혼자 고안해 냈다고 믿어주기로 했다.


“해인이는 할아버지 별로 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요?”


“그러냐.”


경희는 영배를 꾀어낼 속셈인지 해인이가 필리핀에서 노는 사진들을 왕창 보냈다. 영배는 사진마다 뚝뚝 묻어 나오는 해인의 밝은 웃음에 마음이 따스해졌고 속은 쓰렸다.


“어학연수 보낸 거 아녔냐.”


“어학연수는 뭘. 일부러 자유시간이랑 체험활동 많은 프로그램으로 골랐죠. 애아빠한테는 비밀이에요.”


“내가 그놈하고 너 몰래 연락하는 날엔 날 죽여도 좋다. 주안산에 묻어주련.”


“아빠!”


경희와 짧은 농담 주고받기를 끝내자 영배는 다시 집에 홀로 남겨졌다. 적막함을 가르고 영배는 전과 달리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해인의 네번째 메시지가 늦어진다면 그동안 시간을 보낼 방법은 많았다. 당장 오늘은 춘길과 오후에 주안산 기슭을 오르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주안산은 해발 100m가 간신히 넘는 소위 동네 뒷산이었다. 노원까지 넓게 퍼져있는 것에 비해 길이 평탄해 동네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 애용되었다. 영배의 설명을 들은 춘길은 등산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산이라면 도전해 보겠다고 답했다. 영배가 사는 쪽에서 산을 한 번 넘어가면 도서관이 나온다는 점이 무엇보다 춘길의 호기심을 동하게 했다. 산 넘어서 가는 도서관이라. 낭만적이었다.


두 노인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서로가 신기하고 재밌었던 처음 며칠과 다르게 안 맞는 부분이 끝없이 나왔다. 춘길은 영배가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다 해인이에게 줄 선물 꾸러미를 만드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고작 도토리 다섯 개 가져갔다고 다람쥐가 굶는 게 말이 되냐, 하는 영배의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영배는 춘길이 산에 두터운 니트 카디건을 입고 와 도꼬마리며 도깨비바늘이며 쓸고 다니는 게 못마땅했다. 이 옷이 제일 편하고 따뜻하다는 춘길의 변명은 무시당했다.


산을 오르는 보폭도 차이 났다. 춘길은 평지에서 보여준 가벼운 걸음과 다르게 굼뜨게 행동했다. 영배는 답답함에 그를 업으려고 들다가 제지당했다. 영배는 산타기 하면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돌부리를 어떻게 밟아야 무게를 싣기 알맞고 흙먼지 날리는 내리막을 어느 각도로 몸을 기울이고 내려가야 하는지 알았다. 미끄러운 모래 바닥과 흔들리는 돌을 잘 발견했다.


둘은 심지어 책 읽는 취향마저 달랐다. 영배는 부동산 투자와 자기계발 책을 주로 읽었다. 춘길은 그가 실용적이라 “믿는” 서적을 읽는 “척” 한다고 비난했다. 영배는 춘길이 읽는 소설을 통속적이라 칭하고 도서관을 나설 때쯤 사과했다. 춘길은 사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노인은 다음날에도 같이 할 일을 찾아냈다. 영배가 장을 봐야 할 때가 되었고 춘길은 오랜만에 대형마트에 가보고 싶다며 들떠했다. 영배는 마트에 방문하는 대신 경희가 알려준 쏙 배송을 이용했지만 장단에 맞춰주기로 결심했다.


필연적으로 들킬 수밖에 없는 배려였다. 춘길은 영배가 무거운 짐을 들고 걷기보다 소파에 누워 일주일치 식량을 시키는 모습을 잘 상상하지 못했다. 이마트 고객쉼터 의자에 춘길과 나란히 앉아 영배는 쏙 배송 어플을 구경시켜 줬다. 춘길은 순수한 감탄이 담긴 눈빛으로 영배를 바라봤다.


“여기서 반찬도 시킬 수 있나요?”


“반찬은 가게에서 바로 사 먹는 게 맛있긴 합니다.”


이렇게 답하며 영배는 전문가가 된 기분에 으쓱했다.


그다음 날에도 경희와 해인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날이 부쩍 풀려 춘길이 자전거를 타자고 제안했다. 영배는 구경만 하려다 참지 못하고 나섰다. 따릉이 어플은 춘길에게 또 다른 신세계였다. 곳곳에 있는 따릉이 정류소에서 자전거를 빌리고 반납해 오갈 수 있다니. 그는 대학 안에서 학생들이 다 똑같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길래 공동구매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날 춘길은 영배에게 빨간 목도리를 선물했다. 사실 영배를 처음 본 날, 말도 트기 전에 그에게 어울릴 것 같아 뜨기 시작했다고 했다. 생판 처음 보는 노인이 두르면 좋을 듯해, 또 볼지도 불확실한 사람을 위해,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기간이 짧아 넓고 도톰하게는 못 떴지만 한 번 반 정도 목에 두를 길이는 되었다.


둘은 따릉이를 빌려 천변으로 내려갔다. 지하보도 계단에서 자전거를 옮기며 고난을 겪었어도 춘길은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는 자전거에 앉아서 출발하며 순식간에 앞서나갔다. 영배는 몸집이 작았던 옛날 옛적에 그랬듯 한 발을 올리고 발을 구르는 식으로 타려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비틀비틀 나가던 자전거에 어느 순간 속도가 붙었다. 페달이 쑥쑥 밟혔고 바람이 시원했다. 겨울이라 물이 얕게 흐르는 중랑천은 오후 햇살 아래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자전거와 비슷한 속도로 낮게 날던 백로가 어느 순간 쑥 앞서나갔다.


그때였다. 영배의 목에서 목도리가 풀려 미끄러졌다. 바닥에 떨어지던 목도리를 바람이 낚아채 저 멀리로 날려 보냈다. 당황한 영배는 자전거에서 내리려는 마음과 계속 타고 목도리를 쫓아가려는 마음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자전거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 쓰러졌다.


목도리를 손수 둘러줬는데. 그런 생각을 하던 영배가 풀썩 내팽개쳐졌다. 하천으로 이어진 비탈길을 굴러가며 영배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기억은 목도리 단을 잘 정리하고 뿌듯하게 웃던 춘길도, 혀를 메롱 내밀던 해인의 개구쟁이 미소도 아닌 경희였다. 그녀가 살아오며 수도 없이, 주문처럼 되풀이했던 말이었다. 영배가 고집을 부리고, 괴팍하게 굴고, 멋쩍게 장난을 걸어오고, 말없이 아껴줄 때마다 경희는 이렇게 말했다.


“김 영감은 바보야. 진짜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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