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코로나와 가장 가까워졌던 일주일 간의 기록.

by 도르유

11/2 월요일,


재택근무로 집에서 맞이한 월요일 아침,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목이 부어 아픈 것 같고 콧물이 끊임없이 나왔다. 목은 워낙 자주 인후염이 생겨서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었는데 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점심시간에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았다.


목도 조금 붓고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간다고 했다. 4일간의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와 화요일까지의 재택근무를 어찌어찌 마무리했다.




11/4 수요일,


밤새 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어느 순간부터 느껴진 팔다리 저림이 계속되었다. 손끝과 발끝까지 느껴지는 저림은 가만히 누워있으면 더 심해져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자다 깨길 반복하다가 겨우 아침이 되었고 회사로 출근했다. 내 상태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졌던 날.


이틀간 약을 먹었는데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혹시 모르는 일을 대비하여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다들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감기 같다는 정도로만 말씀드리며 오전 근무를 마쳤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게 눈에 보였는지 맛있는 걸 먹으러가 가자고 하셔서 밖으로 나가 불고기 전골을 먹었다. 이때도 혹시 모르니 말은 최대한 아끼며 반찬은 건드리지 않고 불고기만 앞접시에 덜어먹었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한 분들께 괜히 더 큰 불안감을 느끼게 한 것 같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남은 점심시간 동안에는 휴게실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몸이 개운해지기는 커녕 머리가 더 막힌 느낌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보건실에 가서 열을 쟀다. 접촉식 체온계로 잰 체온은 양쪽 모두 37.6도.. 머리가 띵했다. 어느 순간부터 열이 났던 건지 모르겠지만 지침상 37.5도가 넘어가면 조퇴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월요일부터 복용 중이던 약을 확인해주신다고 해서 약봉투까지 가져가서 보여드렸는데 해열제도 포함되어있다고 하셨다. 약을 먹었는데도 열이 있던 것이다.


부서로 가서 상황 설명을 드리고 급하게 조퇴 복무를 달고 나왔다. 코로나 의심으로 보고도 해야 한다고 한다. 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아 부서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신경 쓰기에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월요일에 갔던 병원에 가서 처방을 다시 받기로 했다. 회사에서 병원까지 가는 10분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주말에 갔던 두 곳의 결혼식에서 너무 안일했나, 밥도 먹지 않고 축하만 해주고 나왔어야 했나,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어디서 확진자와 접촉된 걸까, 동선이 겹쳤다면 검사받으라고 연락이 와야 하는 거 아닌가, 연락이 없으면 괜찮은 건가, 동선이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요즘은 많다고 하는데 나는 파악되지 않은 동선 속에서 접촉이 된 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코로나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안 그래도 막힌 머리가 더 지끈거리는 듯했다.


이곳 병원에서는 이상하게 환자들의 열을 체크하지 않고 진료를 봤다. 혹시 37.5도 이상이 나와 진료를 거부당할까 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열이 나는 것 같다고 해도 따로 열을 재지 않았다. 감기는 아니고 축농증이라고 했다. 축농증.. 목이 부으면 열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정도로 진료는 끝났다. 찝찝한 마음이 계속 남았다.


걱정하실까 봐 집에는 알리지 않고 있던 상태를 말씀드렸다. 내일은 재택근무로 일을 마무리하고 금요일은 연차를 써서 본가로 가기로 했다. 주말까지 3일 내내 혼자 있고 싶지는 않았다.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위험부담을 안고서라도 집에 가고 싶었다.




11/5 목요일,


점심시간, 약국에 가서 접촉식 체온계를 샀다. 계속해서 체온을 체크해도 37.5도에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미 37.5도 체온에 몸이 익숙해졌는지 열이 난다는 느낌도 잘 들지 않았다. 그저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11/6 금요일,


부모님은 모두 출근하시고 혼자 남은 시간, 동시에 가장 불안감이 피크를 찍은 시간. 입맛도 없고 몸에 힘이 나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계속된 팔다리 저림은 시도 때도 없이 느껴져서 불안감은 배가 되었다. 근육통인지 단순 저림인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마음 편히 쉬는 휴일이 되기는 이미 물 건너갔다. 적막한 집에서 계속해서 검색하고 검색했다.


코로나 저림, 코로나 근육통 증상, 코로나 코막힘, 코로나 검사, 코로나 증상, 코로나 인후통, 코로나 인후염 차이, 확진자 이동경로, 선별 진료소 운영시간...


열은 계속해서 37.5 내외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집 근처 이비인후과를 다시 갔다. 진단은 같았다. '축농증'.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쭤봤다. '바이러스.. 이거나 그럴 일은 없는 거겠죠..?' 일단 축농증으로 인해 지금 상태가 된 거라는 결론이었다. 사실 아무리 의사라도 상태만 보고는 모르는 일이라 확답을 주진 않은 것이겠지만 그 정도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오시는 순간부터 마스크를 쓰고 저녁도 따로 먹었다. 이미 집 안에 바이러스가 다 묻어있을 거라고 소용없다고 가볍게 말씀하시면서도 최대한 조심하려고 하시는 엄마께 죄송스러웠다. 날벼락처럼 갑자기 아프다며 집에 와서 괜히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처방받은 더 센 약을 먹어도 오히려 열은 38도까지 올랐고 팔다리 저림은 심해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식은땀까지 났다. 도저히 안 되겠다. 검사를 받기로 결정했다.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확신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상태로는 회사 출근도 못할 것 같았다.


그날 밤, 족히 10번 이상은 잠에서 깨며 제대로 잠들지 못한 채 토요일은 맞이했다.




11/7 토요일,


최대한 빨리 가서 검사를 받아야 검사 결과도 빨리 나올 것 같아 서둘러 준비했다. 보건소로 갈 생각이었는데 미리 전화를 해보니 주소지가 이곳이 아니라서 검사가 안된다고 한다. 결국 집 근처 병원의 선별 진료소로 향했다.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 말고 또 검사받으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잠깐 사이에 두 명이나 검사를 받기 위해 모였다. 괜히 더 긴장되었다.


처음엔 컨테이너 박스 주변에 아무도 안내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갈팡질팡했다. 그러다가 한 분이 나와 설명을 해줬고 링크를 통해 간단한 설문을 먼저 제출했다. 들어오라는 문자에 따라 들어가서 열을 쟀고 결제를 했다. 전화로 안내를 받을 땐 10만 원 내외가 나올 거라고 했는데 25000원대로 결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최고...


옆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로 가니 방호복을 입고 계신 분이 안내를 해주셨다. 네모칸 통 안에 앉았고 검사 봉이 코 안으로 들어갔다. 후기로 듣기로는 뇌까지 닿는 기분이라고 하는데 그 정도로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이비인후과에서 코 안쪽 깊숙이 보는 정도로 들어갔다. 안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빼내었고 그렇게 검사를 마쳤다.


후련했다. 아직 검사 결과를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조금은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집 안에서 혼자만이라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식사시간에도 말은 하지 않으며 내 몫의 음식을 따로 덜어먹었다. 열은 그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11/8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한 상태로 본 핸드폰엔 문자가 와있었다. 병원에서 온 검사 결과 문자였다.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잠이 확 깨었다. 음성!!! 음성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바로 일어나 부모님께 결과를 알렸다. 그리고 마스크는 더 이상 쓰지 않았다. 월요일에 결과가 안내될 거라고 생각하다가 하루 더 빨리 알게 되어 더 한시름 놓였다. 양성이면 문자가 아닌 전화가 온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면.. 생각도 하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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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내 일상을 뒤덮었던 일주일.

코로나 걱정 없이 평화로운 주말을 보낸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평범하고 건강한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특별한지 깨닫게 해주는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주일이었다. 실제 확진자가 되었을 때의 상황을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나와 접촉한 부모님뿐만 아니라 회사 선배들, 동기들, 그 밖의 사람들까지.. 나 또한 피해자 중 한 명이지만 그들에게만큼은 가해자가 된 것 같은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나 혼자만 아프고 끝나는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로나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보낸 일상을 반성했다. 어느 순간부터 읽지도 않게 된 안전 안내 문자와 확진자 추이, 확진자 동선. 확진된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 조심하지 않고 다녔지,라고 의문을 던지며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나무랐다.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직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하고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with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이제는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절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아니겠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괜찮겠지, 여기에 설마 확진자가 있을 리가 없잖아, 잠깐은 괜찮을 거야


나는 아닐 거라는 자기 최면을 걸며 무방비하게 지내온 날들을 반성한다.

그리고 건강하게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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