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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n 01. 2018

생겨먹은 대로 살려고요

퇴사하고 읽는 책 - 자기다움

먹고사니즘을 해결해주었던, 신보다 더 끈끈했던 회사를 퇴직했다. 불안감이 엄습할 때마다 끊임없이 책을 읽는다. 거의 쉬지 않고 매일 본다. (나답게) 살고 싶어서 읽는 느낌이다.

멘탈은 유리보다 더 얇아져서,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할 힘이 없었다(지금은 회복세인 줄 알았는데 자존감은 아직 바닥이다). 사람을 만나고 나면 왜 이렇게 나는 못난 인간인 것인지, 부정하는 감정에 휩싸인 내가 싫어서 사실 아무도 만나고 있지 않다.

매일 썼던 소비 총량의 법칙 때문인지, 아직 퇴직이 실감 나지 않아서인지 돈은 카드로 쑥쑥 잘도 긁는 나를 마주한다.

회사에서 젊음의 시간을 팔고 받은 노동의 대가로 9년이라는 시간과 맞바꿨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깨달아가고 있다. 물론 누군가에겐 이 말이 무척 당연하겠지만 나에게는 신의 사명, 비전 거창한 것들과 맞물려 내가 청춘을 맞바꿨는지 아니면 그냥 버티었는지 무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글이 쓰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글은 수단으로,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도구라는 당연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리더의 바뀜과 연관이 깊다). 나는 왜 그곳을 다녀야 하는지 길을 잃어버렸던 것 같다.

물론 시간과 맞바꾸며 돈과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는 여러 순간을 용케도 잘 넘겼다. 지금은 털어봤자 나오는 것도 없고 개털 같기도 하고, 취준생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구직하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같은 종교인들에게 나는 안일하고 따뜻한 밥상머리가 있는 안락한 공간에서 신에게 이렇게 기도하라는 둥, 청년취업 문제를 불구경하듯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언제나 남의 고통보다는 내 아픔이 제일이니, 막상 겪어보니까 무시무시한 공포감과 함께 어떤 자괴감이 하루에도 수시로 몰려온다.

회사에서 보냈던 시간 동안 나의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타인에게만 물었던 것 같다. 타인은 내 질문에 늘 성실히 답을 해줬건만 정작 나는 그 답을 들었음에도 내 답을 찾을 생각을 당시엔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권민 작가의 책에 엄청난 '자기다움'이 있진 않았다. 그것만 잃으면 잃어버렸던 내 자기다움이 짜잔 하고 나에게 나타나 주진 않는다. 그냥 톡 하고 '이런 게 자기다움인데 찾아가는 여정은 너한테 달렸어'라고 말만 해준다. 이미 권 작가는 자기다움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자신의 생을 살아왔고, 일개 독자인 나는 찾으려다가 못 찾고 찾아놓은 작가의 책을 끼적이고 있으니 말이다.

'자기다움', 그냥 내가 생겨먹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회사에서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생겨먹은 대로 살면 멍멍 욕을 처먹으니, 생겨먹지 않은 것들을 학습이나 사수들의 꼰대 짓과 함께 녹여내며 살았다면, 돈을 벌지 못하는 대신 내 시간을 확보한 지금은 이제야 생겨먹은 대로 살 수 있는 여유가 주어졌지만 아직까지도 시스템의 옷을 벗지 못해서 빙구처럼 지내고 있다.

어떤 주부는 책 많이 읽고 책도 쓰고 자신의 색을 찾기도 하던데 과연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것인가는 늘 의문이다. 10년 이상 글을 쓰면 엄청청 글을 잘 쓰는 내가 되어있을 줄 알았더니, 정리만 했지 정작 글을 쓰며 살았는진 모르겠다.  


밑줄 그은 부분

1. 누군가와 자기를 비교하지 않는 순간, 인생의 실패와 실수는 과정이 되고 부족함은 자기다움을 찾는
나침반이 된다.

> 비교는 퇴사하고 유리멘탈일 땐 최악의 상황을 주는 감정이다.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뭐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쩝.

2. 내 안에서 어설픈 자기다움을 찾는 대신에 자기답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내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 언젠간 나와야 할 회사이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나왔다고 자책하진 말자.


책에 대한 짧은 총평

자기계발서라서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엄청난 내용을 기대하지 않기.


다른 것들로 채워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한 시점에 보면 도움이 되겠다. 가볍게 쓱 쓰여 있어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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