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애니 Sep 25. 2018

오늘도 사자후를 하는 이유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그래

육아가 시작되고 사자후라는 단어를 알았다.

사자후 즉 사자가 울부짖는 소리란다.

세상에 태어난지 어언 40여일인 생명체와 매일 밤 잠재우기 전쟁이다. 내가 살기 위해 통잠을 시도하며 지치는 나를 마주하는 건 아이러니다.

아기와 소통가능한 말은 답이 이미 나와있는 세가지다.
- 배고프다
- 기저귀가 축축하다
- 졸리다


위의 세가지를 충족시켜주기가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렵다. 초보라서, 처음이라서, 준비가 덜 돼서 그런걸까?

졸린 생명체를 재우다 마음처럼 쉽사리 잠들지 않아서 악악 성질대로 소리를 지르고만다.

어제도, 그제도, 거나하게 목욕을 하고 배 두둑하게 분유를 먹이고 떡실신을 기대했다. 그대로 되지 않아서였을까?

집이 떠나가게 아기가 울도록 내버려두고 싶었다. 제풀에 지쳐서 잠들길 원했다. 층간소음 때문에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아기를 달래야 했다.

달래다 한계점이 오면 이대로 생명체를 죽일 수도 있겠다 싶다.

꼭 녀석을 볼 사람이 나밖에 없을 때 이런 사단이 난다.


오늘 또 실수하며 자책하며 겨우 재웠다.


누군가에겐 때릴 곳 없는 아기지만 울음이 제어되지 않아서 엉덩이를 세게 때리고 마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휘리릭 하고 풀 속싸개를 팍 풀어서 녀석이 엎드려졌다. 순간 정적 1초 후 자지러진 울음을 또 달래기 바쁘다.


입도 살짝 손바닥으로 덮어 막아보았지만 더 커지는 울음에 포기한다. “걍 울어”라고 하다가 나도 울고 싶어진다.

처음 하는 일들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겠지.

내 뜻대로 되지 않은 녀석을 향해 스스로 짜증이 한계치에 달한다.


신앙적인 문제에서도

삶의 문제에서도

정체성은 중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의 자녀라는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으면 살만하다고 배웠고 들었다. 내 삶의 적용하기란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한지 모르겠다.


요즘 내 정체성이 육아하는 잉여처럼 느껴져서 자주 빡침이 올라온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결국 타인을 찌르는 칼이 된다. 진짜 못났다.

내 힘으론 (더욱) 어려운 육아
기도가 나온다. 도와주소서 엉엉

육아하는 잉여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내 존재만으로 얼마나 스스로
귀한 사람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길

신은 나에게 바라는 것일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란듯이

잘 헤쳐나가고 싶다

인생에서 언젠가는 누구나 겪을 타이틀없는 시간은 찾아온다. 내게 찾아온 지금의 시간은 스스로 반짝이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한탄하며 불안에 떨면 내 삶이 슬퍼지기만 하잖아.

작가의 이전글 내 삶으로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