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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May 31. 2018

친구가 필요한 하루

퇴사하고 어떻게 지내? 마음껏 말 한마디를 못했어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하는 공백의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아침잠을 푹 잔다는 것이다. 매일 정해진 공간에 규칙적인 생활만 35년을 했으니 몸이 축이 난 듯싶다.


이전에 회사를 다닐 때도 자주 지각했다. 7년은 매일 늦었다. 사수의 성추행 이후 나는 암묵적으로 이 회사가 싫었던 것 같다. 버티려고 다녔지 즐거워서 다니진 못했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비몽사몽 간에 루이스의 도시락 아닌 그냥 밥을 꾸역꾸역 네모진 사각 반찬통에 담았다. 매일 계란 프라이를 먹어야 한다길래 눈곱 낀 눈을 비벼가며 겨우 계란을 구웠다. 루이스의 출근을 돕고 다시 잠들진 않는다. 사실 잠이 오진 않는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한다. 오전 10시 정도 집을 나선다. 오늘 아침은 건강한 빵의 맛있는 식빵 2조각에 크림치즈를 듬뿍 발라 와그작 거리며 씹어먹었다. 피사체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 사진을 찍고 재빨리 드로잉을 연습했다.


강약 중강 약
강약 중강 약약

선의 굵기에 따라 피사체의 결이 달라진다. 연습을 하면서도 도대체 "예쁘게 단순화"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오전 11시부터 테이크아웃 집답게 카페 문을 활짝 열고 활기차게 장사를 도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안타깝게도 이것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4잔에, 아이스 말차라떼 1잔이요"

- 만 원입니다.


열심히 음료를 제조하지만 제대로 돌아오지 않는 현실은 암담하다고 해야 하나. 약간의 막막함이다. 자영업자들에게도 밝은 빛이 찾아올까?


피크타임이 지나고 아침을 적게 먹었는지 허기가 찾아왔다. 혼자 밥 먹는 게 미치도록 싫은데, 오후 2시까진 손님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밥 먹으러 나갔다.


'오늘은 뭐 먹지?'

- 김치 맛이 일품이었던 장수칼국수로 고고


혼자 가기에 적당한 가게다. 오늘의 칼국수에는 몽글몽글한 새우들이 알알이 들어가 있었다. 잘 익은 밥과 갓 담은 배추 겉절이 그리고 천연 조미료들로 맛을 낸 맑은 칼국수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 다른 반찬이 있어 무엇하리. 배를 두들기듯 알차게 가득 위장을 채우고 돌아왔다.


시간이 남으면 직장을 다닐 땐 산책도 하고 마트 가서 물건도 사는 게 낙이었는데, 퇴사 후 카페 보조를 하면서는 밥만 먹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야 한다. 안타깝지만 암묵적 룰이다. 


하루에 5시간 정도 일한다. 그게 적당한 시간인 것 같다.


버스 정류장 근처 냉면전문점은 9천 원에서 7천 원으로 값을 내렸다. 장사가 무척 안되나 보다. 장사라는 자영업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장사 체질이 정말 따로 있을까?
 

장사가 안되면 주인은 운영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가격밖에 없어 보인다. 그게 비슷한 입장이 놓인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한 번 내려간 가격은 올리기가 어렵다던데... 눈물을 머금고 주인은 자신이 만든 것들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손님의 지갑을 여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일단 사람을 끌어모은 후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해도 늦지 않다.


집으로 돌아와 이직 준비를 하는 대신에 잠시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마음의 결이 바뀌고 나선 할 일이 없어졌다. 졸려서 잤고 배고파서 어제 먹다 남은 과자를 먹었다.


분명할 일이 많은 듯한데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은 흘렀고, 저녁 준비를 했다. 나는 밥을 먹었고 마스크를 낀 채로 산책을 했다. 자연에 둘러싸인 곳을 걷고 싶었는데 녹록지 않다.


매일의 마무리는 귀여운 뚠뚠이 마르 드로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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