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정확하게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다달이 몇십만 원 정도가 나오는 취업 지원금과 엄마가 간간이 보내오는 용돈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생산력이 없는 나에겐 대체 어떤 쓸모가 있는 걸까? 나는 인간 존재 자체의 고귀함이나 존엄함 따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겐 미안했지만 나 자신에겐 미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성실히 나를 먹이고 재우고 입혔다. 내가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다만 죄책감을 느꼈다. 내가 날 돌보는 것으로는 돈이 벌리지 않았다. 내 존재감은 점점 옅어져 갔다. 나는 나에게 매일 소곤댔다.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너에겐 아무런 쓸모가 없어.
내가 기억하기로 과거의 나는 아주 쓸모 있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나 스스로는 그렇게 믿었다. 그 쓸모라는 건 내가 번번이 쟁취해내는 성취와 직결되었다. 교내외에서 받은 각종 상장과 높은 등수의 성적표가 쌓일수록, 어른의 손을 빌리지 않고 되려 그들의 손이 되려고 애쓸수록, 그제야 나는 내가 사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 I wish that you liked me.
난 엄마가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
- Of course I love you.
당연히 널 사랑하지.
- I know you love me. But do you like me?
그건 알아. 근데 나를 좋아하냐고.
영화 <레이디버드> 속 모녀의 대화는 관객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됐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됐다. 딸인 ‘레이디버드’의 마음에 절절히 공감한다는 후기들 사이에서 난 길을 잃었다. 나의 엄마는 날 사랑하기보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순전히 나의 노력으로. 아마 엄마가 날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내가 죽을힘을 다했기 때문에.
엄마는 나의 자랑이었다. 일에 치여 우리를 오래 봐주지 않아도 여전히. 엄마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느라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었고, 수많은 학생과 동료 교사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사람이었고, 툭하면 큰 소리로 와하하 웃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눈이 감기도록 활짝. 그래서 나도 엄마의 자랑이고 싶었다.
내게 엄마의 사랑은 늘 모자랐다. 그도 그럴 게 엄마에게 온전한 애정과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를 연년생으로 낳았다. 언니가 태어난 다음 해엔 오빠가, 그다음 해엔 내가 태어났다. 엄마는 언니를 낳기 전 해직됐다가 나를 낳고 나서야 복직됐다. ‘민주교육수호’를 외치던 엄마는 해직과 함께 ‘밥하는 기계’로 전락했다. 농사꾼 남편과 그 식구들에게 하루 세끼는 물론 새참까지 해먹이느라고 등골이 빠졌다. 그 4년이라는 시간이 엄마에겐 지옥 같았다고 했다.
우리가 있었는데도?
대답을 들을 자신이 없어서 묻지 않았다.
내가 자라는 동안 엄마는 자주 나에게서 자신을 봤다. 너는 나를 닮아서 이걸 잘해. 너는 나를 닮아서 이걸 못해. 너는 나를 닮아서... 그런 말을 내내 듣고 자란 나는 내가 엄마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고 굳게 믿었다. 상담 선생님은 엄마와 내가 서로 아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나는 색깔이 아주 진한 사람이고, 엄마는 말하자면 파스텔톤의 사람이라고. 둘의 색이 달라서, 엄마가 표현하는 사랑의 최대치가 내겐 너무도 미미했던 거라고.
엄마와 나는 서로에게서 자신을 보느라고 우리 사이의 거리를 감히 재볼 생각도 못 한 모양이다. 사실 우리는 늘 어긋났는데. 엄마의 사랑이 내게 닿지 않고, 나의 요구가 엄마에게 닿지 않고.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굴절되고, 우린 그걸 곡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엄마의 무심함을 견딜 수 없어서, 나는 어떻게든 나의 쓸모를 증명해내려고 애써야 했는데.
자의가 얼마나 포함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지난 2년 동안 나는 나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증명하기를 포기했거나, 증명하지 않기로 나에게 선언했거나. 사람들이 날 좋아해 주길 바라며 죽도록 노력하던 나는, 나도 날 좋아하지 못하던 때를 지나고서야 나를 사랑하는 간편한 방법을 깨우친 것 같다. 나의 쓸모를 따져 묻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딱 한 명 있을 수 있다면, 그건 내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