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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an 13. 2019

편하게 싸돌아다닐 여유

자유를 누리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작년 8월에 아기를 출산했다. 불볕더위에 시달리며 마지막 달을 출산의 두려움과 기대함으로 보냈다. 이제 아기를 키운 지 어느새 4개월 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아기를 낳곤 다음으로 ‘둘째도 낳아야지’라는 소리를 듣는 중이다. 아기의 예쁜 짓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다음 출산은 없는 일’이라는 다짐이 흔들린다. 올해 유독 주변에 둘째를 낳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나는 혼자 자랄 아기의 외로움에 걱정이 앞선다.


출산이 유익한 경험이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아직까진 부정적인 마음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나는 조산원에서 자연주의 출산으로 둘라(출산을 전문적으로 돕는 사람)와 함께 아기를 낳았다. 관장, 제모, 무통주사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생생한 진통을 감내하며 8시간 산고 끝에 아기를 만났다. 


내 핸드폰에는 출산할 때 둘라가 찍어준 영상과 사진이 남아있다. 아직까지 그것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보지 않을 거면 당장 지우고 싶지만 또 낳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극약처방으로 꺼내보려고 남겨두었다. 신이 두 번째 출산을 부득이 나에게 허락한다면, 제왕절개를 선택하겠다.


여성에게 먹이고 씻기고 돌봐야 할 아이의 수가 줄어들수록글을 읽고 사색하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여유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자유를 누리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아름다운 외출, 155)


아기와 내가 분리될 여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글을 쓰고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을 집중해서 해내고 싶다. 출산 후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아기가 귀엽지만 나는 또 출산을 하고 싶진 않다. 누군가에겐 사소하지만 내게는 큰 이유 중 하나인 외출의 제약 때문이다. 나에게 외출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움’의 의미였다면,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로 외출을 꺼리게 된다.


비루해진 몸뚱이는 출산 후 늘어난 뱃살만큼 피곤하면 앓아누울 준비를 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나갔다오면 다음날 컨디션이 좋지 않다. 얼마 전에는 책을 반납하러 10분 거리 도서관에 외출했다가 감기에 걸려 다음날 몸이 아팠다. 출산하기 전까지 꾸준히 운동을 했다. 다져놓은 속근육은 출산과 함께 잃어버렸단 생각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산후조리 하느라 운동을 못하고, 어느 정도 회복되니 아기 보느라 운동할 여건과 체력이 받쳐주질 않는다. 


아기의 몸무게가 무거워지고 키가 자랄수록 외출은 나에게 부산스러운 일이 됐다. 3일 동안 집에만 있어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일상이다. 요즘 같은 날씨엔 나가고 싶어도 추워서, 미세먼지가 많아서 집순이가 되어간다. 


육아하는 엄마들의 외출가방에는 아기 물건으로 가득하다. 그나마 나는 아기를 유별스럽게 키우지 않으려고 분유랑 기저귀, 물티슈만 챙긴다. 정수기 물로 분유를 타도 괜찮고, 다 함께 앉는 방석 위나 맨바닥에 아기를 눕혀도 난 괜찮았다. 하지만 보건소에서 연결해준 같은 달에 출산한 엄마모임에 나갔더니 베개, 기저귀 깔개, 이불, 보온병, 여벌의 옷 등 나보다 가지고 나온 게 많았다. 나를 위한 외출인지, 아기를 위한 일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출산하기 전, 자유로운 몸이였을 때, 4년 넘게 퇴근하고 스쿼시를 배웠다. 집-회사-탄천종합운동장을 학교시간표처럼 짜서 다녔다. 운동을 가지 않는 주말에는 친구를 만나 핫한 맛집이나 인스타그램에 나올 법한 카페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집이 성남이었는데 매주 주말 1년 동안 연남동에 있는 라자요가를 다니기도 했다. 회사다닐 때, 내 직업은 기자였다. 평일에는 자기계발을 위해 교정교열을 배우고, 인생의 2막을 대비하며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과 제빵기사기능사를 따려고 요리학원을 다녔다. 


대부분 내 일은 인터뷰이를 만나러 대중교통을 이용해 미팅장소를 가는 일이었다. 한 달에 한번씩 오프라인 무가지 매체를 만드는 일이라 2주는 사무실에서, 나머지 2주는 외근을 했다. 그런 일을 9년 동안 해왔던 나는 임신했을 때 리더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질 못하고 퇴사했다. 


퇴사하고서도 회사다닐 때 하지 못했던 일을 시도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취미미술을 배웠고, 남편의 장사를 도왔다. 출산을 2주 남겨놓고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외출은 나에게 성장과 배우는 과정이자 즐거움이었다. 끊임없이 나는 배우기 위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집에만 머무는 지금의 육아는 자유롭지 못한 합당한 이유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아기의 컨디션, 날씨, 주변 환경까지 생각하다가 지쳐서 집에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가고 싶은데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툭하면 소리 지르고 화내는 일이 잦아졌다. 아기에게 분을 뿜는 나를 보면서, 출산하고 육아는 두 번 하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와는 상관없이 잘 웃어주는 아기를 대할 때마다 미안해진다.


아기와 자유로운 외출이 되려면 나에게 능숙한 운전솜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번잡스러운 짐을 가지고 다니려면 운전은 필수 아니겠는가. "운전을 못하면 차를 끌고 나오지 말아야지"라고 무례한 이를 만났을 때 해야 할 말도 생각해둘 참이다. 그리고 저질체력을 개선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전에 했던 요가를 등록하는 게 좋겠다. 아기가 커갈수록 나갈 일이 많아질 테니 외출할 체력을 키워놓아야 하지 않을까. 여건과 상황이 허락한다면 어린이집에 아기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아 태어날 때부터 넣어두라고 하던데 지금이라도 입소대기신청을 해두어야겠다. 아기로부터 외출권이 나에게 확보된다면 엄마 신분이 아닌 내 이름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했던 글쓰기를 잘 갈고 닦아, 제2의 직업으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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