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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Nov 29. 2023

그럼에도 변함없이 내 마음이 부디 무엇보다 진실하기를



한참 전 남편이 잠시 편의점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러다 그냥저냥 시간이 흘러갔고 우리 이불은 아니지만, 옆지기의 자가면역질환으로 자주 이불커버를 빨아줘야 한다. 병원도 못 가는데 그런 거라도 해 줘야지 싶어서. 이불커버를

씌우면서 투닥투닥 거리며 말을 오고 갔는데 옆지기 하는 말,


"나한테 그러믄 안 돼--- 아까 편의점 대학생이 컵라면 사면서 젓가락도 달라고 했더니,
네 그러시죠 아버님~ 젓가락 하나 더 드릴까요? 아버님~. 했단 말이야."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난 크게 웃으면서 남편 속 긁는 소리를 한번 더 했다.

" 당신 이발할 때도 동창이라니까 사모님이 많이 어린 줄 알았다고 했던 말 기억나지? 크크 그리고 응~  내가 살은 어마무지하게 찌긴 했어도 지난 6년 넘게 스킨 크림 아무것도 한 번도 못 발랐지만 나 음.. 주름 하나 없지? 자기 이제 알겠지? 처음 만났을 즈음에 보톡스 맞았냐고 묻더니만. 이제 인정하지? 크크"

"알았다, 그래. 참나..."


우린 그렇게 잠시였지만  웃었다.
그렇게 유치하게 투닥거리며 으스댔다.
그런들 무엇하겠냐만은.  오십하고도 둘인데......
지나간 청춘이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런다고 돌아올 시간도, 돌아갈 수 있는 시간도 아닌데 말이다.


청춘이 누구에게나 그냥 알아서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 청춘들을 보면 참 싱그럽고 푸르러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지만 놓치는 것들이 있다. 그 소중한 시간들의 대부분은 미처 알지 못한 채로 지나치고 만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느끼는 것은 친구를 사귀기 쉽지도 않지만 필요도 그렇게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든 아니든 사람들을 대할 때 신기하게도 어떤 이에겐 마음이 괜히 더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 내 마음이 부디 무엇보다 진실하기를 바란다.


내가 혹은 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아무런 편견 없이 대해 주는 사람은 앞으로도 서로의 편에 서서 응원해 줄 사람이라 생각한다.


작년 겨울하고도 시끌벅적한 연말에 난 조용히 혼자 기도했다. 새해에는 어떠한 계절이 와도 기억되거나 떠오르는 사람 하나 없길 바랐다. 하지만 나는 추억에 약한 사람인가 보다. "네가 되려 언니 같아." 하며 말했던 이가  내가 힘들어지자 제일 먼저 멀리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생각조차 못 했기에 큰 상처를 준 그녀가 떠올라 미련하게 내가 나를 또 괴롭혔다.


내가 정말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한 번에 나를 마음 안에 넣어주는 사람도 아니고 밖으로 나를 몰아세우는 사람도 아니고, 그 라인 위의 어딘가에 애매하게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편의에 의해 다가오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여러 해를 거치는 동안 문득 깨닫게 되었다.


아무것도 몰라서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니고 관계가 틀어지기 싫어서 때론 "됐다 내가 하나 더 주면 되지 뭐" 하고 모른 척했던 것이다. 나 자신의 성격이 마냥 좋아 다 받아줬던 게 아니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거다하고 일일이 계산하기 싫어서였다. 지금 끼지 참아 오면서 얻은 생각은 진심이 아닌 사람까지 내가 모두 안고 가기엔 내 그릇이 그만큼 크지도 않을뿐더러 너무 작다는 것이다.


친구를... 누군가를 대할 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여건보다 그 사람의 본질이 얼마나 맑은 지 나와 결이나 생각이 잘 어울리는 지를 보는 것인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함들이 너무도 먼 아득한 꿈처럼 느껴질 때. 이 넓디넓은 세상에 새삼스럽게 혼자인 느낌일 때.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데도 아무런 힘이 없는 나를 알게 될 때. 정말 지독한 절망에서 나도 모르게 분노를 느낄 때와 같이 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의 그 선을 넘으면 사람은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내 소중한 사람들이 삶이 버거워 울음 때문에 이른 아침보다 빠르게 시작되는 날이 많아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득 생각해 보니, 내 하루하루의 삶에는 맑은 날보다 궂은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겉으로는 누구도 함부로 누군가의 삶을 다 알지 못한다.


공감이라는 말은 참 얄궂게도 너무 얄팍하다.
살아가는 것이 얇은 종이 같아서 절대로 나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자신했던 얘기가 날개가 되어 내게 돌아오기도 하고 평소에 싫다고 생각했던 모습이 어느 날엔 거울 속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다. 어제의 타인의 모습이 오늘의 내 모습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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