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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샘이라고 하기엔 유치하고, 체념이라 하기엔 이르다

by 여니

어린 시절, 내게 어린이날은 그저 맛있는 것을 먹고, 선물은 현금으로 받는 날이었다. 특별한 외출은 없었고, 언제나 집 안에 머물렀던 기억뿐이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를 품느라 임신중독증에 허리까지 다친 어머니는, 늘 사람 많은 곳을 꺼려하셨다. 조용하고 고요한 걸 좋아하셨던 분. 그래서일까. 그날의 나는 늘 텔레비전 앞에 조용히 앉아, 그 박스 너머의 세상을 엿보곤 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산과 들, 그리고 바다. 그 모든 풍경이 마치 텔레비전 속 장면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세상엔 참 많은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내겐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배경일뿐이었다.


길다면 긴 연휴가 끝나간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려 하지만, 다행히 월요일이 아닌 수요일이라는 위안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고 착각해 본다. 연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건 없지만, 적어도 세상과의 마찰은 잠시 멈추기에, 미뤄진 일들 틈새로 조용한 숨을 돌릴 수 있어 그나마 평온하다. 그래서일까. 하루의 끝자락, 6시를 향하는 시간이 유난히도 아쉽다. 거창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새로운 날'이라는 말은 늘 그렇게 산뜻하고 희망적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속은 온통 해무처럼 자욱하다. 시야도 마음도 흐릿하다.


사실, ‘전기현의 씨네뮤직’을 한동안 외면했었다. 예전엔 참 좋아했던 프로그램이었다. 음악도, DJ의 목소리도 다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메인음악이 나오면 마음이 더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옆지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상하게 이 프로그램 들으면 마음이 더 무거워져." 그 말 한마디로 몇 달 동안은 듣지 않았다. 그 시간에 맞춰 꼭 들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이따금 새벽일 끝나고 집에 돌아와 듣던 그 시간, 10시 즈음 오전에 유튜브로 나오던 음악은 하루의 끝과 시작 사이에서 나를 다독여주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음악들이 누군가의 여행, 풍경, 감동과 함께 흘러나오면, 그저 고개를 돌리고 싶어졌다. 다정한 추억들이 내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시샘이라고 하기엔 유치하고, 체념이라 하기엔 너무 이르다. 그저, 나에겐 그런 일이 없을 거란 막연한 쓸쓸함 때문일까.


그래도 이틀 전부터는 옆지기가 그 프로를 틀었을 때, 별말 없이 들었다. 그런 마음쯤은 이제 그저 스쳐가게 두기로 했나 보다.

나날이 강해지는 걸까. 아니면, 하루하루 조용히 포기하는 것일까. 이 감정들을 넘어서고 싶다. 그리고 그래야 한다.


어쩜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악일지도.

한 곡 추천.


*덧) 아무 곳도 내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시절을 지나고 관광공사 다닐 무렵, 가장 친한 친구와 둘이 휴가 때 처음으로 여행이란 것을 양양에 도착해서 택시로 예약해 두었던 그 예전 대명콘도(한국관광공사에 다녔기에 공사콘도로 가면 거의 공짜였지만 그 당시엔 대명콘도를 좀 알아줘서 ㅎ) 향하면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햇살은 뜨거운 25살의 우리의 젊은 시절 그때 좋아했던 노래가 택시의 라디오를 타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래서 아직도 그렇게 좋아하나 보다.

Puff Daddy [feat. Faith Evans & 112] - I'll Be Missing You (Official Mus... - https://youtube.com/watch?v=NKMtZm2YuBE&si=hvIJJyJ1mYAjEoeI


* 사진은 ChatGPT s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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