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시메옹 샤르댕_ 브리오슈, 1763
지난 토요일(10월 25일) 경기 도서관 개관에 앞서 개관 기념 국제컨퍼런스가 있었다. 기후환경, AI, 지식과 미래를 잇는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기조 강연이 시작되었다. 티 파에야 파링아타이(Te Paea Paringatai) 국제도서관협회 차기 회장은 ‘미래를 준비하는 평생의 파트너’로써 생애 주기별 도서관의 역할을 설명했다. 핑크색 옷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강연을 하는 파링아타이를 보며 통역가가 전해주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작은 씨앗을 키우면 나무가 되고, 나무가 자라면 숲이 됩니다. 돌봄에서 큰 미래로 자라는 공간, 함께 번영하기 위해 도서관은 평생의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말이라 메모를 했다. 작은 씨앗과 나무, 그리고 숲이라는 단어를 꾹꾹 눌러쓰던 중 엉뚱하게도 빵이 주인공인 장 시메옹 샤르댕(Jean Siméon Chardin, 1699-1779)의 <브리오슈, 1763> 작품이 떠올랐다. <브리오슈, 1763>는 어두운 배경 앞 검소한 식탁 위에 놓인 브리오슈(빵), 브리오슈에 꽂혀 있는 식물, 은은한 향을 머금은 꽃망울, 달달한 꿀이 담긴 병과 설탕이 담긴 뚜껑 덮인 컵, 체리와 복숭아, 납작한 빵이 등장하는 정물화다. 정물화에 빵과 식물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보았지만, 이런 조합은 처음이라 자꾸 시선이 갔다.
브리오슈에 떨어진 씨앗 하나가 빵에 뿌리를 내렸나? 어느새 브리오슈는 ‘대지’가 되어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공간이 되었다.
그림에 대해 궁금해 찾은 자료를 보다 까맣게 타버린 브리오슈를 통해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과 삶의 연약함을 보여 주려 했다는 내용을 읽었다. 샤르댕을 존경했던 앙리 마티스가 샤르댕을 “사물의 감정을 그릴 줄 아는 화가”라고 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새로고침-서양미술사」 이진숙 작가는 샤르댕의 정물화를 보며 ‘그냥 그곳에 있는 물건들, 다른 아무것도 되지 않기로 작정한 듯한 물건들, 아니 자기 자신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될 수 없는 단순한 물건들만 등장한다. 평범한 사물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거기에 우리의 기억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평범한 사물에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나의 평범한 삶에 의미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이야기했다.
평범한 사물들이 향기로 다가왔다.
버터 향과 설탕의 달달한 향이 내 코끝을 간지럽히더니, 은목서 꽃처럼 은은하면서 달콤한 냄새를 내뿜었다. 눈사람처럼 둥글둥글한 브리오슈 위에 꽂혀있는 식물은 은목서(sweet osmanthus)이 아닌 오렌지 나뭇가지였다. 그림은 어느새 새콤하고 싱그러운 향기까지 더해졌다. ‘순결’의 상징으로서 신부가 결혼식에서 머리에 장식한다는 오렌지 꽃은 ‘신부의 기쁨(새색시의 기쁨)’이라는 꽃말도 가지고 있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꽃무늬가 가득한 설탕 항아리가 놓여있다. 항아리 뚜껑의 꽃 모양 손잡이에서 5월의 장미 향이 풍겼다. 오른쪽 금색 손잡이가 달린 기다란 병에서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맡아졌다. 일상 속의 마주하는 사물들이 샤르댕을 통해 곧 꽃망울을 터트릴 신랑 신부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이야기로 변신했다. 그림 보는 행위가 더 즐거워지는 순간으로 변했다.
샤르댕은 루이 15세(루이 14세의 증손자)가 통치하던 18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화가였다. 당시 프랑스 화가들은 귀족과 성공한 상인들의 화려한 삶을 묘사하는 ‘로코코’라는 장식적인 미술 양식이 유행했다. 하지만 샤르댕은 ‘가정의 미덕, 근면, 배움’과 같은 일상의 덕목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과 그들이 평소 사용하던 사물을 그림 속에 담았다. “재능은 있으나 하찮은 물건을 그린다.”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평범한 이들의 일상 속에서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했던 샤르댕은 서양 미술사에서 ‘현대 정물화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드가, 마네, 세잔 등 후대 화가들로부터 “내면의 진실을 그린 화가”로 존경받았던 샤르댕은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소유한 화가였을 거 같다. 샤르댕 부인과 커플 헤어룩을 담은 말년의 자화상과 초상화를 바라보며 <브리오슈, 1763>의 인생의 시간, 그들의 결혼 생활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소망해 본다. 남편과의 흐뭇한 노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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