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후조리원 상담 후기
D-82, 가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어느새 8개월이 흘렀네요. 출산이 임박해올수록 280days 어플을 자주 열어서 확인해요. (많이) 무섭고 떨려요.
전에 오프라인 매체를 만드는 일을 6년 동안 하면서 남들보다 한 달씩 앞당겨 살았어요. 그래서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첫사랑이었던) 남자 친구가 군대 갔을 때도 커버 섭외 12번만 하면 되는구나 뭐 이런 식으로 계산했을 정도였거든요. 지금 적고 보니 (특이한) 독종이었네요.
산후조리원 예약 혹은 상담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약 세 달도 남지 않은 기간을 앞두고 이제야 제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여야 하는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신호등 건널 때마다 보이는 곳에 산후조리원이 있어요. 가볼까 말까 아니면 전화로 할까 하다가 오늘은 필 꽂혀서 상담을 받으러 갔어요. 그런데 말이죠.
상담해주는 나이 지긋한 중년의 그녀는 "내가 해봐서 말인데"라고 하면서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전화로 얼굴보지 않고 상담할 걸 그랬어요.
의문 1. 어떤 일이든 장점과 단점이 꼭 그렇게 이분법처럼 존재할까요?
현재 다니고 있는 병원에선 검진만 받고, 출산은 조산원에서 하려고 한다라고 입을 연 순간, 산과 관련 지식권력을 가진 의료진 앞에서 나는 다른 사람처럼 취급받아요. 산모에게는 행복한 출산을 할 권리가 없는 가련한 녀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려요.
첫 출산이고, 임신출산육아대백과를 읽은 것도 아니고, 5개월 때까진 워킹맘이었고, 아기보다 나 자신이 아직 소중한 자기애넘치는 그런 평범한 30대 녀성이기에 나이 지긋한 간호사의 한마디 아니 열 마디가 무서움으로 다가왔어요.
뒤돌아서 집으로 오는 5분 동안 불쾌해진, 아니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를 읽으면서 더욱 명확한 감정 앞에 정신 차리고 남은 기간이라도 공부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의문 2. 얍쌉한, 잔머리 굴리는 산모들의 선택이 수술이라니...
의료진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그녀는 자신을 지나쳤던 수많은 요즘 산모를 의지박약한 인간 군상처럼 묘사했어요.
그녀는 같은 여성임에도 여성을 도구화하는 것 같은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너와 나만 있으니까 인생 선배랍시고 이야기해줬어요.
자연분만을 하거나 40대 이후 여성은 질이 늘어난대요. 그래서 남편을 위해 이쁜이수술도 하고 그런대요. 자연분만하면 질이 너덜너덜해진대요.
제왕절개 하면 아기 두상이 예쁘게 나온대요.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약은 산모들은 의사 선생님한테 "선생님 같으면 어떤 걸로 아이를 낳으시겠어요"라고 이렇게 해가지고 "수술하죠"라는 답을 얻는대요. 질도 깨끗하대요.
자연분만을 하면 '3대 굴욕'이라고 관장, 제모, 회음부 절개를 한다고 해요. 전에 진료받았던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에 의하면 서양사람들과 동양사람들은 골반 크기가 달라서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대요.
그러면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도 그렇고 중년의 간호사 분도 그렇고 "돈이 얼마나 된다고".... 산부인과도 돈 벌어야죠. 네, 하지만 상담받는 산모인 제가 들을 이야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산모들이 인터넷에서 정보만 믿고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둥,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건 산모는 안물 안궁 아기를 위해서만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네, 알아요. 중년 간호사인 그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본인 몸에 맞게 해라! 누구 말 듣거나 그러지 말고 자연주의 출산 고집하다가 아기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면 안 돼~
일을 쉬고 있다고 했더니 막달 되면 쪼그리고 걸레질 많이 하래요. "저 카페 일 돕고 있어요"라고 했는데 서서 하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된대요. 일하는 엄마들이 활동성도 좋고 일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 대해 타인에게 이렇게 까이네요. 일 안 하는 산모도 열심히 운동합니다! 간호사님 쩜쩜쩜
의문 3. 초산은 무조건 2주는 있어야 하나요?
제왕 절개한 엄마들은 1주 정도 조리원에 있는대요. 초산은 거의 2주라고 하네요. 둘째 낳은 엄마들이 1주일이 있는대요.
산모가 원하는 대로 상담 방향을 잡아주긴 하셨는데...
초산은 쉽지 않나 봅니다. 첫 임신도 부담과 기쁨의 감정이 교차하는데, 출산도 만만치 않네요. 모른다고 당하면 꼴좋은 호구가 되겠죠. 그렇게 살 순 없죠. 안 그래도 가만있으면 코를 베어가려는 사람들 천지인 걸요.
의료적 권력이 있고 분야 전문가는 자신이 가진 걸로 마구 칼을 휘둘렀다고 생각했어요.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를 읽으면서 그 간호사 분이 산모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그냥 저는 산후조리원에 몇 백만 원 내고 잠시 거쳐가는 (수많은) 애 낳은 녀성 중 한 명이겠죠.
예약금을 걸어놓고 나오면서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네요.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을 수 있다면 안 가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답답한 건물에 둘러싸여 편하게 쉴 수 있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뱃속에서 느껴지는 태동은 신기하기만 한데 부담도 많이 되네요. 공부하기 위해 <농부와 산과 의사>를 읽어봐야겠어요.
출산 계획서도 써두고요. 아기와 산모가 소외되지 않는 출산을 꿈꾸며. 어쩌면 유토피아를 꿈꾸는 건 아닌지.
서울아기 건강 첫걸음 사업 이런 것도 있더라고요. 그것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우리나라는 산후조리원 이런 것들이 민간사업이라 돈이 많이 든대요. 진짜 많이 들어요. 산후조리원은 2주 정도 있으면 240만원 이렇게 되거든요.
후유, 걱정이 한바가지 됐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저도 태어날 생명에게도 좋은 출산으로 기억되길 기도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