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배는 유난히 안 나아지던 춘길의 손을 떠올렸다.
영배는 시리도록 밝은 불빛을 받으며 깨어났다. 소독약 냄새와 바쁜 발소리에 둘러싸여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병원 응급실에서 깨어난 이유를 기억해 낸 다음엔 서둘러 춘길을 찾았다.
바로 옆 병상에 춘길이 누워 있었다. 이마부터 손, 무릎, 정강이까지 군데군데를 각기 다른 크기의 붕대가 감쌌다. 피가 멈췄거나 상처가 심하지 않은지 붕대는 깨끗했다. 그는 붕대와 반창고만 빼면 편안하게 잠든 모습으로 보였다.
영배는 기이한 꿈을 꾼 사람처럼 천천히 자신의 몸을 만져봤다. 춘길의 것과 똑같은 환자복을 들춰보기도 했다. 그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마치 자전거에서 넘어져 구른 사람이 춘길인 것처럼. 아니면 그들의 몸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가.
당혹감에 휩싸인 영배는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침대 난간에 비친 얼굴은 일그러져있긴 해도 그의 얼굴이었다.
누군가 침상을 둘러 쳐진 커튼을 걷었다. 경희였다.
“아빠.”
경희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엉키고 반들거리는 머리카락이 그녀가 병원에서 보낸 시간을 말해줬다. 그녀는 영배가 자신을 알아보는지 확인하는 눈빛으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
“다친 곳은 없다고 듣긴 했는데….”
영배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뜨거운 덩어리를 힘들게 삼켜 내려보냈다.
“안 다쳤다.”
그 말을 들은 경희의 입술이 잘근 깨물리는 모양새를 영배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경희는 안도감을 눌러 담고 탓하는 말은 씹어 삼켰다. 여전히 걱정 가득해 보이는 그녀가 영배에게 손을 뻗었다가 도로 내렸다.
“괜찮으세요?”
“그래.”
영배는 그렇게 대답하며 춘길에게로 가는 눈길을 멈출 수 없었다.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린 경희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저분은 어쩌다가… 같이 계셨어요?”
“의사가 뭐라고 말하더냐?”
경희는 순순히 말을 전해줬다.
“위험한 부상은 아니래요. 부러진 곳도 없고. 그런데 단순 찰과상인데 지혈이 좀 안 됐대요. 그 나이대에는 그럴 수 있다고 그러긴 했지만….”
영배는 유난히 안 나아지던 춘길의 손을 떠올렸다. 넘어지면서 땅을 짚었으니 손을 가장 심하게 다쳤을 것이다.
경희의 집 가서 쉬라는 말도, 병원에서 기다릴 거면 같이 있자는 말도 다 물리치고 영배는 대기실에서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그의 두툼하고 끝에 굳은살이 배긴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생생했다.
자전거에서 내동댕이쳐지며 손바닥 살이 까지고 손목이 꺾였다. 충격은 어깨를 타고 넘어갔고 무릎과 정강이도 함께 쓸렸다. 그가 아픔을 느꼈던 모든 부위에 정확히 춘길의 붕대 조각들이 붙어 있었다.
춘길의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는 해인은 정작 지난 몇 달간 반창고 하나 붙이지 않고 돌아다녔다. 대신 춘길의 손가락과 손바닥을 감싼 조그만 반창고들이 영배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영배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날이 바뀌어 있었다. 병원 지하에 있는 식당가에서 아침밥을 먹은 영배는 경희를 돌려보냈다. 그는 춘길의 병상 옆에 있는 불편하고 조그만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의사들도 춘길이 이렇게 오래 자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영배는 의사의 난처한 말을 듣기 전부터 결심했다. 그는 얼마나 오래 걸리든 이 병상을 지킬 것이다.
춘길이 깨어날 때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정오가 되었다. 영배의 핸드폰이 작게 울렸다. 확인하지 않아도 해인에게 온 메시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희는 영배의 작은 사고를 해인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해인이 하필 오늘을 택해 세번째 친구 사귀기 비법을 보낸 것이다.
영배는 핸드폰을 덮어놓고 병상의 남은 귀퉁이에 엎드렸다. 10분 후면 메시지는 사라질 터였다. 그래도 확인할 수 없었다.
해인의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영배는 더 이상 춘길의 마음은 물론 제 마음 또한 가늠할 수 없었다. 춘길이 왜 그의 상처를 자신에게로 옮겨갔는지, 그를 어떤 마음으로 치료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치료받은 그의 마음이 과연 아직도 춘길에게 순수한지.
단순히 상처를 치료한 문제가 아니었다. 영배는 자전거 사고를 종국의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는 춘길의 호의를 이용했다. 대문 건너편에서 본 첫 순간부터 춘길이 낯선 이에게 친절하고 타인의 마음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임을 알아봤다. 음식을 만들어 들고 가면 그냥 돌려보내지 못할 것이고, 사연을 듣고 나면 선뜻 최선의 제안을 하리란 것을. 그래서 영배는 얼토당토않는 이유를 대며 춘길의 삶에 성큼 들어와 그를 이용했다.
그래, 이용했다. 영배 혼자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의 고독하고 허물어진 삶을 떠받치는 존재로 이용해 먹었다.
영배는 최악을 가정하고 한 갈래의 가능성이 현실이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영배가 가늠할 수 있는 최악은 깨어난 춘길이 그를 용서하는 상황이었다. 영배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도 모르면서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친구로 남는다면 영배는 춘길에게는 용서받았을지라도 그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춘길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영배는 이어 결심했다. 춘길이 회복될 때까지만 머무를 계획을 세웠다. 그 후에는 전처럼 모르는 사이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가장 비참한 선택이, 영배에게 마지막 남은 양심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 * *
춘길은 하루가 더 지나 아침 첫 햇살과 함께 눈을 떴다. 영배는 의자에 앉아 침상에 엎드린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춘길은 영배를 깨울까 고민하다 아주 잠시만 그 모습을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잠든 영배는 그가 대문 앞에서 봤을 때 깨달은 만큼 선해 보였다. 깨끗한 손과 이마를 확인한 춘길은 안심했다. 그리고 영배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영배 씨. 아침이에요.”
영배는 얼떨떨한 얼굴로 춘길을 바라보다 정신이 돌아오자 입을 크게 벌렸다. 다음 순간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에요.”
춘길이 놀려도 영배는 입만 뻐끔거렸다. 안도와 기쁨이 그의 온몸을 휩쓸고 지나가는 과정을 춘길은 찬찬히 지켜봤다. 영배는 그가 춘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다행입니다.”
영배가 겨우 뱉어냈다. 춘길은 고개를 마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둘은 병원의 아침이 분주하게 흘러갈 동안 말없이 있었다. 영배는 멋쩍게 춘길의 손을 놓아줬다. 정적을 깬 사람은 춘길이었다.
“물어보고 싶다면 물어봐요. 궁금한 게 많을 텐데요.”
영배는 춘길의 몸을 덮은 붕대를 죄책감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의 혀 끝에서 걸린 수많은 질문을 춘길은 익히 알았다.
영배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고맙습니다. 많이, 고맙습니다.”
“그게 다인가요?”
춘길이 묻자 영배는 고개를 느리게 주억였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영배는 모를 것이다. 춘길이 어떤 마음으로 그를 치료했는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춘길 자신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영배 이전의 지나온 사람들 역시, 춘길은 그때의 고통과 슬픔과 허망함을 기억하면서 마음만은 더 헤집고 싶지 않아 멈췄었다. 왜 그들을 치료하는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자격으로. 언제나 그랬다.
영배의 한마디로 춘길은 그 마음이 마침내 완성되었음을 깨달았다.
영배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사실 백 영감님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저 혼자 무례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죄책감이 너무 커서, 영감님이 낫는다면 다시 서로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망설인 만큼이나 영배의 말은 한 번 시작하자 막힘없이 터져 나왔다. 모두 그의 진심이었다.
“그런데 백 영감님이 깨어나던 순간, 제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지난 며칠간 영감님과 보낸 시간이 좋았습니다. 미래의 시간들도 기다려질 만큼요. 괜찮다면, 무례한 부탁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영배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떨궜다. 그가 고개를 들 용기를 낼 때까지 춘길은 미소를 입가에 띠고 있었다.
“제 비밀을 알고 난 후인데도요?”
“물론입니다.”
“그럼 친구로 지내요, 영배 씨.”
영배가 짧게 웃었다. 헛기침처럼 터져 나온 어색하고 순수한 행복감이었다.
버드랑골 백 영감과 쌍문동 김 영감은 그렇게 친구가 되었다.
그새 시간은 한낮까지 흘러갔다. 김영배의 핸드폰에서 우웅 소리가 났다. 해인에게서 다섯번째 메시지가 온 모양이었다. 영배는 이번에 바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친구가 되는 비법>
5번. 이제 그 비밀을 영원히 간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