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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May 30. 2018

프롤로그 - 잠시 멈춰도 괜찮은가

퇴사하고 다시 이직을 준비하며, 만나게 되는 ‘삶의 여백’


9년 동안 학교를 다니듯 출퇴근했던 첫 직장과 오랜 밀당 끝에 이별했다. 인생을 놓고 보면 나는 초보 퇴사러다. 못견디는 감정에 휩싸여 뛰쳐나왔다. 회사와 관련된 키워드는 보기 싫을 만큼 치를 떨었다. 회사가 인격이 있는 생명체라면 나에겐 고마운 곳이지만 뼛속깊이 미운 증오의 감정이 있는 곳이었다.


혼자서 미워했다가 용서했다가 그렇게 2달이 흘러버렸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모순적이다. 시간이 형체가 있다면 간곡히 붙잡아두고 싶다.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보이지 않는 걸 보이는 것처럼 붙잡아두고 싶다.


회사 밖을 나와보니 왜 더 치열한 지옥이라고 드라마 '미생'에서 대사를 쳤는지 뼈저리게 공감했다. 시리도록 아픈 만큼 퇴사했던 순간을 직면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한 번 지나가버린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아는 명제다. 그런데 나는 퇴사 후 바보처럼 타인이 만든 기준에 나를 맞추는 시간을 보냈다.


머리로는 '쉬어도 괜찮아'라고 되뇌었다. 현실은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감정에 휩싸였다.


나도 다시 일할 수 있는데...

비슷한 시기에 퇴사한 L은 3주 만에 새로운 직장에 안착했다. 종종 시간을 내어 L을 만나 3주 안에 있었던 그녀만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80군데를 지원했다는 둥 계속해서 몰랐던 사실들이 튀어나왔다. 이미 나의 멘탈은 유리 상태였기에 L의 말만 듣고, 미친듯이 전에 했던 일과 관련된 키워드로 구직을 시작했다.


서류전형부터 광탈이 되기 일쑤였다. 늘 안정된 울타리에서 월급을 받아서 취준생의 마음을 1도 몰랐다. 물론 프리랜서의 마음 역시도 알지 못했다.


매일 구직활동을 하다보니 나는 이제 퇴사한 지 2달이 지났는데 마치 2년이 지난 사람처럼 굴었다. 메일함은 매일 구직사이트에서 나를 위한답시고 보내주는 지원함으로 차고 넘쳤다. 점점 힘이 빠졌다. 읽지 않고 닫아둔 게 600여 통이 넘기 시작했다.


남과 비교하니 내 자신이 초라했고 왜 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까지 내 주위에는 퇴사하고 이직한 경우의 수만 있었다. 다른 길을 개척한 이야기는 없었다. 나에게 희망을 전해줄 사례는 없었다. 온통 주위에 안정된 직장에서 월급받는 직장인들 뿐이다.


뉴미디어 시대라며 '디지털노마드', 'N잡러'와 같은 4차 산업혁명에 맞는 대안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퇴사하고 난 이후의 삶을 새롭게 계획하는 이들이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녔을 때 그래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었던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기록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한 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 사람이 내게 찾아온다는 멋있는 말이 있던데...


매주 일요일마다 취미 미술로 드로잉 수업을 가르치는 작가 아방 역시 퇴사하고 자신의 길을 찾은 이들 중 한 명이다. 나에겐 쌤이지만 그녀가 퇴사하고 지금까지 걸었던 길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도 샘솟는다.


조금만 둘러보면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삶을, 꼭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수많은 사례를 여력이 닿는 한 기록해보고 싶다.


언젠가 우리는 안정된 회사를 퇴사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직하거나 혹은 자신만의 삶을 꾸려갈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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