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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Dec 20. 2022

도시에서의 3평 땅, 혜택이 어마어마합니다

땅을 건강하게 돌보는 텃밭 가꾸기 1년...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감응의글쓰기 학인들과 오마이뉴스에서 [소심한반전] 그룹으로 2달에 1번 꼴로 연재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첫 연재(?) 원고네요! 땅스농장의 경험을 잘 기록하고 싶었는데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텍스트를 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고마운 순간이었어요. 쓰는 삶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게 작은 힘이 모아지는 느낌입니다.


소심하지만 반전인생을 살고 있는 혹은 반전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편집자말]


2021년 9월, 우연히 지인이 텃밭 농사에 참여한 사진을 봤다. 바로 농장 인스타그램을 구독하고, 지난 3월 3기 모집에 참가 신청을 했다.


이 농장은 러쉬 채러티팟(화장품 브랜드 러쉬는 핸드&바디크림 채러티팟 제품을 판매하고 부가세를 제외한 판매금액 전액을 인권, 동물보호, 환경분야에서 애쓰는 소규모 비영리단체 지원에 사용하고 있다)의 후원을 받아하는 것으로 땅과 나, 지구를 살리는 탄소농업으로 진행하는 기후위기 캠페인이라고 했다.


나는 마침 기후위기를 실천하기 위해 일상에서 텀블러를 사용하면서 소소한 실천을 하던 중이었다. 탄소를 땅에 돌려주는 농사 방법으로 기후위기도 실천할 수 있다고 하니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러나 당시 내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나는 새로운 회사에서 수습 기간이 시작됐고, 5살이 된 아이도 새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그래도 농사를 짓고 싶었다. 탈서울을 꿈꾸며 고향 여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당장 할 수 없었다. 남편 직장이 서울에 있고 혈혈단신 자유로운 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배우는 시간


농장은 청계산 진주주말농장 한쪽에 마련되어 있다. 매주 농장에 가면 전혀 다른 세계의 문이 열렸다. 우리집 근처에서는 맡기 힘든 풀과 흙내음이 농장 근처에만 가도 후각을 자극했다. 초록이 주는 안정감과 자연이 뿜어내는 풀냄새는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었다.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숲속으로 여행 다니는 느낌도 났다. 스트레스 풀 하나의 방법을 찾고 있다면, 농장 체험을 추천한다.


또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사뭇 다른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내겐 농장이었다.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제로웨이스트, 비건, 귀농귀촌을 꿈꾸는 가치와 방향성의 결이 닮아 있다.


그곳에서 만난 팜메이트들과 대화는 "오늘은 토마토가 이만큼 자랐어요. 이번에 로메인상추는 잘 안 될 것 같아요. 기다려 보죠"라는 작물과 날씨에 관한 이야기다. 매주 작물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이야기하는 순간마저 텃밭 위에서는 반짝거렸다. 정해진 시간에 무언가를 완수하고 쳐내기 바쁜 일상의 속도와 전혀 다른 모습이 그곳에 있었다.


올해 3월부터 11월까지 농장에서 '응요밭'으로 3평의 밭을 배정받아 3인 가족이 소비 가능한 채소를 직접 기르고 수확했다. 도시에서 3평의 땅은 남편이 운영하는 테이크아웃 카페 크기와 비슷했다. 규모는 작았지만 내게 풍성한 먹거리를 선물처럼 안겨줬다. 그것도 무척 건강한 방법으로 말이다.


농장의 농사방법은 땅과 나, 지구를 살리는 쪽이다. 잡초도 땅과 같이 사는 운명공동체로 이해하기 때문에 농약을 뿌리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지을 때 비료와 농약을 많이 사용한다는 건 새삼스럽지 않았다. 물 부족 국가임에도 48% 물이 농업용수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땅의 탄소 흡수력이 약해지면 물 저장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국내 친환경 재배면적이 감소하면서 땅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탄소감축을 위한 획기적인 해결방법 중 하나가 이 농장에서 내세우는 재생농업 즉 탄소농업이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땅을 건강하게 돌보는 것이다.


흔하게 밭에서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검은 비닐을 덮는데, 이 농장에서는 낙엽이나 볏짚으로 멀칭(껍데기를 덮어씌운다는 뜻)한다. 멀칭을 해주는 이유는 작물 근처에 잡초가 생기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게 하는 목적이다.


따로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장에서는 바이오차를 뿌려준다. 바이오차는 왕겨, 볏짚, 목재, 가축분뇨 등 바이오매스와 숯의 합성어다. 눈으로 보면 굵은 연필심처럼 보여 손이 까맣게 된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전에 바이오차를 뿌려서 땅을 건강하게 관리했다.


농사 덕분에 달라진 관점


지난달 중순에는 9월에 심은 배추와 무를 수확했다. 주말마다 아이와 함께 들락거린 '응요밭'의 1년 농사를 마무리했다. 농장에서 만난 마리아가 이곳에서 심은 무로 깍두기를 담으면 맛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수확한 배추와 무로 깍두기, 석박지, 동치미, 배추김치를 담갔다.


마트에서 구매하는 무와 내가 직접 기른 무는 식감과 향부터 달랐다. 노지에서 내가 직접 기른 무는 아삭한 소리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땅의 에너지를 잔뜩 머금었기 때문인지 싱싱함이 꽤 오래갔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상추나 깻잎을 사면 3~5일 사이엔 물러져서 바로 먹어야 했다. 반면 농장에서 수확한 상추나 깻잎은 2주는 거뜬히 싱싱함을 유지했다.


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좋았던 또다른 점은 내 먹거리의 출처를 확실히 안다는 점에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농장에 참여한 이후로 상추는 그곳에서 거의 매주 공급받아 마트에서 구입한 적이 없다. 상추는 매주 따는 재미가 있는 작물이라는 것도 농사하며 배웠다. 전통시장 가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온라인쇼핑 대신 직접 장을 보는 일도 늘었다.


그리고 커피 대신 차를 마시는 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도 있었다. 2018년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하루에 커피를 2잔씩 꼭 챙겨마셔야 했다. 에스프레소바가 유행하면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는 카페투어를 즐겼다. 그만큼 커피를 사랑했다.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 말을 들여다보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이지 죽지는 않을 것들이다. 그래서 끊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매일 마주한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45쪽


그러다 최근 2년 정도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면서 달라질 준비를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저녁에 담소를 나누려고 커피를 마시면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디카페인 커피를 파는 곳이 많아졌지만 그렇지 않은 카페도 아직 있어서 나는 카페인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그래서 되도록 커피는 집에서 내려마시고 직접 텀블러에 디카페인 커피를 가지고 다녔다. 박혜윤 작가의 이야기처럼 커피 대신 다른 마실거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게 차(茶)였다. 농장에서 매주마다 좋은 기운을 받아서일까. 자연스럽게 한방차, 허브차, 꽃차 등 커피 외에 다양하게 마시고 있다.


가장 생산적이었던 1년


첫 시작은 농사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었지만, 3평짜리 작은 농사를 지으며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땅은 햇빛과 물과 바람이 작물을 알아서 키워줬다.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면서 잡초를 뽑고 자란 얘들을 수확해서 오면 됐다.


3평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꽤 많이 받았다. 그곳에서 받은 에너지 덕분에 새롭게 하고 싶은 일도 생겼다. 카페에서 파는 허브차를 기존 티백이 아니라 농사를 지어서 팔아볼 계획을 하고 있다. 나아가 퍼머컬처(Permacultuer) 디자인 코스 자격증을 따고 싶어졌다. 내년 농사 때는 정원과 농사를 좀 더 확장해서 지어보고 싶다.


돌아보면 농장 1년여를 하면서 내가 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땅에게 받았다. 흙과 식물을 만지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 가운데 들어가니까 보이진 않지만 마음의 회복이 일어났다. 기후위기 시대에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 외에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농장에서 하는 탄소농업이기도 했다.


농장에 참여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 느꼈다는 한 팜메이트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자연은 순리대로 계절의 변화를 맞이한다. 1주일 혹은 2주에 한번 밭을 찻아갈 뿐이었는데, 도시에서 밭을 일구며 내 마음밭도 더디지만 튼튼해졌다. 고마웠어, 땅아! 내년에도 잘 부탁해!


#땅스농장 #퍼머컬처 #주말농장 #탄소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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