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도 쓸모가 있다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배우 배두나는 본인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답했다. 짤막한 문장으로 더 이상의 어떤 설명도 필요 없이 모든 게 납득이 갔다. 자신을 수없이 의심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미 너무 준비된 대답 같았다. 내가 언젠가 비슷한 질문을 받게 되면 저 말을 토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그대로 써먹어야지. 사실 지금 당장 누군가 나에 대해 물어온다 해도 나는 별 고민 없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양심의 가책 없이, 진심을 담아서. 그런데 이게 다 우울증 덕분이라면?
작년 3월, 심리상담센터에서 기질검사라고도 불리는 ‘TCI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중 인상적이었던 건 나의 ‘높은 자율성’과 ‘낮은 연대감’에 대한 내용이었다. 상담 선생님이 설명하시길, 자율성과 연대감은 상호작용하는 거라서 서로 좋은 양분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나의 경우 자율성이 연대감으로부터 에너지를 빼앗아오는 것 같다고 했다. 연대감이 뿌리를 단단하게 받쳐주지 못하면 자율성이 잠깐 높아질 순 있어도 금방 꺾이고 말 거라면서, “세상을 혼자 살 순 없잖아요?”라고 했다. 당시의 난 이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러니까 결국엔 세상 혼자 사는 것처럼 굴다 크게 한 번 넘어질 거라는 얘기였다. 지금 보면 예언 수준이지만 그때의 난 몰랐지, 내가 이렇게 한참을 헤매게 될 줄.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먼저 선뜻 손 내밀어준 친구들이 있었다. 시의적절한 도움은 마음에 새겨져 깊게 남는다. 겨우 용기 내어 정신과 진료 예약을 잡은 날, 집으로 엽서 하나가 도착했다. A가 쓴 편지였는데, 내용을 보니 나보다도 먼저 나의 빈곤한 마음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A는 가끔 별 이유 없이 전화를 걸어와 시시껄렁한 얘기를 했다. 내 마음을 살피기 위해서라는 건 마음으로 알았다. 어느 날은 늦은 저녁 집에서 영화를 보는데 B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상적인 얘기를 나눌 때까진 괜찮았는데 “어떻게 지내?” 한 마디에 눈물을 쏟았다. B가 내 이름을 너무 따뜻한 목소리로 불러줘서. 핸드폰 너머로 당황스러움이 느껴졌지만, 그래도 누구를 곁에 두고 우니까 좋았다. C를 오랜만에 만났을 땐 마음이 서서히 회복되던 중이었다. C와 나는 각자의 사정과 어려움을 얘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문한 꽃을 찾으러 간다던 C는 가게를 나서자마자 예쁘게 포장된 꽃과 편지를 쥐여주었다. 다정한 말이 빼곡히 쓰여있는 엽서는 책상 가까이 붙여두고 몇 번이고 읽었다. 내가 날 좋아하고 싶을 때마다.
어릴 적의 난 눈물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내 감정을 속이는 데 익숙했던 것 같다. 스물여덟 살이 되자마자 그간 못 채운 눈물의 총량을 채우느라고 지겹도록 울었다. 오랫동안 고여 있던, 미처 해결 안 된 감정들이 눈물처럼 흘러준 덕분에, 비로소 내 마음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들일 수 있었던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들 서로한테 조금씩 손 벌리고 사는 거, 내겐 이제서야 당연한 일이 됐고, 1년 8개월 동안 나는 내가 너무 많이 변한 것 같다. 이게 다 우울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