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이지만은 않은
나보다 나이가 서너 살쯤 더 많았던 대학 동기 언니는 빠르게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느긋하게 여기저기 들쑤시던 나와는 달랐다. 아는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았던 언니는 연이은 취업 실패와 함께 빠르게 생기를 잃어갔다. 언니는 나를 포함한 모두와 서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전처럼 아무 용건 없이 연락해 밥을 먹자거나 차를 마시자고 할 수 없었다. 언니가 SNS 계정을 지우고 카카오톡까지 탈퇴한 걸 보고, 나는 언니에게 더이상 먼저 안부를 묻지 않기로 했다. 언니의 소식을 드문드문 전해 듣곤 했지만, 사실 소식이라기보단 소문에 더 가까웠다. 동기 중 누구도 언니의 지금을 몰랐기 때문에. 한참이 지난 후에야 언니는 내게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오랜만에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언니는 준비 중인 시험이 끝나면 연락하겠다고, 또 보자며 손을 흔들었는데, 난 왠지 그날이 언니와의 마지막인 걸 알았다.
긴 무업기간 동안 내가 나와 약속하고 또 지켜낸 게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스스로 고립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친구를 잃지 않으려고, 친구인 나를 잃지 않게 하려고, 그러니까, 언니처럼 되지 않으려고. 난 지금까지도 언니와의 헤어짐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그 껄끄럽고 부자연스러운 끝맺음이. 언니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시기에 취업할 수 있었다면, 그래도 언니가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을까? 아닐 것 같다. 난 그냥 언니가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세상이 미웠다. 얼마 전엔 나의 20대를 줄곧 함께 한 친구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톡방을 나갔고, 난 또 별수 없이 언니와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친구는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얼마 못 가 퇴사했다. 다시 지난한 취업 준비를 앞두고 불안감을 내비치던 친구는 10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난 친구들을 자꾸만 잃는다.
작년 초 해외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한국은 이미 코로나 대유행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절망했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도서관은 임시 휴관을 반복했다. 갈 곳이 없었다.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자취방에서 적막함을 견디면서도, 아니 실은 견디지 못하고 의미 없는 소음으로 방을 꽉 채우면서도, 나는 매일 새롭게 고립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친구를 잃지 않으려고, 친구인 나를 잃지 않게 하려고. 언젠가부터 내겐 나와 가까운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으며 숫자를 세는 버릇이 생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손가락을 접고 펴다가 마지막 숫자인 열하나가 되면 괜히 마음이 든든해지곤 했는데, 그리고 난 그 이유를 방금까지도 몰랐는데, 아마도 내가 지켜낸 친구들을 그렇게라도 확인하려던 것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얼마 전부턴 숫자를 열까지만 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