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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May 25. 2023

[부암동파밍클럽 5/25] 초여름 텃밭, 마당 있는 집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암동텃밭은 생각보다 잡초가 무성하지 않다.

작년보다 일찍 여름이 찾아온 텃밭도 열심히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닭 때문에 텃밭 주위에 쳤던 초록색 망을 치웠다. 3월쯤 닭들이 시골로 이사갔지만 귀찮기도 하고 솔방울과 내가 반나절 수고롭게 친 초록망을 뽑는 게 귀찮기도 했다.


초록망 아래 숨어있는 잡초를 정리했다. 뽑은 잡초는 다른 작물의 멀칭재료로 사용했다. 초록망이 빠지고 빈땅이 조금 보여서 꽃을 심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쓰고 작물을 (또) 사고 말았다. 꽃집에 예쁜 게 없었다.


/ 이른 아침, 초여름텃밭


사람이 잡초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암동텃밭은 생각보다 잡초가 무성하지 않다.


아직 시기적으로 잡초가 무성할 때가 아닌가. 부암동 땅이 문제인가. 질경이랑 냉이꽃만 무성하다. 질경이가 잘 자라는 땅이라니, 다른 잡초도 많은데...


초여름의 텃밭 관리는 꽤나 이른 오전부터 시작된다. 마음은 새벽부터 나가보고 싶은데 아이 등원 때문에 쉽지 않다. 아침볕이 뜨거워서 잡초를 뽑고 텃밭을 관리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잠깐만 있다 가자고 마음 먹고 가지만 늘 몇 시간씩 땡볕에서 작물을 다듬고 돌본다. 얼굴이 새빨갛게 익을 때쯤 텃밭 정리가 끝이 난다.


완두콩은 어느새 꼬투리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고추랑 방울토마토도 꽃을 피우더니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한다. 일일이 살펴보면서 늦지 않게 곁순을 제거해준다.


생각보다 가지는 성장이 느렸다. 뭐 그래도 괜찮다. 가지는 8월이 넘어서까지 열매를 주는 작물이라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혹시 몰라서 바이오차를 작물마다 뿌려줬다.  


적양배추에는 잎마다 초록애벌레가 먹어서 구멍이 숭숭 났다. 2마리 잡았다. 양배추도 해본적이 없어서 유튜브선생님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기란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진 않다.


/ 마당이 있는 집에 사는 꿈


장갑을 가져갔어야 했는데 깜박했다. 또 손톱 밑에 검은 흙이 잔뜩 끼었다. 더러워보일 수도 있는데 노동한 그 흔적이 난 좋다.


어느 정도 텃밭을 가꾸곤 의자에 앉아 바람에 흩날리는 허브와 꽃을 볼 때면 마음이 이상하게 평안해진다. 텃밭보다 정원이 예쁘긴 하다.


다음에는 꽃을 심으려면 몇 포트로 팍팍 심어야겠다. 텃밭을 가꿀수록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자연스런 욕망이 올라온다.


아파트는 자산 증식의 효과로 최고지만 손이 많이 가는 주택에서 살 수 있으면 살고 싶다. 부암동텃밭 앞에는 2층 단독주택이 있는데, 거기 사는 할아버지에게 이집에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법을 묻고 싶을 정도로 나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 일단 돈은 많이 벌어야 한다. 이러나 저러나.


부암동에도 성북동 못지않게 의리의리한 단독주택이 많이 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집을 소유하게 된 걸까. 정말 부럽다.


마당이 있는 집에 살면 부암동텃밭에 오지 않을 거다. 아마도 그럴 듯하다.


/ 텃밭일지

수확량이 작년보다 못하다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그래도 성인 2인이 매일 1주일 정도 먹을 분량의 쌈채소를 텃밭이 공급해준다. 올해에는 우리나라 상추 대신에 유럽용 상추류채소를 많이 심었다.


- 버터헤드

- 청/적로메인

- 비타비아그린


맛이 상추랑 뭐가 다르냐고, 안타깝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왜 심었냐고? 마트에서 파는 얘 아니고 다른 얘를 맛보고 싶은 (내 욕심)이 컸다. 욕심은 아무런 맛의 차이를 나타내지 않고...

오크라는 한성대입구 카레집에서 먹어본 식재료였다. 오크라가 오크라인가보다 했는데 마르쉐에서 오크라 씨앗을 팔았다. 용케(?) 구해서 오크라를 파종했다.


그때 솔방울한테 빌려서 심은 터라 한 구멍당 1개씩 파종했다. 착실하게 올라왔다. 여긴 앞쪽 밭인데 싹이 났다. 하지만 뒷쪽 밭에 땅이 더 좋은 곳엔 싹이 딱 1개만 났다. 다시 심어야 한다. 아직 내겐 오크라 씨앗 몇 종이 남아있사오니!


*오크라: 채소의 한 종류. 아열대 채소. 여자 손가락 몽양과 비슷해서 레이디핑거!

거의 하늘나라 가기 직전에 죽을 뻔한 레이디라벤더! 용케 살아났다. 작물은 심어두면 금새 적응하는 얘도 있고, 뿌리몸살을 심하게 앓는 얘가 있다. 죽을 줄 알고 상심하고 있었는데 자연은 위대하다. 얘들이 적응해서 살아났다.


올해 텃밭 작물 중에서 내가 가장 애정하는 얘는 상추나 쌈채소가 아니라 라벤더다. 그냥 이유없이 좋다. 시중에 많이 보이는 라벤더가 아니라 레이디라벤더, 좀 하늘하늘 나풀나풀 거리는 얘다.


*레이디 라벤더: 잉글리쉬 라벤더 계열의 개량종. 매우 향기롭고 꽃이 아름답다.


올해 텃밭은 1년 그러니까 11월 중순까지 계약인데, 이렇게 노지에 심은 허브들은 다시 집이든 루이스네 커피가게 앞이든 이동 예정이다.

작년에는 하지 않았던 브로콜리를 심었다. 우리집 식구들이 너무 좋아하는 채소다. 브로콜리 값이 마트에서 하도 들쑥날쑥 하길래 심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흰색 콜리플라워도 심었는데 걔는 뭐가 안보이는데 평범한 초록색 브로콜리는 예쁘게 까꿍하고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벌써 저 세상으로 떠난 루꼴라는 에쁘게 꽃이 피었다. 쌈채소들은 꽃이 피면 더 수확할 수 없다. 루꼴라는 잎이 너무 무성하길래 수확해왔다.


루꼴라페스토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해서다. 루꼴라는 꽃이 피었으니 씨앗을 얻어서 가을에 다시 심어봤으면 싶다.

어버이날 기념으로 순천만에 갔을 때 예쁘다고 생각한 세이지. 나는 빨강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빨간 양귀비도 있으면 엄청 심고 싶은데 안보여서 못심었다.


사실 세이지는 작년 텃밭에서도 폭풍성장하고 꽤 군락을 잘 이루는 식물이다. 세이지는 월동도 하는 얘라서 그냥 심어봤는데 약간 텃밭몸살 기운이 보이지만 잘 버티고 있다.


* 세이지: 오래 전부터 만병통치약으로 널리 알려진 약용식물이다. 세이지의 잎과 꽃은 향기가 좋으며 줄기는 나무 같고, 잎은 부드럽고 폭신하다.

오늘 갔더니 모종으로 심었던 캐모마일이 이제 적응을 끝냈는지 성장세가 무섭다. 꽃망울도 팡팡 터트리고 있다. 캐모마일은 꽃을 차로도 마시는 아이인데, 노지에서 자라는 걸 보면 늘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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