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환우 친구들에게

우리 다 환자라 얼마나 다행이냐(?)

by 도브리

S와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났다. 첫 만남부터 기운이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울이 나의 자랑이던 시절이었는데도 저 사람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지 싶었다. S는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인생의 곡절을 읊다가 흐르듯 말하는 게 아니고 갑자기 대뜸 난데없이 했다. 예를 들면 “아, 배고프네?”라고 말하곤 한숨 푹 쉰 뒤 “죽고 싶다...”를 덧붙이는 식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귀를 의심했고 이후에도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어쩐 일인지 S와는 이미 친구가 되어있었다. 나는 S가 괜히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진심도 아닌 말을 왜 습관처럼 자꾸 해? 물었더니 본인은 매번 진심이었다고 했다. 거짓말. 죽고 싶을 리가. 밤늦게까지 이어진 어느 술자리에서 “네가 죽고 싶다고 계속 말하는 건 네가 정말 살고 싶기 때문이야!”라며 기어이 S를 쏘아붙인 나는 그로부터 n년 후 그의 환우가 되어 과거의 무지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


차일피일 미루던 정신과 진료를 받던 날,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예상 못한 전개에 당황한 나머지 콧물까지 흐르기 시작해서 초면인 의사 선생님 앞에서 민망하고 난감해졌다. 어딜 가도 비염이 문제가 된다. 진료가 마무리되어갈 때쯤 “그래서, 저 우울증 맞나요?”라고 물었더니, 중증은 아니지만 경증이라고 볼 수도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상 못한 일이 아니었는데 평정심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탓할 거리가 하나 더 생겨 마음이 놓이다가도 울컥 서러움이 솟았다. 병원에 다녀온 후에는 만나는 모든 친구에게, 마치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우울증을 진단받았다고 얘기했다. 내 상태를 정확히 전달해야만 정확하게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병증이 깊어진 날엔 너흰 날 절대 이해 못 한다고 쏘아주고 싶은 심정이 됐다.


S와는 종종 만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셨다. ‘환우 모임’이라 불렀다. S야, 이렇게 가까이에 환우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너스레를 떨면서. 우리는 당사자들끼리 하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자조 섞인 농담을 하고, 일상의 자잘한 절망과 희망을 공유했다. 상대의 좋은 점을 매번 새롭게 발견해주고, 다정한 말을 나눴다. 내가 너에게 들려준 말들은 내가 가장 듣고 싶어했던 말들이고, 네가 내게 들려준 말들도 마찬가지겠지. 우울증에도 좋은 점이 있을까? 내가 묻자 S는 레포트도 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몇 달 전의 난 말도 안 된다고 웃어 넘겼는데 지금은 진짜 레포트도 써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환우 친구들아. 우리 대충 행복? 뭐 그런 거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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