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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Aug 14. 2021

그리웠던 하루가 쌓여가네

5문장으로 쓴 일상.ZIP

<헤어스타일>

삶이 뜻대로 잘 안풀릴 때 나는 종종 머리를 잘랐다. 2019년 12월 31일에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곤 쭉 짧은 머리를 고수 중이다. 원래 가는 동네미용실은 예약이 차서, 대안책으로 2년 전 그 미용실을 검색했다. 코로나19에도 아직 살아있어서 다행이었다. 오는 7월부터 커트비용도 인상된다고 하니, 괜히 더 가고 싶은데 망설이다 못갔다. 세상에 미용실은 많다. 결국 나는 새로운 미용실을 뚫었다.


<왜 빙수는 배부른가> 

머리를 잘라도 기분이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 현대백화점의 밀탑빙수가 먹고 싶다. 오늘 갈까하다가 주말에 가려고 미뤘다. 사실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는데 배터지기 직전까지 먹는 그 느낌은 싫다. 혼자 먹기좋게 1인 빙수도 나오면 좋을텐데, 그렇게 팔면 일하는 대비 남는 게 없어서 그런걸까.


<저 남자는 뭐가 잘난거지?>

길거리에서 부부가 심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왜 싸우고 있을까? 고성과 욕설이 오갔다. 지나치기 무서울 정도로 험한 단어가 들렸다. 나 역시 싸울 때 그러니까 보고도 못본 척했다. 남자는 여자를 때렸고, 도저히 못살겠다고 말했다. 남자는 뭐가 그렇게 잘난 걸까 싶었다.


<내 마음의 고향, 엄마집>

날씨가 계속 후덥지근하다. 잠깐만 외출하고 돌아보면 땀이 끈적하게 묻어난다. 왜 이렇게 덥나 싶더니 7월 2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내일은 친정집으로 피신갈 계획인데, 친정 도착해서도 비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건가. 장마는 싫은데…그래도 내가 사는 집이 아닌 엄마집이니까 여기보다 덜 답답할 듯싶다.


<감정스위치>

감정을 조절하는 스위치가 내게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육아와 일 사이를 줄타기하면서 감정이 치고 올라왔다. 감정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해결책으로 나는 아주 매운 로제떡볶이를 주문했다. 감정이 올라오면 나는 모든 일을 대충한다. 부글거리는 감정에 꺼지는 스위치가 시급하게 필요한 하루.


<엄마여도 보살핌은 짐>

친정집에 오면 마냥 편할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였을까. 공식적인 명절이나 휴가 외에 친정집 방문이 자유롭지 않아졌다. 챙겨주느라 힘들다고 말하는 엄마의 말에 괜히 감정이 미묘하게 스크래치가 난다. 쉼이 필요했다면 호텔이나 리조트, 템플스테이 이런 데를 갔어야 했다. 여러모로 생각이 짧았다. 다음에는 호텔이나 여행 등 친정집 외에 다른 선택지도 염두해야겠다.


<명동에서 지난 1년>

1년 전 이맘때쯤 다녔던 명동의 스타트업. 지갑에 그때 미리 사둔 점심 식권이 남아있었다. 명동에서 점심값 아껴보겠다고 근처 구내식당을 폭풍검색했던 기억이 난다. 한진빌딩이랑 가톨릭회관 구내식당을 이용하면 5~6천 원으로 점심이 해결됐다. 메뉴가 복불복이었지만 고민하지 않고 챙겨주는 걸 먹어서 좋았다. 오늘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게 귀찮아서 그 식권을 쓰려고 버스를 탔다. 명동에 간 김에 분식집인 명화당에 들려 떡볶이랑 김밥도 사야겠다. 우리집 근처에도 몸만 가면 되는 구내식당이 있으면 매일 갈 텐데…


<어느 곳에나 있었던 차별> 

나는 4남매 중 K장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빠의 집안은 딸만 있는 걸 싫어했던 건지 반드시 아들이 있어야 하는 분위기였다. 딸과 아들 차별이 공기처럼 당연한 집안에서 자라서 나는 아빠를 미워했다. 관계도 서먹하고 거의 엄마랑 소통하며 자랐다.


<결혼하고 달라진 온도> 

이번에 친정에 갔을 때, 엄마가 나에게 출가외인이라는 둥, 힘들다는 둥 온갖 불편함을 표출해서 편히 있다오질 못했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만큼은 내 처지를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생각이었다. 챙기는 삶에서 누군가에게 챙김받고 싶었는데, 그것이 어쩌면 내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서울에 있는 동생을 안 챙긴다고 이기적이라며 잔소리를 했다. 나는 장녀가 싫고 누군가를 챙기는 게 정말 귀찮다.


<거리두기 4단계라니>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되니까 일상의 균열이 이전보다 훨씬 심각하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 가정보육을 결심했지만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도 쉽진 않았다. 남편의 카페는 아르바이트생이 필요없을 만큼 손님이 줄었다. 2주가 지나면 3단계로 거리두기가 완화될까? 정부가 수많은 핑계거리를 근거로 여름휴가철인 8월까지 이어질까봐 두렵다. 코로나가 시작된 작년보다 올해 체감하는 경기가 정말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그걸 하는 순간에는>

수영하는 순간에는 수영을 할 뿐이다. 수영하는 도중에는 갑자기 10년 전 일을 떠올리지도 않고, 문득 누군가를 그리워하지도 않는다. 알 수 없는 불안을 부풀리지도 않고, 스스로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수영할 때는 수영만 한다. 때로는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한다.


<너와 걷는 길>

아이와 산책하는 순간, 나는 작은 보폭에 맞춰 가장 느리게 걷는 사람이 된다. 아이에게 속도를 맞추는 중에는 내가 얼마나 빨리 걸을 수 있는 사람인지 잠시 잊어버린다. 길을 가는 개미도 봐야 하고, 하늘에 뜬 달도 챙겨야 한다. 물 흐르는 소리, 개짖는 소리, 경찰차 소리 등 듣고 이야기해주고 할 게 많다. 아이와 산책할 때는 잠시 아이의 세계에 머문다. 때로는 그 경험이 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일과 육아 위험한 줄타기>

오후 7시에 들어온다는 일이 1시간 20분이 지나 들어왔다. 아이는 재워달라고 해서 옆에 누웠지만 아무리 토닥여도 쉬이 잠들지 못했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이를 재우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결국 나는 협박하는 단어들로 아이를 울렸고 일은 피곤해서 대충 했다. 마트가서 잘근잘근 씹어먹는 주전부리를 구매하므로, 차오르는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작아지는 일의 의미> 

오늘은 온전히 육아하며 하루를 보냈다. 한가지만 집중하니까 다른 날보다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거라는 생각에 악착같이 구하고 시작했던 일. 육아만 할 때는 그것이 주는 의미가 일보다 작게 느껴졌다. 현실육아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일이 주는 의미가 내 삶에서 희미해지는 것 같다. 한 사람을 온전히 양육한다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울지마 제발 부탁이야>

아이가 울 때 나는 그 순간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아이를 다그칠 때 “뭘 잘했다고 울어”라고 말하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 내게 운다는 행위가 잘할 때만 울 수 있는 어떠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잘 우는 아이가 부러운 걸까. 남이 우는 건 언제쯤 받아들이는 게 괜찮아질까.


<오랜만이야> 

친구처럼 지내는 아는 동생이랑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1년 만에 살던 빌라가 나가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그걸 시작으로 1시간 넘게 통화한 것 같다. 요즘 무덥고 답답해서 자꾸 서울에서 탈출하고 싶다. 지인과 수다로 잠깐 막힌 숨을 돌렸던 하루.


<분실>

아침에 썼던 카드지갑이 어디로 갔을까. 오후에 마트가려고 찾았는데 안보인다. 카드지갑에는 체크키드 3개랑 운전면허증이 있는데, 안보이니 곤욕스럽다. 일단 마지막 사용처인 마트 분실문로 떨어뜨렸나 찾으러가야겠다. 카드마저 있다가 없어지니 무척 불편하네.


<서울 떠나고 싶다> 

마음이 붕 떠있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한귀퉁이인데, 자꾸 이곳을 떠나고 싶다. 논밭 혹은 초록숲이 가까이 있는 환경에서 살고 싶은 건 희망사항이고, 먹고사는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붕뜬 마음이 괜찮아질까. 배가 불러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애먼 소리를 하는 건가.


<웃픈 옥수수밥>

미리 불린 현미와 흰쌀에 정종을 넣어 밥을 안칠 차례였다. 갑자기 옥수수밥이 생각나서 팝콘용 옥수수 한 움큼을 집어넣었다. 압력밭솥의 뚜껑을 열고 알았다. 팝콘용 옥수수는 밥을 지을 용도가 아니란 걸 말이다. 결국 숟가락으로 옥수수를 골라내고 헛웃음이 나왔다.


<부부는 남>

남편의 힘듦을 눈가리고 아웅하듯이 외면하고 싶다. 내 일상도 어그러져 힘에 부치니까 타인의 아픔도 못본척 하고 싶다. 사실 남의 아픔에 크게 잘 공감하지 못하는 편이다. 약간의 거리두기 하며 살았던 내 성향상 결혼과 육아 자체가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다. 반대로 만나야 잘 산다고 하던데, 완전 거짓말같다.


<고마운 날>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아침 일찍부터 연락해 친구에게 다녀왔다. 이런저런 이야길 하다보니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실컷 했다. 한동안 소리내어 말하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들이 발화되니까 좋았다. 그동안 묶혀둔 것들을 공감해주는 상대가 있으니 말이 술술 나왔다. 아무생각없이 놀고 온 하루를 에너지삼아 남은 날들도 잘 보내야겠다.


<티켓 주문 실수> 

종종 나는 마음이 급할 때, 타야할 열차를 반대로 타거나 엉뚱한 티켓을 예약할 때가 있다. 어젯밤, 영주에서 서원주로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제 시간에 맞추려고 역 근처에서 분식으로 배를 채웠다. 정해진 시간에 예매한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승차권 확인을 하는 역무원. 알고보니 내일 표로 예약을 잘못한 것이다. 이미 기차는 떠나고 있고 50% 추가비용을 내곤 목적지로 향했다. 종종 나에게 일어나는 일.


<꽃과 바다>

오랜만에 미술관에 갔다.윤중식 작가의 <꽃과 바다> 앞에 멈춰섰다. 강한 색채 대비와 단순함에 시선이 갔다. 꽃과 바다를 대비시켜 생각했던 적이 없어서 신선했다. 작가의 작품처럼 내 삶도 강하면서 단순함이 잘 어우러지면 좋겠다.


<잘가라 케이티>

십년 넘게 사용한 KT에서 알뜰폰 SK7모바일로 바꿨다. 매달 3만5천 원 정도 납부하는데 1년이면 42만 원을 KT에 충성했다. 받는 혜택은 베스킨라빈스에서 제일 작은 아이스크림 할인받는 정도였다. 알뜰폰 요금제와 KT요금제를 비교하니 통신비가 과하단 생각이 들었다. 통신비라도 아껴보자는 마음으로 1만 원도 안되는 요금제로 갈아타기를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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