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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n 02. 2018

마음 다해 대충 사는

퇴사하고 읽는 책 - 안자이 미즈마루

잘 쓰려고 하면 더 써지지 않습니다.
항상 아무 생각 없이 휘리릭 써버립니다.  



퇴사하고 배우고 싶었던 드로잉을 취미로 시작했다. 무언가 시작하면 늘 최선을 다했기에 내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힘주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싶은 건 아무것이나 그리도록 해주지만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은 진지하게 무엇이든 대하는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다.


좋은 의도로 열심히 하는 건 늘 응원하지만 삶의 균형이 무너진 사태에 대해선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할 것 같다.


퇴사하고 호기롭게 이직을 준비하는 여백의 시간을 기록한다. 여백의 시간은 불안한 마음을 어르고 달래는 무수한 것들로 채워진다.


80일 후면 여성에서 엄마라는 거대한 담론 앞에 변화를 겪어야 함에도, 나는 이직 성공을 하고 싶다. 누가 배불뚝이 산모를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 2개월 후면 '아'를 낳으러 가야 하는데 말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사람처럼 군다. 그럴 때면 만사가 다 귀찮다. 아무것도 의미 없다.


취미로 시작한 드로잉도 잘 했으면 좋겠고, 브런치에 글도 잘 쓰면 좋겠고, 루이스의 카케도 먹고살 만큼 잘 되면 좋겠고, 이직도 성공했으면 좋겠고...


내 인생의 꽃길만 있으면 좋겠다. 그림 그리는 일에 힘이 실려 잘 해보려고 용쓰던 찰나에 <힘 빼기의 기술>에서 안자이 미즈마루에 대해 알게 됐다.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 그린다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대충하면 큰 일 날 것처럼 굴며 살아온 삶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삶은 나에게 약간의 균열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림을 그리는 미즈마루 씨에게 '좋은 그림'은 자신이 만족하는 그 순간이면 된다고 한다. 그에 비해 나는 늘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길 (미친 듯이) 갈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 꽤 잘 나가는 스타트업 마케터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나도 잘할 수 있는데'와 같은 의미 없이 흘러가는 마음은 비교에서 오는 잘못된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에도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나만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순간도 찾아온다. 왜? 나는 남들보다 내가 훨~씬 잘 쓰고 싶기 때문이다. 잘하려고 힘이 들어간 그 마음 때문에 결국 더 잘 되지 않는다. 글 하나 발행하는데 오들오들 거리고, 보고 또 본다고 일취월장할 일도 아닌데 말이다.  


첫째로 태어나서 무엇이든지 잘 해내야만 했던 인생의 삼분의 일. 그렇게 살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힘주는 것만 알지 대충하는 법도 모르고 참 인생 피곤하게 산다.    


내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도 붙어있지 않고 오롯이 내 이름만 있는 지금 기록해두는 모든 것들이 소중할 것이다. 스무 살 때, 어디 학교 학생이었던 그 시절에 내가 블로그에 하나둘 씩 남겼던 순간들이 결국 나를 만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책에 대한 짧은 총평


무라카미 하루키 책에 삽화를 그린 이가 궁금한 이들에게 휘리릭 읽어볼 만한 에세이집이다. 나도 이렇게 그릴 수 있겠다는 마음을 준 작가의 대충 그린 그림은 인사이트가 크다. 경쟁사회에서 늘 뒤처지면 안 되는 삶만이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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