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제 영업을 곁들인
요가 수업 둘째 날부터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반의 우등생이라는 사실을. 신입 회원 모두가 거쳐 가는 기초반이긴 했지만 나보다 적어도 이틀은 먼저 시작했을 다른 수강생들에 비해 내 몸이 훨씬 극적으로 구겨졌기 때문이었다. 전생에 마주친 것만 같은 익숙한 얼굴의 강사님은 수련실을 돌며 자세를 교정해주셨는데, 분명 다른 이에겐 가벼운 터치 정도였던 게 내 차례가 되면 꽤 강한 압박을 동반한 무언가가 되었다. 강사님은 거침없이 내 몸을 누르고 늘이다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는데(이걸 여기에 붙이라고요...? 여기서 허리를 어떻게 더 숙이죠...?) 강사님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어서 어떻게든 해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카운트를 하다가 겨우 고개를 들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평온한 표정이었다. 수련 후 기진맥진한 채로 옷을 갈아입는데 중년의 수강생 한 분이 “오늘은 땀 안 났다, 그치?”라고 말하는 걸 듣곤 땀에 푹 절은 내 옷을 내려다보며 어리둥절했던 기억.
어느 날은 수련을 마치고 흐물흐물해진 몸뚱이에 겨우 힘을 준 채로 수련실 밖으로 나가려는데 강사님이 나를 불러세웠다. “몸이 어쩜 그렇게 유연하세요.”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해 어색한 미소만 흘렸더니 꾸준히 수련하기만 하면 요가원 에이스도 노려볼 만하다고 날 추켜올렸다. 몸이 말랑할수록 동작을 무리하게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나, 어쩌면 타고난 재능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내추럴 본 요기yogi일지도? 들뜬 마음으로 친구에게 자랑했다가 “그거 영업멘트 아니야?”란 말을 듣곤 김이 팍 샜지만, 사실 강사 자신의 고용 안정을 위한 다소 과장된 영업 멘트라도 별 상관없었다. 딱 이만큼의 자신감도 간절했기 때문에.
몇 분짜리 프로그램이든 기-승-전-결로 이루어진다는 건 요가의 큰 장점이다. 처음 요가를 시작할 때부터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시작해 점점 강도를 높이다 시체처럼 바닥에 늘어져 움직이지 않는 ‘사바아사나’로 마무리되는 게 좋았다. 5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깜빡 잠들기도 하고 때론 꿈까지 꾸었는데, 불과 한 시간 만에 몸의 완전한 이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요가를 시작하고 3주 동안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처음엔 단순히 체력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강사님께 물으니 평소 몸이 지나치게 경직된 사람에겐 흔한 일이라고 했다. 힘주어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넘어지지 않는 것보단 잘 넘어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펴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이는 거야. 그럼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손가락은 신기하게도 움직여져.
감정과 자극은 어찌할 수 없지만 호흡은 조절할 수 있다는 요가 강사님의 말을 듣고서 김새벽 배우가 영화 <벌새>에서 활짝 편 두 손을 가만 들여다보는 장면이 떠올랐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손가락을 차례로 움직이다가 주체성을 회복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다가 마음의 균형을 되찾는 것처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요가를 하다 보면 절대 해내지 못할 것 같던 자세가 마법처럼 되는 순간이 온다. 차투랑가도 그렇게 갑자기 할 수 있게 되었고, 기대 없이 도전했던 물구나무서기도 얼떨결에 성공한 뒤론 까다롭지 않은 동작이 됐다. 차곡차곡 쌓아 놓은 자투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어느날 뚝딱 간단한 성공을 안겨주곤 한다. 모르긴 몰라도 세상의 많은 일이 요가 수련과 비슷할 거라 넘겨짚는다. 의심하지 않으면 어느새 나는 멀리 나아가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